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 지주회사 전환으로 해외 글로벌 거래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한국거래소의 야심 찬 꿈이 물거품이 됐다. 국내 자본시장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경제법안조차도 지역 이기주의와 여야 간 정쟁에 발목이 잡혔다. 해외 거래소들이 앞다퉈 지주사 전환과 기업공개(IPO)를 통해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신사업 진출에 나서는 사이 경쟁에서 도태되면서 한국이 글로벌 자본시장의 변방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지난 18일 열린 19대 국회 마지막 법사위의 문턱을 결국 넘지 못하며 자동폐기됐다.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바꾸고 코스피(유가증권시장)와 코스닥·파생상품 등 거래소 내 3개 시장을 자회사로 분리함으로써 시장 간 경쟁을 촉진한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입법 취지만 놓고 본다면 여야 간에 별다른 이견이 없는 무 쟁점 법안이다.
하지만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주회사의 본사 소재지를 부산으로 명기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며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 계획은 암초에 부딪혔다. 당초 금융위는 지주사 본사를 부산에 두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야당은 향후 상장할 회사의 본사 소재지를 법에서 정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다. 이에 본사 소재지의 부산 명시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이번에는 부산 지역 의원들과 부산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법안은 또다시 표류하게 됐다. 게다가 20대 총선에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소속 의원들이 대거 낙선·낙천하는 바람에 법안 처리를 위한 제대로 된 회의조차 열지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한국거래소는 거래소 지주사 전환을 20대 국회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국거래소 측은 “지주회사 전환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내 자본시장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20대 국회에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 현재 상황을 만회할 기회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회 내에서도 재발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음 발의한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은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바로 법안을 다시 발의할 계획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그동안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진 부분을 토대로 다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며 “지주회사 본사 소재지를 부산으로 명시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을 고려해 ‘파생금융중심지에 본사를 둔다’는 문구로 대체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20대 국회 통과를 호언장담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정무위 소속 의원의 절반이 물갈이된데다 여소야대 정국으로 재편되면서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국회에서 거래소 지주사 전환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 강경파 성향의 야당 의원들이 대거 정무위로 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부담이다.
거래소가 상장하며 얻게 될 이익의 환원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정부는 법률적으로 상장 차익의 출연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별도의 논의기구를 만들어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에서는 지주사 전환에 앞서 상장 차익의 구체적인 사회환원 규모 등을 정하고 법안으로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오히려 본사 소재지 문제보다도 상장 차익의 사회 환원 요구가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법안 통과의 지연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자본시장 선진화의 전제 조건인 거래소 지주사 전환을 위해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였음에도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얽혀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온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며 “20대 국회에서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김현상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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