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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불분불계 불비불발

시간계획 일일이 구속받은 아이… 대학생 돼서도 자기계발 어려워

동기부여 자극하는 환경 만들어 스스로 결정하는 힘 기르게 해야


12월이 되면 모든 학교가 방학을 한다. 아이는 학교 다니느라 하지 못한 것을 하고 싶어 한다. 아침에 늦잠도 자고 가족 여행을 가고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싶다. 반면 부모는 평소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뒤떨어진 공부를 보충하고 집안일을 거들었으면 한다. 이렇게 생각이 크게 다르다 보니 방학은 유쾌한 시간이 되지 못한다. 부모의 바람이 크면 아이는 학교 다닐 때랑 마찬가지로 여러 학원을 다니며 보충 수업을 하고 아이의 바람이 크면 부모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힘겨워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경험이 적다. 이것은 그만큼 아이와 부모가 대화와 토론을 하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익숙하지 않으니 아이와 부모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요구를 하게 된다. 특히 부모는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고 아이의 시간에 끼어들려고 한다. 부모의 마음을 말로 하면 "빈둥거리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압축할 수 있다.

아이가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부모의 요구를 따라가게 된다. 이렇게 아이의 시간이 어른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면 아이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정작 대학에 입학했지만 뭘 할지 몰라 1~2학년 동안 방황하는 평범한 대학생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어른은 아이가 "무엇을 하고 살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나서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를 중시했다. "무지에 분노하지 않으면 갈 길을 터주지 않고, 표현에 안달하지 않으면 퉁겨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비不發)." 공자는 제자가 모르리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제자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화를 낼 때 비로소 "이러면 되지 않을까?"라고 길을 터주고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 답답해할 때 옆에 다가가 "이 글자는 다른 글자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라고 퉁겨줬다. 사람은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을 키워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자 한다. 우리는 이를 '자기 계발'이라고 한다. 공자는 이 계발(啓發)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선생인 공자가 뭔가를 가르치려고 애달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인 제자가 알고자 애달아 하는 것이다. 이때 교육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가 있다.



공자는 지금의 교육 현장보다 몇 배나 더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었지만 3,000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숫자에 다소 과장이 들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공자를 찾아 떠나지 않은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한다. 학생들은 뭔가를 알고 싶어 공자를 찾아왔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모른다. 공자와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알고자 하고 무엇을 하며 살려고 하는지 정체성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인해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지 해야 하기에 내몰려서 하는 것이 아니다.

방학은 '무지에 분노하지 않으면 갈 길을 터주지 않을 수 있는' 불분불계의 좋은 기회이다. "오늘 무엇을 했느냐?"라고 성과를 묻기보다 무엇이 잘되지 않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질문을 바꾸면 좋겠다. 시간은 무엇을 해낼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지만 가족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선물이기도 하다. 이번 방학에는 선물 보따리를 풀며 기나긴 밤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누면 좋겠다. 이 제안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족마저 너무나도 각박한 사이가 된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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