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지나온 세월을 미화하고픈 욕망이 있다. 부정적인 것은 잊어버리려 하고, 좋아 보이는 것은 좀 더 과장하려고 한다. 과거의 빛나던 시절을 회고하는 그러니까 지금은 그때보다 잘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흔한 멘트는 ‘나도 한 때는 잘나갔는데’다. 보통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모양 빠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때 종종 사용된다. 구차하지만, 화려한 옛날을 봐서라도 나를 좋게 기억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지나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가 공적인 약속에 의해 널리 공유되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선거 때다. 공직후보자들은 자신의 재산과 학력, 그리고 각종 범죄 이력들을 매우 소상히 적어 공유해야 한다. 사건의 배경이 무엇인지, 어떤 맥락으로 발생했는지에 대해 소명할 기회라기보다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의 정보를 적어내면 포털을 통해 고스란히 그 정보가 퍼지는 구조다.
어떤 사람들은 ‘귀엽게’ 음주운전이나 고성방가와 같은 법적 이슈에 휘말린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세상을 살다보면 한 두 번 쯤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공직 후보자들의 범죄 경력(운동권 이력을 제외한)이 지나치게 화려해지는 추세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누적된 전과에 사기 전력을 갖고 있고, 허위로 재산 상황을 선거 공보물에 실었다가 선관위에 신고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누군가는 제자의 논문을 훔쳤다. ‘글을 잘 못쓰는’ 지방대 출신 제자들을 배려하여 자신이 직접 문장을 편집하고, 제대로 된 글을 단독 저자로 학술지에 게재했다는 논리다. 그 사람은 매우 유명한 이공 분야의 ‘국민 멘토’로 입문서도 냈고, 대중적인 인기도 끈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을 사전에 ‘스크리닝’할만한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보통 회사 공채에서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싶은 사람은 바로 ‘컷오프’ 된다. 그런데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할 공직자로 출마하는 사람들 중에 납득하기 힘든 행태를 보였던 이가 적지 않다니 그러고도 뻔뻔하게 국민의 대의자로 나설 수 있는 세상이라니 ‘참으로 관대한 세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스운 건 이 관대함이 선별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유난히 ‘과거’에 민감한 사회다. 지난날 무엇을 했느냐가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피니언 리더들의 업보에 대해서는 무덤덤하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나쁜 놈들인데 뭐’ 하면서 정작 투표장에 가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한 표를 행사하는 역설적인 정서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이런 독특한 업보에 대한 ‘관용’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자리에 ‘다 그렇지 뭐’라는 식의 반응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아닐까. 아이러니한 이 상황을 바로잡는 인식의 전환은 과연 이뤄질까.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