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유럽 노선의 컨테이너 운임 붕괴로 운영난에 빠진 세계 해운사들이 그나마 수익이 나는 태평양 노선으로 몰려들면서 아시아에서 미주 서안(西岸)으로 가는 운임까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럽 노선에서 미주 노선으로 선복량(화물 적재량)과 운임 폭락이 옮겨가는 현상이 본격화하면서 그동안 미주 노선에 주력해온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국적선사가 입을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보여 경영 정상화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이달 넷째 주 기준 아시아에서 미주 서안으로 가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FEU(12m 길이 컨테이너 1개)당 725달러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596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최근 해운사들을 줄줄이 운영난으로 몰아넣은 직접적인 원인은 유럽 운임 폭락이다. 지난해 상하이와 유럽 간 컨테이너 평균 운임은 TEU(6m 컨테이너 1개)당 620달러로 지난 2014년(1,172달러)보다 47% 급락했다. 같은 기간 상하이~미주 서안 운임도 FEU당 1,975달러에서 1,482달러로 25% 떨어졌지만 상대적으로 유럽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미주 운임까지 눈에 띄게 떨어지며 선사들의 경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
미주 노선 부진의 이유 역시 유럽 노선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 건조된 1만3,000TEU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대부분 유럽 노선에 배치되면서 기존 유럽 항로를 다니던 1만~1만2,000TEU급 선박이 북미 항로로 전환 배치되며 선복량이 연쇄 증가해 공급과잉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영국의 해운·조선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미주 노선 물동량은 지난해보다 3.8% 증가한 2,348만TEU지만 선복량은 5% 늘어난 2,075만TEU로 물동량 증가분을 뛰어넘어 공급과잉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 들어 유럽 운임이 TEU당 200~300달러로 바닥을 기자 적자를 견디지 못한 선사들이 그나마 수익이 나는 미주 노선에 집중하는 점도 운임하락을 부채질했다. 아시아~미주 서안 항로에서 1만1,000TEU급 선박 7척을 운용 중인 세계 3위 프랑스 해운사 CMA-CGM이 다음달부터 1만8,000TEU급 선박 6척을 추가로 투입할 예정인 가운데 다른 글로벌 선사들도 초대형선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돼 미주 운임이 유럽 운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지난달 아시아와 북미 간 수출 물동량이 지난해 3월보다 26% 감소하는 등 수급 여건까지 나빠지고 있어 5월에도 미주 운임이 오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미주 운임 하락이 국적선사에 더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해운통계 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미주 노선 시장점유율은 각각 7.5%와 4.1%로 유럽 노선 점유율(한진 4.8%·현대 2.4%)을 크게 웃돈다. 지난해 한진해운 전체 수송량의 40%가 미주노선에서 발생할 정도로 국적선사들은 해외 다른 선사들과 비교해 미주 노선에 훨씬 많은 역량을 쏟고 있다. 유럽 노선의 적자를 미주 노선 수익으로 상당 부분 메워온 국적선사들로서는 미주 운임까지 더 떨어지면 기댈 곳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용선료(선박임대료) 협상 등 채무 재조정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찬데 운임까지 계속 떨어지고 있어 해운사들의 경영 정상화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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