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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Watch] 강남역 고시촌의 두 얼굴

돈 아껴가며 '공시'에 매달리는 흙수저 vs 여가 즐기며 '의치전' 준비하는 금수저

● 한지역 두 생활풍경

나이·집안·학습장소·밥먹는 곳 등

테헤란로를 사이에 두고 천지차이

● 공시생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 해결하고

인강은 학생끼리 비용 나눠 듣기도

● 의치전 수험생은

대부분 부유층 자녀로 오피스텔 살며

카페서 자율학습하고 밤엔 개인생활





“테헤란로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고시생들이 모여 있어요. 나이와 집안 환경부터 밥 먹는 장소, 학습 공간, 라이프 스타일까지 모두 다르다고 보면 돼요.”

서울 강남역에서 오랫동안 학원에 다녔다는 김진(32·가명)씨는 강남역의 최근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강남역 부근이 새로운 고시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토종 고시촌이라 할 수 있는 노량진과 신촌·신림·종로 등에 비해 다양한 분야의 학원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편입 대비 학원, 의·치학전문대학원 및 약대 편입 대비 학원들에 이어 최근 들어선 공시(공무원시험)와 로스쿨 입학 대비 학원들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강남역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입시 학원의 분포는 분야별로 명확히 구분된다.

강남역에서 가까이는 우성아파트 사거리, 멀리는 뱅뱅사거리까지 의·치전 및 약대, 로스쿨 등 이른바 전문대학원 입시 학원이 즐비하다. 반면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는 공단기·해커스패스·박문각 등의 대형 공시 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양 지역 모두 각각 약 3,000명의 수강생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강남역 일대로 분류되지만 왕복 10차선 도로인 테헤란로를 사이에 둔 의·치·약학 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고시생과 공시생의 생활 풍경은 사뭇 달랐다.

대표적인 것이 공부 장소다. 전문대학원 입시 학원들이 자리 잡은 강남역 1·2번 출구 뒤편은 대표적인 직장인 대상 유흥가지만 술집과 음식점 사이로 틈틈이 사설 독서실 간판이 눈에 띄었다. 현재 이 일대에서만 최소 20곳이 넘는 사설 독서실이 운영되고 있다. 매달 15만∼20만원의 적지 않은 가격을 받지만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쾌적한 환경으로 수험생에게 널리 알려진 K독서실의 관계자는 “100개 이상의 좌석을 보유하고 월 기준 20만원을 받고 있지만 현재 예약 대기를 걸어놓은 사람만 10명 이상일 정도로 고시생의 문의가 많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지방에서 온 학생들을 위한 고시텔과 원룸도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다. 공시생과 다르게 자취를 하는 전문대학원 입시 고시생이 적지 않아서다. 특히 월세 100만원을 웃도는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이른바 ‘귀족’ 고시생도 제법 있다는 후문이다. 국내 대표 의·치전 전문 입시 학원이 자리한 A오피스텔의 경우 전체 250개의 방 중에 약 3분의1을 차지하는 10평 내외의 원룸은 사실상 고시생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는 것이 이 지역 공인중개사무소의 설명이다. A오피스텔에 근무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자식들 입주 상담을 위해 함께 찾아오는 부모는 의료계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100만원 이상의 월세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가격에 쿨한 고객”이라며 “이곳에 입주한 학생의 절반은 심지어 목동과 잠실 등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학원 관계자들과 고시생 사이에서는 “의·치전이나 의대 학사편입을 준비하는 학생 중 부모가 의료계 종사자인 경우가 셋 중 하나는 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간다.

상대적으로 절박하게 공부하는 공시생과 다르게 자유롭게 공부하며 개인 생활을 즐기는 학생이 적지 않은 것도 눈에 띈다. 메가MD 강남캠퍼스 근처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수험서를 갖고 공부하는 학생 30여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약대 편입을 위해 PEET시험을 준비한다는 심모(23)씨는 “종합반을 다니면 자습 공간은 보장되지만 같은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답답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카페에서 일주일에 4~5번은 공부를 한다”며 “주위 친구들을 살펴보면 저녁 이후로는 자율학습이 의무가 아니라 그런지 카페나 헬스장에 가는 등 개인적인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심씨는 또 “전반적으로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다소 부담은 돼도 점심과 저녁을 모두 사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심씨가 두 끼의 식사와 카페를 이용하며 지불하는 돈은 하루 평균 1만4,000원. 집에서 학원에 다니지만 매달 들어가는 교육비용만 오프라인 학원비와 인강비를 합쳐 100만원, 식비 50만원 등 최소 150만원에 육박한다. 근처에서 자취하면 높은 집값 탓에 최소 50만원에서 100만원이 추가된다.



최재민 PEET단기 원장은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님이나 친인척이 의사나 약사인 경우가 적지 않다”며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들은 대략 10명 중 2명 정도고 나머지는 인근 식당을 이용한다”고 전했다.

반면 길 건너 공시생들의 삶은 전문대학원 준비 고시생들과 사뭇 달랐다. 강남역에서 공부하는 공시생은 대략 3,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평균 나이대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나이는 길 건너 고시생보다 많지만 이들의 삶은 훨씬 단출하다. 공시 학원 근처에는 사설 독서실은 물론이고 자취를 하는 경우 역시 없다는 것이 현지 학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역시 단과수업을 수강하거나 여름방학같이 사람들이 몰리는 시기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사도 도시락을 싸와 학원에서 먹는 비중이 높다.

한 공무원 준비 수험생은 “몇만 원짜리 온라인 강의 비용도 아껴보려고 암암리에 수험생끼리 돈을 나눠 듣는 형편인데 카페에서 최소 5,000원씩 매일 쓰며 커피를 사 먹는 것은 사치”라며 “학원 수강료로 월평균 20만원을 내고 점심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하면 한 달 평균 35만원 내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수험생은 “학원 수강 기간이 끝났지만 돈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빈 강의실에서 몰래 공부하는 학생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두 지역 학생들의 공부 환경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 학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장 학원비만 해도 공무원시험의 경우 월평균 20만~30만원 수준이지만 의·치전과 약학대학 편입을 위해 봐야 하는 M·DEET와 PEET 대비 강좌는 보통 5~6개월 기준 수강료가 400만~500만원 수준이라 웬만한 부모의 지원이 없으면 시작하려는 결심조차 하기가 쉽지 않다. 스타 강사의 일부 과목은 온라인 강의임에도 100만원에 이르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한 의치전 입시 대비 학원 관계자는 “수강 상담을 온 학생 중에는 학비가 비싼 것까지는 알고 찾아오지만 ‘생각보다 비싼 학원비를 평균 2년 가까이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설사 어렵게 경쟁률을 뚫고 전문대학원에 합격하거나 편입에 성공해도 수천만 원에 이르는 학비는 상당수 학생에게 시작부터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

서울 소재 공대를 졸업한 뒤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김모씨는 “의대 입학 준비생은 금수저, 약학대학은 은·동수저, 공시 준비는 서민 혹은 흙수저라는 씁쓸한 농담을 수험생들 사이에 주고받는다”며 “어차피 두 시험 모두 붙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나 역시 집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공시보다는 약대 편입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업계에서는 진짜 금수저와 흙수저 고시생은 따로 있다는 평도 나온다.

강진섭 메가엠디 강남S캠퍼스 원장은 “M·DEET 시험을 보는 친구들은 적어도 똑같은 시험을 보면서 경쟁하지만 최근 의과대학들이 자체 시험으로 선발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학벌 좋고 집안 좋은 학생들의 합격 확률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며 “사실상 주변에서 서울 중위권 이하의 학생들이 의대 학사편입이나 전문대학원 합격에 성공하는 사례가 드물다 보니 이처럼 학벌이나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 수험생 사이에서는 자괴감과 패배감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남 공시생 역시 노량진 공시생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수험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후문이다. 최봉근 공단기 실장은 “공시생이라고 하면 지방에서 올라와 트레이닝복 차림에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할 것 같다는 인식이 있지만 강남 공시생은 옷차림부터 다르고 ‘인서울’ 대학 출신 학생이 전체 수강생 중 30%에 이른다”며 “돈에 얽매이기보다 상대적으로 쾌적한 시설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려는 점도 강남 공시생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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