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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샌더스ㆍ트럼프가 주는 메시지





얼마 전 우연하게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한 미국인 남성과 미국 대선 경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민주당 성향의 그는 열렬한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 팬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러시아에서 부모님과 함께 이민 와 힘들게 대학을 나왔고 더 큰 꿈을 위해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하지만 미래가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생활비와 학비 마련 등을 위해 닥치는 대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비슷한 처지의 약혼녀와는 언제 결혼할 수 있을 지도 불투명하다. 그는 “공립대 무상교육 등 ‘버니’의 공약이 실현될지는 둘째 문제이고 최소한 평범한 젊은이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해보려는 대선 주자가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나르시시즘 정신병자”라고 맹비난하는 그에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어떠냐”고 물었다. 즉각 “권력욕에 찌든 마녀(witch)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더불어 정치 경력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쌓고 있고 미국의 미래보다 개인적 야욕을 위해 대통령까지 노리는 모습이 무서울 정도라는 것이다. “만약 본선에서 트럼프와 클린턴이 맞붙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쓴웃음을 짓더니 “기권할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클린턴을 혐오하는 진보 성향의 젊은이들이 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들에게 클린턴과 트럼프는 ‘도긴개긴’이다. 아무리 “샌더스가 부의 불평등 해소에 대해 공허한 이상만 외치는 것과 달리 클린턴은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을 뿐이다. 공화당 주자들과 달리 결코 젊은이들의 적이 아니다”라고 떠들어봐야 먹히지를 않는다.

이들에게 클린턴은 월가와 기득권층 이익에 놀아나는 구시대 정치인에 불과하다. 월스트리트(WSJ) 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에 대한 비호감도는 지난해 초 35% 수준에서 최근에는 56%까지 치솟았다. 경선 레이스가 장기화할수록 ‘정직’ ‘신뢰’ ‘청렴’ 이미지의 샌더스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탓이다. 이 때문에 클린턴이 19일(현지시간) 뉴욕주 경선 완승으로 대선 후보 지명의 8부 능선을 넘었지만 본선 패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 지도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우회적으로 클린턴 지지를 선언하는 등 샌더스에 대해 낙마 압력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샌더스가 경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여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에서도 젊은 층, 비정규직,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경기 회복의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성찰이 일고 있다. 클린턴 역시 샌더스 돌풍을 방어하느라 월가 규제, 빈부 격차 해소 문제 등에 대해 더 좌클릭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신드롬 역시 생활고에 빠진 저소득층 보수 백인 남성들의 기존 정치권을 향한 왜곡된 불만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이들이 희생양을 찾아 이민자·무슬림·여성 등을 향해 막말을 일삼고 있는 트럼프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공화당이 두 쪽으로 쪼개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최근 유럽 내 중도 좌파 정당들도 신생정당들이 급부상하자 지금까지 노조와 같은 기득권화된 전통적 지지층의 이익만 옹호해온 것이 아니냐는 자성이 일고 있다. “우리는 부유층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했을 뿐 정작 대졸 실업자 등 경기침체와 세계화로 더 고통받는 다양한 계층을 외면해왔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 총선에서 증명된 것도 조직화되지도 않은 젊은 유권자들의 반란이다. 이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년 일자리가 없으면 중동으로 진출하라’라는 따위의 어이없는 기성세대의 헛소리에 분노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 정치권도 ‘보수 대 진보’ ‘성장 대 분배’라는 진영 논리를 깨고 젊은 층의 절망과 아우성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제도권 정당의 생존은 물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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