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내 영화가 잔인하고 불친절하다고? 팩트가 아니다”

영화 '아가씨' 연출한 박찬욱 감독 인터뷰

“코우즈키의 서재는 식민지 근성이 뿌리 깊은 자의 내면을 시각화한 공간"

"여성들의 해방만큼이나 식민지 시대 지식인에 대한 비판도 하려했다”

박찬욱(52·사진)이라는 이름이 주는 선입견은 기대감만큼이나 크다. “(내 영화가) 잔인하다는 것과 불친절하다는 게 문제죠.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정확히 두 문장으로 정리해 말하는 감독에게선 약간의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이번 영화 ‘아가씨’는 난해하거나 폭력적인 이야기가 아니니 미리 싫어하지 말라고 일러두고 싶다”며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한계는 있지만 되도록 많이 봐서 흥행 영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며 웃었다. 박 감독이 흥행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선입견도 이번 기회에 버리자. 다음은 감독과의 일문일답.

박찬욱 감독




■노련한 배우 김민희(히데코 역)와 신인 김태리(숙희 역)의 연기 앙상블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이미지가 캐릭터 적인 것은 물론 영화 외적으로도 확 와 닿았는데, 이런 느낌을 강조하려고 신인을 캐스팅한 것인가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아가씨’고 ‘하녀’이니 신분 차도 있고 또 나이 차도 있고, 역할 자체로 위아래 차이가 진다. 여기에 한 꺼풀이 더 씌워진다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다. 또 처음에는 두 사람 사이 격차가 있지만, 영화 말미로 가면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진다. 그 여정이 좀 더 드라마틱해지려면 처음의 간격이 좀 더 벌어지는 게 좋다고 여겼다.

■‘핑거스미스’라는 영국 시대 소설이 원작이다. 한국적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공들여 각색한 부분이나 크게 달라진 지점이 있을까.

=단순히 배경을 한국으로 옮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식민지 시대라는 것이 중요했다. 소설에는 아무리 신분이 달라도 어쨌든 같은 나라 사람인데 여기서는 아예 나라가 다르니깐. 다른 민족이라서 생기는 그런 긴장 관계라든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다거나 하는 지점이 아주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해야 했다. 쉽게 말하자면 ‘코우즈키(조진웅 분)’가 중요해진 것이다. 친일파 한국인인데, 단순히 ‘일본에 붙어먹어야지’가 아니라 ‘일본인이 돼야지’라고 하는 정도의 극단적인 친일파라는 인물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런 ‘코우즈키’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것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인가.

=그런 측면이 있다. 뼛속까지 친일파가 궁극의 변태이기도 한 것이니깐. 그리고 그가 공들여 빚어놓은 창조물이나 다름없던 히데코가 그의 목숨보다 아끼는 수집물을 망가뜨리고선 자기 욕망을 찾아, 궁극의 쾌락을 즐기면서 극을 퇴장하는 거니깐, 코우즈키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패배하고 멸망하는 것이 된다. 또 그처럼 내면이 완전히 식민지화된 사람들은 당시에만 있고 지금은 사라진 게 아니라 상류층 지식인 계급에서 언제나 발견되는 사람들이다. 악당을 처치하는 희열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아가씨’ 속 코우즈키의 서재


■실제 ‘아가씨’에서 가장 공들여 만든 공간도 코우즈키의 서재라고 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설명해주면 좋겠다.

=서재는 낭독회가 이뤄지는 공연장이기도 하고 코우즈키의 콜렉션이 보관되는 도서관의 성격도 있다. 지하에는 또 고문실이 있고. 즉, 코우즈키의 주 활동이 다 이뤄지는 곳인데 히데코 또한 그곳에서 자라났다. 그런 복합적 느낌을 주기 위해서 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이질적 디자인을 꾀했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이런 것이다. 히데코가 다다미가 깔린 무대에 올라 책을 읽으며 독회를 준비하는데 뒤에서는 하인들이 일본식 정원을 꾸미고 있고, 코우즈키는 그 완성도를 만족하면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지배자로서의 만족감을 잔뜩 드러내는 것인데 식민지 근성이 뿌리 깊은 자의 내면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걸 파괴하는 것이 두 여성의 결정적 행위다.

■영화의 소재나 감독님의 전작 등을 보고 짐작할 때 에로티시즘이 매우 강조된 영화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좀 달랐다. 과감한 성적 묘사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야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는데 의도된 것인가.

=물론 예쁘게, 우아하게, 아름답게 찍으려고 했다. 관음증적 시선은 배제하려고 했고, 충동과 성욕의 급한 해소가 아니라 서로 간에 쌓아 올려간 친밀감이나 서로 아끼려는 느낌을 잘 표현하려고 했다. 또 정사 장면에서 말도 많이 하고, 웃기는 얘기도 하니깐 일종의 흥분감이 깨지는 거다. 하지만 내 의도는 의도고, 받아들이는 건 다 달랐다. 성별 차이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닌 것 같은 게 우리 스텝들 사이에서는 여자들이 아주 야하다, 남자들은 하나도 야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 반면 먼저 영화를 본 기사들 사이에서는 반대라고 하더라.

‘아가씨’ 촬영 현장에서의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왼쪽)


■‘아가씨’는 전작들과 비교하자면 이야기가 쉽고, 등장인물들도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작정하고 대중적인 걸 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감독이 좀 변한 건지.

=관객들을 배려했다고 할 만한 부분이 하나가 있긴 한데 플롯을 따라가기 쉽도록 했다는 것이다. 내 전작들은 한 번 얘기했으면 됐고 반복하지를 않았는데 ‘아가씨’는 구조적으로 반복하게 돼 있는데다가 의도적으로 몇 번씩 더 설명을 했다. 물론 지저분한 사족은 아니어야 하니 반복할 때마다 뭔가가 조금 더 덧입혀지고, 유머러스하고 재치있게 느껴지도록 노력했다. 플롯을 못 따라갔다는 얘기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같은 맥락일까.

=그런 거 같다. 일례로 영화를 먼저 본 남자 관객 중 백작(하정우 분)의 마지막 회상을 보고 콧날이 찡했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시종일관 나쁜 짓을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걔들 둘이 좋아했던 거구나, 내가 이 꼴이 된 게 그 둘 때문이구나’ 하는 걸 깨닫는 건데, 그 장면을 이해하면 백작이 그렇게 둔하고, 그래서 딱하다는 마음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거기서 영화를 끝내지 그랬느냐고도 하던데, 거기서 끝내면 어쩌라고(웃음). 그럼 안 돼지.

■칸에 다녀왔는데 수상은 못 했다. 언론이나 국민들의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인데, 아쉽지는 않았나.

=상을 받았으면 물론 좋았을 것 같다. 영화 마케팅에 큰 호재니까(웃음). 그런 면에서는 아쉽긴 하지만.... 나도 다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어쩔 수 없이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보니 상을 결정한다는 게 얼마나 각자의 취향에 좌우되는지를 안다. 다들 영화 선수들이고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일 텐데도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한 영화를 최고상을 주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깐 그런 수상이란 것도 결국 타협의 산물인 것이다. 돌아가는 게 뭔지 조금은 아니깐 상에는 연연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할리우드를 경험한 후 좀 바뀐 것들이 있나.

=확실히 좀 빨리 찍게 됐다. 현장에서 배우·스텝들과 상의해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볼까 하는 일들이 없어졌는데, 그만큼 재미는 없다. 이를테면 하정우만 해도 감독을 하고 있으니 얘기해 보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싶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나 보다.

■유명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다. 요즘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자들도 많이 출연하는데, 취미를 살려 오페라나 음악극 등을 연출하실 생각은 없으신가.

=오페라 연출 제의를 많이 받았는데, 사실 오페라는 잘 모른다. 또, 한번 들어가면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 같고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길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좀 멀리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이니 응할 수가 없는 거다. 국내 오페라단에서는 제안을 별로 못 받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줄곧 끌리는 이야기는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다.

=자기 잘못에 대해 인지하고 죄의식을 갖고 괴로워하는 사람, 그런 데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구원받으려고 애쓰는 사람,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사진제공=CJ E&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