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가 지난 2월 ‘유통 전(全) 채널 최저가 판매’를 선언한 데 이어 3월에는 ‘절약의 발명 20(상시 할인 체제)’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등 국내 유통시장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유통업계 일각에선 ‘이마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공세를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국내 유통시장의 흐름은 크게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성장 정체와 온라인 유통 채널의 급성장’ 정도로 요약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2010년대 초부터 본격화됐다. 2010년 들어 스마트폰의 보급과 확산이 이뤄지고 쿠팡, 위메프, 티몬 등의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온라인 유통 채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소비 심리가 바닥을 기면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성장 정체 및 역성장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했다. 반면 온라인 유통 채널은 점점 그 성장 기울기가 가팔라져 갔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전체 소매 판매에서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14.7%를 기록해 15%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특히 지난해에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53조 9,340억원을 기록해 그동안 국내 소매 판매 채널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대형마트의 연간 거래액 48조 6,350억 원을 훌쩍 넘어서 화제가 됐다. 온라인 커머스가 소매 업태의 한 분류는 아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관행적으로 온라인 커머스를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과 직접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거래액 증감이나 성장률 비교를 통해 영위하고 있는 업태와 시장 변화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서운 이마트의 반격
지난해 대형마트의 연간 전체 거래액이 온라인 커머스에 추월당하면서 유통업계는 한동안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국내 주요 유통그룹사들이 주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메인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는 까닭에 충격은 유통업계 전체로 번지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이마트였다. 이마트는 지난 2월 18일 ‘유통 전(全) 채널 최저가 판매’를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 온라인 커머스 업체들, 그중에서도 특히 소셜 커머스 업체들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이마트는 이날 보도 자료를 통해 이번 최저가 판매 선언이 대형마트를 넘어 소셜커머스 업체들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명시했다. 할인 품목으로 기저귀와 분유, 생리대 등을 내세운 것도 소셜커머스 업체들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주요 관계자는 말한다. “이들 제품은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성장하는 데 핵심이 됐던 상품들입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바꿔 말하면 ‘이마트가 최저가로 경쟁할 경우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가장 아파할 제품들’이란 얘기가 되죠. 매우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그동안 다른 업체들은 장기 소모전을 염두에 둔잽(Jab) 공격으로 일관한 측면이 있었는데, 이마트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마트는 비교적 단시간 내 승부를 보려는 것 같습니다.”
이마트는 더욱더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2월 선전포고 이후 3주가 채 안 된 지난 3월 7일에는 ‘절약의 발명 2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절약의 발명 20 프로젝트는 매달 20개의 상품을 선정해 기획 특가로 파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마트는 세일 행사 기간도 기존의 1~2주에서 월 단위로 확대해 사실상 연중 내내 기획특가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
이마트는 온라인 서비스 확대 및 마케팅에도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쓱(SSG)~’광고로 그룹의 대표적인 온라인 복합쇼핑몰 SSG닷컴의 인지도를 크게 올린 데 이어 지난 3월 9일에는 두 번째 온라인몰 전용 물류센터인 ‘네오 002’를 오픈했다. 네오(NE.O)는 차세대 온라인 쇼핑몰을 뜻하는 ‘NExt generation Online store’의 줄임말이다. 소셜커머스들이 낮 12시까지 들어온 주문만 당일 배송하는 것에 비해, 네오 002 오픈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물동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이마트는 오후 3시 주문 상품까지도 당일 배송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경환 이마트 홍보팀 과장은 말한다. “저희는 훨씬 이전부터 당일 배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커머스를 위한 쇼핑몰이나 결제 체제 등도 이미 다 갖춰놓고 있었죠. 그런데 이런 이마트의 역량과는 별개로 이들 내용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머스 이슈가 많아지면서 ‘유통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이마트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좀 공격적으로 활동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쪽으로 내부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마트의 의도는 무엇?
이마트의 최근 활동을 두고 유통업계에선 ‘이마트의 각성’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셜커머스 업계 1위인 쿠팡을 콕 집어 이마트와 쿠팡 간 대결로 압축해 현재 상황을 바라보기도 한다. 신구(新舊) 유통 강호 간 대결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을 하는 측은 이마트가 각성한 시점에 대해서도 특별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온·오프라인 간 업태의 구분이 사라진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왜 뜬금없이 올해 들어 갑자기 (이마트가) 그러겠어요. 그것도 융단폭격 수준으로요. 이 정도면 이슈화를 넘어 시장 재편 같은 다른 목적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마트의 전방위적인 압박은 시기적으로 매우 민감한 때 시작됐다. 지난해 6월 쿠팡이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 달러 투자 유치를 받으면서 한껏 고평가된 이후, 지난해 말부터는 시장이 냉정함을 되찾으며 최근에는 ‘쿠팡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시장에서는 ‘쿠팡 내에서도 쿠팡의 미래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는 내용과 함께 ‘쿠팡의 지난해 적자 규모가 4,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추정도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말한다. “대규모 물류센터 확보와 쿠팡맨 배송을 위한 인프라 투자까지 고려하면 쿠팡은 소프트뱅크에서 받은 투자금의 절반 이상을 이미 지난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쿠팡이 역마진을 감수한 시장점유율 확대 전략을 지속할 경우 올해 역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손실이 불가피해 보이고요. 예상보다 적자 폭이 클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에 자금 고갈 역시 빨리 나타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안에 쿠팡이 투자자들이 만족할 만한 ‘절대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신규 투자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한다. 하나금융투자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쿠팡의 온라인 커머스 시장점유율은 5.6%, 모바일 커머스 시장점유율은 9.8%였다. 어느 모로 보나 ‘절대적인’ 시장점유율과는 거리가 먼 수치다. 게다가 모바일 커머스 시장점유율은 2013년 13% 수준에서 오히려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투자자들로부터 신규 투자를 받지 못하면 쿠팡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과 같은 역마진을 감수한 출혈 경쟁과 영업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시장점유율이 하락해 신규 투자 유치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 민감한 시기에 유통공룡인 이마트가 ‘총공세 모드’로 불쑥 끼어든것이다.
이마트발 충격의 그림자
이마트의 총공세가 비단 쿠팡에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대형마트 업체인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에게도 민폐가 되고 있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돼 빠른 시일 내 시장가치를 올려야 하는 홈플러스,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해 올해 반드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롯데마트에게도 시장점유율 확대는 지상 최대의 과제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시장 1위 사업자인 이마트가 먼저 치고 나가면서, 그것도 총공세 모드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하면서,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 전체가 충격에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이마트는 지금의 상황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경환 이마트 홍보팀 과장은 말한다. “시기적으로 우연히 잘 맞아떨어진 것뿐입니다. 지금 모든 유통채널의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을 반영하다 보니 최저가 가격 정책에서도 기존 대형마트의 최저가를 넘어서 온라인을 포함한 유통 채널 전체 최저가를 내걸게 된 거죠. 특별히 소셜커머스 업계의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습니다. 특정 업체 몇몇을 고려한 것도 아니었고요. 저희는 유통업계 1위로서의 위상을 좀 더 확고히 하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마트의 의도가 어떻든 이미 유통업계에서는 이마트발 충격의 후폭풍이 거세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주도했던 온라인 커머스시장이 기존 유통공룡들이 주도하는 체제로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미 유통업계에서는 이마트가 온·오프라인을 총망라한 ‘공격적인’ 최저가 경쟁으로 1년여 정도만 소셜커머스 업체들의 숨통을 조이면 이들 업체 중 몇몇은 도태될 것이란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다. 그동안 GS홈쇼핑, CJ오쇼핑 등의 홈쇼핑 업체들을 중심으로 치고 빠지기식 전략을 구사해왔던 기존 유통공룡들이 암묵적으로 확실한 구심점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유통업계는 대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다. 앞으로 유통업계의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이마트의 총공세 전환으로 유통시장이 더 재밌어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소셜커머스의 미래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다른 유통 업체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통한다. 소셜커머스 3사인 쿠팡, 위메프, 티몬은 2010년 창립초기부터 ‘소셜커머스 1등’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해왔다. 시장 잠식을 우려한 다른 온라인 쇼핑몰들이 이들의 혈전에 대응해 할인 경쟁에 뛰어들자,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더 강한 할인 프로모션으로 대응했고, 이는 온라인 커머스 업계 전체의 출혈 경쟁으로 이어졌다.
이같이 엄청난 출혈 경쟁에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현재까지도 거의 모든 업체가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중에는 자본잠식 상태까지 내몰린 곳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3년과 2014년에 CJ오쇼핑과 GS홈쇼핑 같은 덩치 큰 홈쇼핑 업체들이 온라인 커머스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며 소셜커머스 업체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였다. 홈쇼핑 업체들은 적자 상태를 견디지 못한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쓰러지면, 이들이 출혈 경쟁으로 키워놓은 온라인 커머스 시장을 집어삼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곧 쓰러질 것 같았던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외부로부터 자금 수혈을 받으면서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5년 6월에는 쿠팡이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 달러의 투자 유치를 받으며 판세를 뒤집었다. 쿠팡이 진행하고 있던 ‘로켓 배송’ 등의 서비스 혁신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높은 점수를 준 것이었다.
이후 한참 동안 ‘쿠팡 신격화’가 극에 달했다. 기업 가치가 2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등 출처 불분명한 장밋빛 전망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재무적 상황과는 별개로 다른 소셜커머스 업체들도 쿠팡발 훈풍에 힘입어 미래를 약속받는 듯했다.
이런 상황이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부터였다. 10억 달러 투자 유치가 워낙 큰 이슈였던 까닭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 그 단초가 됐다. 많은 시장 전문가들이 쿠팡을 분석했지만 결과는 ‘글쎄’였다. 취재 중 만난 투자업계 관계자도 “상장사 수준의 정보 공개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쿠팡이 조만간 큰 규모로 시장점유율을 가져가거나 확실한 수익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성공보다는 실패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말한다. “쿠팡을 비롯한 소셜커머스 업체들도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이익을 내는 구조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선사업이 아니라면 결국엔 이익 실현이 목적일 테니까 말이죠. 그런데 다른 업종으로 갈아타지 않는 한, 온라인 커머스에서 수익구조로 전환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나라 온라인 커머스는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서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들 소셜커머스 업체들에겐 시간도 얼마 없죠. 이마트나 홈쇼핑 업체들처럼 확실한 캐시카우 채널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쿠팡을 비롯한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어떤 식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저희도 정말 궁금합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팀/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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