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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12> 부장님 자리, 내 자리





한때의 실험으로 그쳤지만, 어느 국내 IT 기업이 재미있는 공간 배치 방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직급에 따라 자리를 정해 놓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고, 출근 순서대로 원하는 자리에 앉아 하루 업무를 보게끔 한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내 자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직장 안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지표일 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일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처 없이 사무실 내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일해야 한다면 어떨까? 일단 무엇엔가 매이기 싫어하는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편할 수 있다. 매일 쳇바퀴처럼 도는 직장생활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생기는 것이니까. 그러나 20~30년 째 ‘자리’의 사회학적 의미에 무게중심을 둬 가며 살았던 부장님, 차장님들은 얼떨떨 할 것이다. 개혁적인 문화 도입을 명분으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의 열정이 짓밟힌다며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회사가 작정한다면 개인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이미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공간 배치 실험을 다방면으로 시도해보고, ‘열린 오피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꼭 열린 오피스 공간이 좋은 성과를 창출하는 것만은 아니다. 조금 다른 측면이지만 얼마 전 야후는 과거 실리콘밸리의 IT 서비스 기업에서 중요한 업무 관행으로 자리잡았던 재택 근무 제도를 전격 폐지했다.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고, 너무 탄력적이고 유동적인 환경 속에서는 경쟁력 있는 서비스 아이디어가 도출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가 컸다. 빌 게이츠를 비롯해 몇몇 IT 창업자들에게 ‘보수 회귀’적 정책이라며 욕을 먹기도 했지만, 당분간 야후 직원들을 긴장시키는 데에는 충분할 듯 하다. 집에 있으면 산만해 지게 마련인 직원들의 정신을 한 공간 속에서 모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재택 근무 정책 당시 야후 직원들 중 상당수가 ‘투 잡’을 뛰거나 창업을 준비하거나, 이직을 도모하는 등 조직 충성도가 낮은 일을 해 왔다고 한다. 엄청난 인건비를 지출하면서 조직의 인적 자원으로 내부화한 결과 치고는 매우 비참한 성과다.



조직 안에서 공간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 사무실의 색깔을 어떻게 결정하느냐 등과 같은 요소를 고민하는 것을 가리켜 조직 미학(organizational aesthetics)이라고 한다. 수십 년 전부터 ‘조직 상징’(organizational symbolism)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고민해 온 주제다. 회사의 로고가 적힌 메모지를 쓸 때의 소속감 인식, 회사 특유의 공간 활용 방식으로 인한 직원들의 마인드와 업무 성과 등을 연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들의 관점에 따르면 머지 않아 오피스 곳곳의 사진을 찍고 영상으로 처리하여 컨설팅을 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 개발팀의 사무실에는 이 그림을 거는 게 좋다, 재무팀의 휴게 공간에는 이 화분을 쓰라는 식의 조언들이 가능할 지 모른다.

어느 국내 카드사 CEO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런 말을 했던 게 떠오른다. 회사의 발전 단계별로 처음에는 수익성과 성장성 등의 측면을 고려한 재무적 관점이 중시됐다가, 영업 및 고객 마인드가 각광받으면서 마케팅 관점이 제기되고, 마지막으로는 직원들의 심리와 행복을 고려한다는 조직 이슈가 주목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는 부장님 자리와 사원의 자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정한 창의와 혁신을 위해 어떤 공간 디자인이 필요할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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