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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숨은 규제' 중소기업 울린다] "이미 상가 많은데 문화재 훼손이라니…" 공장·수출 포기할 판

도시계획위 권한 넘치고 지자체는 보신주의 행정

규제개혁 후보사진
성삼모(왼쪽) 테시스 대표가 합작법인을 함께 경영하는 폴우드 테시스 부사장과 6일 화성시 안녕동에서 신규 공장 설립이 전면 중단된 매입 예정 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매입 예정 부지 뒤편으로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상점이나 제조시설들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다. /사진제공=테시스

테시스와 같은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은 중앙부처의 노력으로 이른바 '등록 규제'는 상당 부분 해소됐지만 민원을 두려워하는 지자체의 보신주의 행정, 도시계획위원회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과정과 과도한 권한 등 '숨은 규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테시스가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매입을 추진 중인 부지로부터 1.1㎞ 거리에 자리한 국가지정문화재 융·건릉이 1821년 제작된 고지도에 표시된 5개의 혈자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테시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부지에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새로 제조허가를 받은 공장 부지가 있을 정도로 제조공장과 상업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만큼 거절 근거로 든 이유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테시스 측의 판단이다. 성삼모 테시스 대표는 "고지도 상에도 혈자리의 대략적인 위치만 그려져 있어 현재의 위치가 공장 매입부지와 일치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심지어 공장이 들어설 부지 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운영하던 가게도 있는데 이렇게 막판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니 머릿속이 캄캄하다"고 호소했다. 이미 공장 허가 단계에서만 7개월을 소요한 이 회사는 당장 내년 5월까지 신규 공장을 어디에 마련해야 할지 의사결정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현장 취재를 위해 기자와 동행한 중소기업옴부즈만의 황제인 전문위원은 "융·건릉을 등지고 입주 희망 부지인 동산을 바라보면 주위에 대학 부지의 고층 건물과 호텔, 각종 상점이 즐비해 주변 경관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며 "입주 희망 지역의 바로 옆 부지는 올해 초 제조장 설립 허가를 받고 공사가 진행 중이고 산 중턱에 이미 상업시설과 제조공장이 즐비한데 굳이 산 정상부 지역만 문화재 보존을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 겪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화성시 관계자는 "입주 부적격 사유는 문화재 훼손이 가장 큰 이유로 입주하려는 산은 풍수지리적으로 융·건릉의 안산에 해당해 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무엇보다 시 당국은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상당수 지차체에서 도시계획위원회 구성이 지역 유력 인사 위주로 꾸려지면서 주관적인 행정에 치우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납득할 수 없는 규제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은 이외에도 부지기수다. 충남 논산시에서 의료폐기물 중간처리업을 하는 DDS는 환경부의 변경된 허가요건에 맞춰 노후화된 장비를 교체하기 위해 소각로 증설에 나섰다. 금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기계변경 통보를 받았지만 논산시에서 이를 막고 나섰다. 2020 도시기본계획과 어긋나고 환경상 유해해 민원발생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안병철 DDS 대표는 "십수년간 논산시에서 환경규제를 어긴 적이 없고 지역 병원들도 합심해 시 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묵묵부답"이라며 "행정소송 1심에서도 승소했지만 항소를 다시 걸어오는 등 2년 넘게 법정 다툼이 진행되면서 직원들이 하나둘 떠나고 기계 노후화도 더이상 방치할 수 없어 조만간 사업을 접게 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안 대표는 "새로 진입하는 업체도 아니고 기존에 사업을 진행하던 의료폐기물업체를 안 받아주는 곳은 전국적으로 논산시가 유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법령상 환경부 장관이 폐기물 처리업 허가권자라고 해도 실질적으로 지자체장이 중복 허가권을 갖고 있어 지자체로부터 의료폐기물 시설 결정을 받지 못하면 영업이 불가능하기 때문. 아울러 같은 폐기물 관련 업종이라도 폐기물 재활용업과 달리 폐기물 중간처리업은 지자체의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면서 관련 업체들의 불만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지자체 규제로 공장 증설을 하지 못해 아예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특수윤활유업계 글로벌 톱5에 드는 장암칼스는 충남 아산시에 5만㎡의 부지를 매입해 제2공장을 지으려다 시 당국의 뜻하지 않는 요구에 부닥쳐 제동이 걸렸다. 아산시는 공장 인허가를 받으려면 부지를 구입해 도로를 낸 뒤 아스팔트 포장을 해서 기부채납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 당국은 그 근거로 법 조문을 내세웠지만 장암칼스는 이럴 경우 수익성을 맞출 수 없어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구연찬 장암칼스 회장은 아산시와 3년여 동안 줄다리기를 했지만 더 이상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자 결국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구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에서는 공장 부지를 제공하고 세제 역시 감면해줄 테니 공장을 지어만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공장 하나 짓는 데 서류만 수백개에 달하는 등 기업인을 대하는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꼬집었다.

대대적인 공장 신설에 나섰다가 지자체의 인허가 결정 번복으로 아예 회사 문을 닫게 된 기업까지 속출하고 있다. 한영산업은 폐수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인 무기성 오니를 재활용한 발전소 연료를 수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뒤 해당 사업계획서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연천군으로부터 받고 약 100억원을 들여 공장을 완공했다. 하지만 민원 발생과 사전 검토 미흡 등을 이유로 군이 갑작스레 허가 취소를 내려 연천군과 오랜 기간 소송을 진행하던 중 올해 중반 결국 부도가 났다.

이건웅 한영산업 대표는 "공장 설립비용 대부분을 대출 받아 공장 신설에 나섰지만 사업 진행이 가로막혀 매달 수억원대의 손해를 보면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던 중 수십억원대의 손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도가 났다"며 "지자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결정을 뒤집으면서 결과적으로 같이 참여한 중소 건설사와 기계장비 업체들까지 부도가 나고 수백명의 직원들은 졸지에 생계를 잃게 됐다"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일반적으로 기업들에 동일하게 규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는 체급이 현격하게 달라 (뜻하지 않은 규제를 맞닥뜨리게 되면) 중소기업은 경영상 어려움을 넘어서 폐업에 이를 확률이 높아진다"며 "특히 지자체가 행정심판 등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장기간 소송으로 이어가기보다는 중소기업의 특수한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유연함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화성=박진용기자 yong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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