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몇십 배나 큰 미국과 중국에서 아마존·알리바바는 모바일을 필두로 전국 유통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도소매 위주 유통은 구식 대포를 들고 전투기와 싸우는 꼴입니다. 인구가 50만명 이상 되는 도시마다 'aT 스마트 스튜디오'를 만들어 인근 농민 등이 자신이 재배한 제품을 손쉽게 외부로 알리고 판매까지 할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지난 15일 찾은 서울지하철 양재역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센터를 잇는 통로는 나무와 농식품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한쪽 면에는 '금 한돈(3.75g) 시세는 약 20만원, (같은 무게의) 파프리카 씨앗은 37만원'이라고 적힌 문구가 보였다. aT는 지난해 11월 이곳을 '농업 비전 전시관'으로 만들어 농업 부가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재수(59·사진) aT 사장은 비전 전시관 내 마련된 북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aT 스튜디오가 확산되면 기존 유통체계에서 '어항 속 메기' 역할을 맡아 유통구조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4년 직접 쓴 책인 '농업의 대반격-새로운 농업이 시작됐다'를 들고 나온 김 사장은 "드론(무인기)이 씨를 뿌리고 빌딩형 농장 등도 나왔을 만큼 시대가 바뀌고 있다"며 "이제는 벼 재배하고 소 키우는 농업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생산, 빅데이터를 이용한 유통 등 첨단 수출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촌진흥청장과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거쳐 2011년 aT를 맡은 김 사장은 지난해 재연임에 성공해 눈길을 모았다. 김 사장이 재임하는 동안 우리 농수산식품 수출은 연간 58억달러에서 80억달러로 뛰었다.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국내 농수산 업계도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고 있는 가운데 김 사장에게 우리 농수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방안에 대해 물어봤다.
-농업이 변해야 산다. 이 말을 강조한다.
△우선 농가소득을 줄이는 주범이라는 유통 문제부터 짚고 싶다. 산지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가기까지 유통비용은 전체 비용의 45%가량 된다. 유통업자들이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통업자들도 힘들다. 강원도 평창의 고추가 갑자기 서울로 오는 게 아니다. 지역과 지역을 잇는 유통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면 비용이 더 드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구조가 문제다. 이런 구조는 그동안 정부가 유통시설을 짓는 데 몰두했고 도매와 소매, 소비로 이어지는 유통체계가 고착화된 것이다. 서울 가락시장에만 가봐도 소비자 손에 가기까지 거치는 유통이 세 단계가 넘는다. 반면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빅데이터와 모바일을 기반으로 배송한다. 우리가 아직 옛날 대포를 쓴다면 아마존 같은 데는 최신식 무기를 장착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바꿔야 하나.
△직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유통구조를 밑에서부터 바꾸고 싶다. 이를 위해 양재 aT센터 비즈니스 라운지 안에 aT 스마트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여기서는 농민이 생산한 농식품을 카메라로 찍어주고 동영상으로 만들어준다. 이른바 맨얼굴에 화장을 해주는 것이다. 이러면 농가는 바로 홈페이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서 판매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aT 수의매매 시스템에도 스튜디오에서 소개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농민 자발적으로 마케팅하고 유통망을 사용하고 직접 배송하는 방식이다.
-취지는 좋지만 이용할 수 있는 농민이 극소수다. 확산은 어떻게 할 건가.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각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인구 50만명 이상 되는 도시에 이 같은 스튜디오를 모두 만들 계획이다. 농민들은 생산만 하면 모바일로 자체 판매는 물론 aT의 사이버망을 이용할 수 있다. 스튜디오에 가서 자기 농산물을 소개하면 된다. 수산물과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파는 외식제품까지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유통업체들 보고 자기 영역을 내놓으라고 하면 절대 진행이 안 된다. 스튜디오를 통한 자가 마케팅 판매가 확산되면 도소매 형식의 기존 유통시장을 휘젓는 한 마리 메기가 될 수 있다. 아래에서부터 자극을 줘 유통을 바꿔야 한다.
-몇 년째 늘어오던 수출이 줄었다. 대책이 있나.
△올해 역점 분야가 수출이다. 몇 년째 증가하던 농축수산 식품 수출이 지난해 80억달러로 전년보다 2억달러가량 줄었다. 엔저로 일본 수출이 줄었고 저유가로 신흥국 수출도 줄었다.
반면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은 선전했다. 우리나라 대중 전체 수출은 5%가량 감소했지만 농식품 수출만은 되레 5% 늘었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 특히 한중 FTA로 농산물 91%, 수산물 99%(품목 수 기준)를 중국이 대거 개방한다. 올해 '농수산식품 신수출 전략'을 만들어 대중 수출에 가장 집중할 계획이다.
-신수출 전략의 핵심은 무엇인가.
△상품성부터 차별화하겠다. 무조건 만들어놓고 중국 시장에 내놓는 공급자 위주의 전략으로는 중국 시장 수출을 확대하기는 어렵다. 우리 제품이 중국 제품보다 안전하니 먹어달라는 식으로 호소하는 시대는 갔다. 한국 상품을 수입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 진시황 때부터 불로초를 구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바로 중국인이다. 중국에 가보면 건강식품과 장수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의 어디 지역 쌀은 어떤 성분이 있어 혈당을 낮춘다'는 식으로 제대로 알리면 기능성 상품도 중국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다.
내륙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유통전략도 필요하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 우유가 좋은 줄 안다. 하지만 내륙에 가보면 먹고 싶은데 일류 호텔에서도 찾기 어렵다. 결국 유통이 문제다. 중국 온라인쇼핑 업체 알리바바의 성공을 분석해보면 그 중심에는 물류경영이 있다. 중국 지역유통업체들과 손잡고 물류기지를 이용해 내륙까지 우리 신선 수산물과 가공품이 들어갈 방안을 마련하겠다.
-할랄 시장 수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종교가 아닌 비즈니스로 봐야 한다. 할랄 식품이라고 특별한 게 아니다. 원래 더운 나라들이라 쉽게 상하는 돼지고기와 몸에 무리가 가는 알코올을 금지하고 재배나 도축 방식 등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중동 국가, 아프리카 북부 국가 등 다 포함하면 인구만 18억명이 넘는 시장이다. 거부감만 내려놓으면 원화로 1,200조원이 넘는 거대시장을 잡을 수 있다. 중국보다도 큰 시장이다. 전쟁지역은 전체 국가들 영토 가운데 극히 일부에 한정돼 있다. 할랄 수출을 늘려야 농수산식품 수출 100억달러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다.
-할랄 인증과 관련해 통일된 규범도 없고 비관세장벽도 심하다.
△국내 할랄인증기관인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가 말레이시아 자킴(JAKIM)과 교차인증을 맺었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 무이(MUI)와도 원재료 교차인증을 진행 중이다. 이미 우리 업체 가운데 300개가 할랄 인증을 받았다. aT는 중소농식품기업이 할랄 인증을 받는 데 필요한 비용도 2,0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두바이 등 5곳의 할랄 식품 박람회에 국내 기업들과 함께 참석했고 20회에 걸쳐 국내 할랄 식품 판촉행사도 열었다. 전체 농식품 수출은 줄었지만 지난해 K푸드 박람회가 열린 국가들은 평균 3.8%가량 수출이 늘었고 구매 의향도 10% 넘게 뛰었다. 할랄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박람회와 안테나숍 설치 등 마케팅을 통해 비즈니스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앞으로 어떤 분야를 유망하게 보나.
△국내 농업은 없던 시장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가령 춘란 경매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그간 춘란은 음지에서 5만원, 7만원 등 정해진 가격 없이 거래되고 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정상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경매시장을 만들었더니 지난해 2,500억원가량 거래돼 왔다. 가격이 1억원을 넘긴 난도 있다. 앞으로 국내 농업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춘란 경매를 발판 삼아 분재 경매시장도 준비하고 있다. 먹는 농업의 국내 부가가치는 25조원이지만 보는 농업, 체험하는 농업 등은 120조원이다. 이런 새 시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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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이상훈 경제부차장 shlee@sed.co.kr
/정리=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