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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65> ‘졸업’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꺼야 /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 ‘이젠 안녕’ 015B

마지막 순간이 가지는 진한 아쉬움을 ‘이게 끝은 아니다, 우린 또 다시 만날 거니까’라며 위로해 주는 노래. 순수하고 철없던 어린 학창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가사가 오늘의 나에게 울림을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끝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아쉬움을 직장에서 느낄 수 없으리라고 여겨왔던 걸까. ‘밟지 않으면 밟힌다’, ‘결국은 경쟁’이라는 말이 사회생활의 공식으로 통용된다고,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 왔는데 이젠 아니다. 얼마 전 소설가 이외수씨는 한 강연을 통해 경쟁사회라는 표현은 동물 세계에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긴 타인에 무관심하고 무신경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게 정상일 리 없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남에게 무관심한 걸까. ‘무관심’은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심을 많이 쏟을수록 인간관계에서 생채기 날 가능성도 높아지는 법이다. 사실 남 일에 신경 쓰는 게 꽤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 진짜 관심은 에너지를 많이 소진시킨다. ‘이래라 저래라’ 남 일에 훈수 두거나 ‘쯧쯧 안됐네’ 정도로 공감을 표현하는 건 해당 사항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남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가도 ‘정말 힘이 드는 순간’이 오면 누군가 내게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는 사실이다. 최악의 순간에 진짜 친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처럼 힘들 때 내밀어 준 손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별 일 아니었더라도 도움 받은 사람에게는 상상 이상의 의미가 있는 법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 단짝 친구가 한 둘씩은 있다. 함께 한 세월만큼 힘든 일도 많았기에, 곁에서 힘이 되어준 순간도 그 만큼 많았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늘 예외는 있는 법이다.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이다. 나도 그렇다. 얼마나 오래 함께 지냈는가와 이별이 전하는 아쉬움이 늘 비례하지는 않았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상대방이 떠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 역시 빈 자리의 헛헛함을 잘 표현해준다.

졸업은 축하받을 일이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학교를 졸업하듯, 배움을 마치고 나면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더는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더라도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응원하려 한다. 나도 언젠가 떠날 때 누군가에게 진한 아쉬움을 남길 수 있는 그리고 응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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