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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의 빛과 그림자...주민발의 13





1978년 6월6일 캘리포니아. ‘주민 발의(Proposition) 13’에 대한 찬반 투표가 치러졌다. 핵심은 재산세 경감. △지역에 따라 시가의 2.6%까지 치솟았던 재산세를 1% 수준(현금가격 기준)으로 낮추고 △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과세 표준)의 상승률을 최고 연 2%로 국한하며 △세율을 이보다 올리려면 납세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캘리포니아의 감세안 투표는 미국은 물론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굳어진 미국의 조세 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논란이 뒤따랐다. 경제학자들도 격렬한 찬반 논쟁을 펼쳤다.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는 적극 지지를 보인 반면 케네스 애로 하버드대 교수는 ‘주 정부는 물론 중앙 정부의 재정까지 위협받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격렬한 논란 속에 캘리포니아주민들은 여느 때와 다르게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투표 참여가 낮아 주민 발의투표가 아예 성립조차 안되던 이전 경우와 달리 유권자 1,013만명 가운데 684만3,001명이 선거권을 행사했다. 투표율 67.6%. 결과는 찬성이 훨씬 많았다. 찬성 62.6% 대 반대 34.0%(무효 3.4%). 대학교수들과 빈민들이 적극 반대했으나 세금을 내리자는 대의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주민 발의의 배경은 경제난. 스테그플레이션으로 소득이 줄어드는 데도 과세표준이 오르며 세 부담이 가중된 데 따른 반작용이다. 미국에서 가장 비싼 재산세가 ‘주민 발의 13’을 야기한 직접적인 도화선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납세자 반란은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메사추세츠주와 코네티컷주 등에서도 비슷한 주민 발의와 주민 청원 등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활용한 조세 저항이 잇따랐다.

미국 내 각주로 번진 납세자 저항은 권력 지도까지 바꿨다. 납세자 저항 운동의 지향점과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의 감세 공약이 묘하게 겹치며 1980년 미국 대선의 향방을 갈랐다. 가뜩이나 인기 없던 현직 대통령인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주민발의 13으로 야기된 전국적 조세저항은 레이건 후보의 백악관행에 1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주민발의 13’은 성공했을까.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가난한 자들의 몫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줬다’는 혹평과 직접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찬사가 교차한다. 확실한 사실은 캘리포니아주의 세수가 40%나 줄었다는 점이다. 50개주 가운데 최고 수준이던 교육보조금이 최하위권으로 떨어지고 일인당 주민소득도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빈자를 위한 주립 병원과 응급실까지 문닫을 정도로 주의 살림살이가 거덜났다.



오죽하면 주민들이 2003년 재정파탄의 책임을 물어 주지사를 주민소환으로 끌어내렸을까. 영화배우 출신인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새로운 주지사로 선택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꼬였다. 슈왈츠제네거 주지사는 지출 억제를 위해 복지 등 지출 축소를 시도했으나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에 막혔다. 주지사가 세금을 올리려 하면 이번에는 공화당이 가로 막았다. 결국 주와 연방정부 재정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왜 캘리포니아 재정 위기가 연방 정부의 재정 악화로 이어질까. 덜 걷힌 세금 수입을 대체하며 주 정부는 카운티와 시 정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연방정부는 주 정부의 재정을 지원한 결과 나라 전체의 재정이 나빠졌다. 다른 주들도 아우성이다. 규모가 크고 재정 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캘리포니아 주에 대해 연방정부가 지원할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다른 주들이 반발하는 경우가 잦다.

감세를 둘러싼 캘리포니아주의 직접 민주주의와 그 파장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일개 주이지만 경제 규모로는 웬만한 국가를 능가한다. 주내 총생산이 약 2.3조 달러로 국가로 치면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에 이어 7위권에 해당된다(한국은 13위). 주민 1인당 소득 역시 5만9,562달러로 한국의 두 배 이상이다.

집단적 포퓰리즘을 제도화하고 결국 재정을 망친 캘리포니아 사례마저 한국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감세나 증세나 하나같이 포퓰리즘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국가 재정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건만 정치권 어디서도 해법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가 부채 규모를 논하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판이니.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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