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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에서]르완다에서 보내는 편지

박용민 주르완다대사

식민지배…독립…분쟁…고성장

과거 한국 모습과 닮은 점 많아

사회통합·국민화합 이끈 르완다

원인·배경 다르지만 참고해볼만

박용민 주르완다대사




오늘 르완다에서 우리의 어제를 봅니다. 7%대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르완다는 오늘날 세계 7위의 효율적 정부, 아프리카에서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세계경쟁력보고서),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기업 활동하기 쉬운 나라(세계은행 보고서), 아프리카에서 야간 치안이 가장 좋은 나라(갤럽 조사)가 돼 있습니다. 불과 20년 전의 르완다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런 변화는 놀랍기만 합니다. 1994년 과격파 후투족이 소수종족인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에 대해 대규모 살상을 한 사건으로 1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제 재난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황폐해진 나라는 본 적이 없다고 했었죠.

하지만 르완다 국민들이 그간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날 르완다의 위상을 당연하다고 여길 겁니다. 르완다인들은 외국인이 르완다의 성취를 마술(magical)이라고 말하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저도 한국의 발전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고까운 마음이 듭니다. 한국인이 전쟁 후에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모르는 사람들 눈에만 우리가 이룬 성취는 기적으로 보일 겁니다.

식민지배에서 독립하고 분쟁을 경험한 뒤 고속 성장을 하면서 과거의 불운을 떨치는 작은 나라, 천연자원조차 풍부하지 않은 르완다의 처지는 한국인에게 낯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르완다가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성공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우리가 저지른 실수에서도 교훈을 찾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르완다를 중점협력대상국으로 정하고 새마을 운동을 포함한 농촌개발, 직업훈련과 교육, 정보통신기술(ICT) 등의 분야에서 원조를 시행하는 진의입니다.

르완다에서 우리의 오늘도 봅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두 나라가 헤쳐나가야 하는 국제적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처럼 세상이 ‘평평해졌기’ 때문이죠. 극단주의와 난민 문제,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문제, 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 하락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한 저성장 문제 등에 관해 우리는 고민을 나눠야 합니다.



유독 낯익은 기시감을 느끼는 대목은 르완다 역시 현 체제를 부정하는 새외(塞外)의 동족 집단으로부터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점과 과거사 문제를 두고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2년 전 동부 민주콩고로 피신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주도세력은 거기서 반군 집단을 결성해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지요. 한편 그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1994년에 벌어진 제노사이드의 원인과 결과를 왜곡하려는 세력이 나라 안팎에 있고 르완다는 그에 맞서 역사적 내러티브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더군요. 그런 국민들에게 먼 대륙의 일이라 한들 과거사와 관련된 문제가 어찌 한가한 관심 밖의 일이겠습니까.

못 믿으실지 몰라도, 저는 르완다에서 우리나라의 내일도 봅니다. 정확히 언제일지 어떻게일지는 몰라도 한반도는 장차 통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마음을 쏟아야겠지만 일단 남북통일이 이뤄지고 나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이 될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실패한 국민화합 사례는 많고도 많습니다만 우리가 참고할 성공사례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물론 1994년에 르완다에서 벌어졌던 비극은 우리나라의 경험과는 판이합니다. 배경도 원인도 경과도 맥락도 다르지요. 하지만 르완다가 지난 22년간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그것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왔다는 사실은, 통일 후 한국이 거기서 뭔가 의미 있는 교훈을 도출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아 있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우리 두 나라가 국민화합을 과제로 지니게 된 불행은 달랐을지언정 국민화합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들은 의외로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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