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건설·요식업 등 승승장구
한국 돌아와 투자업 변신했지만
IT 버블 꺼지면서 첫 실패 쓴맛
하청 건설업체, 식당, 빵집, 속옷가게, 창업투자회사, 저축은행….
최윤(52·사진)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은 창업계에서 전설 같은 인물이다. 연매출 수천만원의 속옷가게부터 총자산 규모 약 6조5,000억원의 아프로서비스그룹까지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10개 이상의 자영업체와 기업을 일궈냈다. 최근 서울 중구 아프로서비스그룹 본사에서 만난 최 회장은 “사업은 숙명과도 같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일본 나고야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인 그는 “당시 일본 사회에서 재일한국인은 일반기업의 문턱도 넘기 힘들었다”며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식당과 사업뿐이었다”라고 말을 이었다.
그의 오늘을 만든 것은 바로 어린 시절이었다. 고작 11세에 그는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옆집에 살던 우유배달원을 도운 뒤 꼬깃꼬깃한 1,000엔 지폐를 손에 쥐며 ‘노력을 통해 얻는 성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어 신문배달을 하면서 자립심을 깨닫게 됐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수업은 뒷전이었다. 그는 “1년에 학교에 간 날이 50일도 채 안 됐을 것”이라며 “책으로 얻는 경영지식보다 현장에서 부딪치며 얻는 경영지식이 내게는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소규모 하청 건설업체를 차려 수년간 운영하면서 최고경영자(CEO)의 역할과 덕목을 알게 됐다. 그러나 건설업에만 안주하기에는 그의 젊음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요식업으로 진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는 한번 결심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이른바 ‘올인’하는 성격이다. 나고야에 대규모 불고기 식당을 차리는 데 인테리어 비용만 5O억원을 썼다. 주변에서는 “정신 나간 인간”이라고 혀를 찼다. 그가 시작한 350석의 레스토랑은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만석이 됐다. 이후 일본 전역에 지점 60개를 내고 연매출 600억원을 올리는 프랜차이즈 CEO가 됐다.
요식업으로 대성공을 거뒀지만 그는 여전히 목말랐다. 부모님의 모국인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일교포 친구들은 “한국에서 성공한 재일교포가 없으니 꿈 깨라”고 말렸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일부 사업을 정리해 마련한 자금으로 창업투자회사를 차렸다. 건설업에서 요식업, 그리고 투자업으로 또다시 변신한 것이다. 당시 한국과 일본에서는 정보기술(IT) 열풍이 불었다. 그의 사업도 순항하는 분위기였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화끈하게 달아올랐던 IT시장은 버블이 꺼지면서 투자자들도 심각한 손실을 보게 됐다. 투자업자로 탈바꿈한 그가 사업에서 처음으로 실패한 순간이었다.
대부업법 발판삼아 새시장 개척
러시앤캐시에 OK저축은행까지
종합금융 서비스社로 진화 거듭
‘서테크’로 또 다른 도전 이어가
실패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줬다. 때마침 한국에서 대부업법이 제정되며 소비자금융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그는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고 일본과 미국의 사례를 공부하면서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드디어 남은 일생을 걸고 도전할 분야를 찾았기 때문이다. 남은 재산을 모두 털어 소비자금융 업체를 차리는 데 사용했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돈은 벌 만큼 벌었다”며 “하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면서 인정받는 자리에까지 올라선 적은 없었고 소비자금융업에서 그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아프로서비스그룹은 10년간 급성장을 거듭해왔다. 지난 1999년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로 소비자금융업을 시작해 성공을 거뒀고 2014년에는 OK저축은행이 출범 1년 반 만에 저축은행 자산규모 업계 2위에 오르는 성과도 거뒀다. 최근에는 씨티캐피탈을 인수해 그룹 내 여신전문 금융회사인 OK아프로캐피탈과 합병을 추진하며 진정한 종합금융 서비스사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성공을 자주 럭비에 비유한다. 럭비공은 타원형이라 소위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의 인생역정도 이와 닮아 있다. 하지만 그는 “럭비공은 원하는 곳으로 정확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항변한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럭비공을 특정한 위치로 보내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수년 뒤에는 목표하는 대로 보낼 확률이 90% 이상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럭비공은 타원형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날아갈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며 “하지만 럭비선수들은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고 결국 원하는 대로 보낼 확률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고 사업도 이와 같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이제 세계시장을 향해 던졌다. 2012년 중국 톈진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 금융업계를 통틀어 최초로 2015년 폴란드 시장도 개척했다. 또 소비자금융업에서 출발해 제도권 금융업으로 성장한 한국에서와 달리 인도네시아 안다라뱅크, 캄보디아 캄코뱅크 등 현지 시중은행을 인수해 은행업을 시작으로 종합금융 서비스업을 제공하려 한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평소에 직원들에게 이단에서 정통을 추구하고 또 정통에 올라선 순간 다시 이단을 추구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며 “항상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는 것만이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숨 가쁘게 살아온 그의 나이는 어느덧 52세. 이제 멈출 때도 됐지만 또다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금융업이 아닌 다른 사업이다. 그는 “내가 현재 하는 사업도 금융업이라기보다는 금융 서비스업”이라며 “청년 시절부터 해온 모든 사업은 ‘서비스업’이라는 공통된 맥락에서 범위가 확대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다음에 할 사업은 금융과 다른 영역이 결합된 것이다. 그는 “요즘 핀테크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미래 사회에는 서테크(surtech)가 유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테크는 서비스와 테크놀로지를 합친 신조어다. 구체적으로 구상한 서테크 아이템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머릿속에 구상은 있지만 아직 밝힐 수 없다”며 웃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치라인을 바라보는 최윤 대표. 그는 다시 럭비공을 세워 킥을 준비하고 있다. /이두형기자 mcdjrp@sedaily.com
●최윤 회장은 △1963년 일본 나고야 △1987년 나고야가쿠인대학교 경제학 학사 △1989년 한식당 ‘신라관’ 나고야점 개점 △2002년 원캐싱 대표 △2004년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 대표 △2004년 러시앤캐시배정장학회 이사장 △2007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2013년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배구단 구단주 △2014년~ 아프로서비스 회장 겸 OK저축은행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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