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하철을 타고 있다. 침침한 실내를 둘러보고 있는 순간 어디선가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 의자 위에 놓여 있는 은색 권총을 집으세요! 그리고 발사할 준비를 하세요!”
지하철이 다음 역에 도착하자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문이 열리면서 기다렸다는 듯 괴한들이 달려들었다. 필자는 권총을 쏘아대며 그들을 쓰러뜨렸다. 총알이 떨어지자 옆에 있던 소총을 집어 들고 난사하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피가 낭자했다. 바로 그때 지하철역에 어둠이 덮치더니 난데없이 로켓탄이 날아들었다. 강력한 폭발에 압도된 필자는 좌절감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상황을 벗어날 길은 하나뿐이었다. 결국 두 손으로 가상현실(VR) 고글을 벗어버렸다.
그렇다. 필자는 지하철역에서 총격전을 벌이지 않았다.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 2016)’에 참가한 VR 게임 제작사 에픽 게임스의 신작 게임 ‘불릿 트레인(Bullet Train)’의 데모버전을 체험했을 뿐이다. 체험을 마친 필자에게 이 회사의 홍보 도우미 두 명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고글을 건네받았다. 마치 ‘멋지죠? 그렇지 않나요?’라고 묻는 표정이었다.
1인칭 슈팅(FPS) 게임이 주는 스릴은 상당하다. 테크닉과 경쟁심, 환상의 세상 속 일탈에 의한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게이머들을 자양분 삼아 이미 9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몰입감이 뛰어나다는 FPS 게임에서조차 게이머는 자신이 주전부리가 널브러진 책상 앞에 앉아있음을 자각한다. 아니 지금까지는 그랬다. 필자가 이날 경험한 바로는 VR이 이런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며, 현실과 게임 세상의 경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VR은 인체 감각기관을 속여 가상을 현실로 믿게 만든다. 때문에 그 파괴력은 그래픽이나 연산속도의 향상처럼 이제껏 반복돼온 게임기술의 발전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GDC 2016의 VR 세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던 단어는 ‘존재(presence)’였다. VR로 인해 게이머가 단순히 게임 캐릭터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로 직접 존재하며 행동하는 환경 구현이 가능해졌음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픽 게임스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팀 스위니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VR은 게이머가 다른 장소에 있다고 느끼게 해줄 최초의 기술입니다. VR 속에서 벼랑 끝에 서 있다면 실제로는 방안에 있더라도 감히 발을 내딛지 못할 겁니다.”
GDC 2016의 VR 전도사들이 즐겨 썼던 또 다른 수식어는 ‘패러다임의 혁신’이었다. 자신의 회사가 개발한 VR 헤드셋을 선전하는 그들에게선 19세기 서커스단 호객꾼과 같은 열정이 넘쳐흘렀다.
“미래가 눈앞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세요. 여권 없이 다른 대륙을 여행해 보시겠습니까. 공룡들 사이에서 저녁 식사를 해보는 건 어떠세요.”
업계에서는 올해에만 수천만 명이 VR 헤드셋을 구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큘러스의 ‘리프트’와 삼성전자의 ‘기어 VR’, HTC의 ‘바이브’, 구글의 ‘카드보드’ 등이 이미 상용화됐으며 올 10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PS VR)’이 출시되면 수백만 대의 게임 콘솔이 추가로 VR 세상과의 가교가 된다.
특히 VR은 게임에만 국한된 기술이 아니다. 게임을 시작으로 교육, 보건, 스포츠, 건축, 심지어 포르노 산업에도 혁신적 변화를 이끌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이유로 다수의 초기 연구에서는 VR이 지금껏 인류가 사용했던 어떤 기술보다 인간의 정신에 깊게 뿌리 내릴 것이며, 가장 오랜 기간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줄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다.
이렇듯 파급력이 큰 기술에는 항상 그만한 책임이 수반된다. 과연 VR로의 여행은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VR 세상 속에서는 무엇이든 허용돼야 할까. 그것이 살인이나 성폭력, 방화 같은 것일지라도? 혹여 VR 속에서 사람을 죽였을 때 정말 살인을 한 느낌을 받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와 관련 미국 조지아대학 안선주 교수팀이 2014년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기존의 매체보다 VR로 체험한 것이 훨씬 머리에 오래 남아 영향을 미친다. 당시 연구팀은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TV나 영화를 보여준 뒤 그와 유사한 콘텐츠를 VR로 경험토록 했다. 처음에는 피험자들이 두 매체에서 본 내용을 동일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자 VR에서 체험했던 내용 외에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VR의 영향은 끈질기고 집요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에요.”
이를 감안하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VR 세상에서는 뭔가 지금과는 다른 규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GDC 2016은 게이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와 다름없다. 티셔츠 차림의 남녀들이 휴대폰을 들고 걸어 다니며 모든 순간을 촬영한다. VR 관련 업체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는 오큘러스와 삼성, 소니, 구글, 에픽 게임스 등의 기업들이 한명에게라도 더 자신의 제품을 체험시켜줄 기회를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필자는 이날에만 5종류의 VR 게임을 체험해봤다. VR이 주는 환상적 경험에서 깨어난 뒤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친 것은 어느 게임 속에서도 여성이나 소수인종 캐릭터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직접 체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오큘러스의 리프트를 구입하면 번들 제공되는 2개의 VR 게임 중 하나인 ‘이브: 발키리’에는 여군 대위와 흑인병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나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충실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의 제시 폭스 교수는 이 문제를 이렇게 에둘러 설명했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라는 범죄게임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행위들이 스스럼없이 자행됩니다. 이 게임이 1조개 팔렸다고 가정해보죠. 과연 제작사가 게임의 성격을 바꿀 필요를 느낄까요? 기업들이 이미 신기술 도입에 따른 위험성을 감수하고 있다면 새로운 종류의 콘텐츠로 인한 위험은 감수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폭스 교수는 VR과 비디오 게임, 소셜 네트워킹 등 새로운 미디어 기술들이 인간의 정체성과 신념,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연구했다. 또한 그런 VR에서 활동하는 숫처녀와 요부(妖婦) 캐릭터들이 현실에서 다른 유저들의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분석했다. 그 결과, VR 세상에서 숫처녀와 요부 캐릭터에 노출된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강간 통념(rape myths), 즉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강간 당하기를 원한다거나 여성이 원치 않으면 강간은 불가능하다는 그릇된 생각을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편견을 확증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흑인은 모두 범죄자라 여기는 사람은 영화에서 흑인 범죄자가 등장했을 때 ‘거봐, 내가 옳았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VR은 이런 고정관점을 더욱 강하게 고착화시킬 수 있다. VR에서의 상호작용은 비디오 게임이나 SNS에서보다 훨씬 현실감이 높기 때문이다.
“모든 여성은 음탕하다고 여기는 남성이 VR 세상에서 음탕한 행위를 하는 여성 아바타와 상호작용하게 된다면 그 남성은 현실에서도 자신의 판단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와 관련 폭수 교수는 VR을 극단적으로 사용하는 일부 유저들의 행위는 VR 시대의 필연적인 사회문제가 될 개연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본다.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한 10대 소년이 있다고 해보죠. 소년이 집으로 돌아가 VR 세상에서 그 이성 친구의 아바타를 만들어 강간할 수도 있어요.”
VR의 영향에 관한 몇몇 연구에서는 VR이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스탠퍼드대학 가상 인간 상호작용 연구실의 수장인 제레미 베일렌슨 박사팀이 2013년 발표한 이른바 ‘슈퍼 히어로’ 실험이 가장 대표적이다. 당시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 16명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VR 아바타를 줬다. 그리고 VR 도시 속에서 미아를 찾으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대조군인 B그룹 17명도 동일한 임무를 받았지만 헬리콥터에 탑승한 채 미아를 찾아야 했다.
“실험 종료 후 연구팀의 일원이 실수를 가장해 펜이 잔뜩 들어 있는 컵을 바닥에 쏟았는데, A그룹이 연구원을 도와 펜을 주워주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VR에서 경험한 슈퍼 히어로의 정체성이 현실 세계에도 전이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왜 그런 차이가 도출됐는지 정확한 메커니즘은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VR은 다른 상호작용 매체보다 감정이입이 강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행동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긍정적 경험만이 아니라 부정적 경험도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앞서 폭스 교수가 언급한 편견과 그릇된 통념의 고착화가 그것이다. 이에 일부 게임 개발사들은 폭력적 VR 게임이 사용자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자체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소니 산하의 게임 제작사 게릴라 케임브리지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의 게임 디렉터 피어스 잭슨은 작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 게임 행사에 참가, 자사의 PS VR용 FPS 게임에선 캐릭터의 죽음을 묘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너무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임 개발 초기에 마련한 핵심 금기사항의 하나가 살인 행위였습니다. 신중한 고민 끝에 나온 의도적 결정입니다.”
물론 라디오와 텔레비전,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상호작용 매체가 세상에 처음 소개됐을 때마다 전문가들은 외부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리고 이 우려는 크리에이터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로 1930년대의 신문을 살펴보면 만화책이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에픽 게임스의 스위니 CEO도 모든 문제를 새로운 매체의 탓으로 매도하는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역시 VR이 이제껏 등장한 상호작용 매체 가운데 인간의 본능적 반응을 가장 잘 표출시킬 존재임을 인정한다.
“VR 공포 게임은 전례를 찾기 힘들 극강의 공포감을, VR 폭력 게임은 현실처럼 실감나는 폭력 상황을 묘사할 수 있어요. 게이머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해줄지에 대해 개발자들은 기존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VR 세상의 도래에 따른 우려는 게임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언젠가 VR 기업들은 지금의 SNS처럼 전 세계의 낯선 사람들과 협업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공통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등의 일을 가능케 해줄 소셜 VR 플랫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이버 불링’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
불링 방지를 위해 타인과의 공감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VR 게임을 개발 중인 마이너리티 미디어의 수석 게임 설계자 패트릭 해리스는 만일 ‘VR 불링’이 일어난다면 피해자들이 느끼게 될 충격과 공포는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누군가 VR 속 당신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개인공간을 무단 침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들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 극한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최근 소셜 미디어 및 온라인 게임 업체들이 사이버 불링과 트롤링 금지 정책을 속속 도입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페이스북 소셜 VR 이니셔티브의 제품관리자인 마이크 벨즈너는 이 같은 행위가 VR에서 재현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피력한다.
“분명코 몇몇 사람들은 결과 따위는 개의치 않은 채 최악의 모습으로 변해 악행을 저지르려 할 겁니다.”
이 점에서 향후 사이버 불링 금지 정책이 소셜 VR에 적용된다면 불편함보다는 즐거움이 클 것이다. 하지만 벨즈너에 의하면 페이스북의 경우 자사가 인수한 오큘러스의 리프트를 이용하는 VR 게임 유저들에게 관련규정을 적용할 계획이 없다. 또한 적어도 현재로선 플레이어들이 상호작용해야하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포함한 여타 VR 게임 플랫폼에도 적용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대부분의 게임 유저는 실제의 자신과 게임 속 캐릭터를 동일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를 존중할 것입니다.”
많은 프로 스포츠 경기는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과 달리 화합과 스포츠정신이 지배하는 아름답기 만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이에 현재 미국 미식축구리그(NFL)에서는 베일렌슨 박사팀이 개발한 다양성 교육용 VR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VR에서 성차별이나 인종적 편견에 의한 피해자가 됐을 때 현실에서 자신과 다른 성별과 인종에 대해 예전보다 공감대를 잘 느끼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는 다른 성별과 인종이 되어보는 첫경험이 됩니다. 느끼는 바가 클 수밖에 없죠.”
베일렌슨 박사가 설립한 VR 시뮬레이션 스타트업 스트라이버(STRIVR)는 NFL 선수들을 위한 VR 훈련 시뮬레이터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 시뮬레이터에 쓰이는 VR 고글에 모듈을 부착하는 것만으로 다양성 교육용 VR 시나리오를 경험할 수 있다. 일례로 한 모듈을 부착하면 고글 착용자는 화가 잔뜩 난 백인에게 묻지마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 처해진다. 그때 방어를 위해 팔을 드는 순간 팔의 피부색을 통해 VR 속 자신이 흑인임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이 느꼈던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공감대 형성에 있어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 모듈의 시나리오를 체험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인종이라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게 됩니다.”
이렇듯 강력한 공감대 형성과 태도 변화 효과를 가진 VR에 정신의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사실 약물 중독 환자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군인 등을 대상으로 한 VR 치료는 이미 이뤄지고 있다. 급성 화상 환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스노 월드(Snow World)’라는 몰입형 VR 게임도 개발돼 있다. 환자들은 눈사람 같은 목표물에 눈뭉치를 던지면서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다고 한다.
아직은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VR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뇌 활동에 대한 연구는 이뤄진 바 없다. 하지만 눈사람을 향해 눈뭉치 대신 칼을 던지도록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VR의 전파 방식과 대상은 정책이 아닌 시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다만 학계와 미디어 전문가들은 VR 게임 개발사들이 더 많은 여성과 소수인종을 고용해 개발과정에 참여시키는 한편,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VR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최적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그릇된 통념이나 고정관념을 타파할 시작점이라 입을 모은다.
톤보 하우스(Tonbo Haus)라는 비영리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잭키 캠벨의 목표 또한 바로 이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원에서 이벤트를 열고 사람들에게 VR의 실체와 파괴력을 알리고 있다.
“VR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유일한 길은 콘텐츠의 품질과 다양성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목표를 달성할 유일한 길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VR 장비를 보급하는 것뿐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VR 기기나 콘텐츠 개발자들이 이 방향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베일렌슨 박사만 해도 VR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 중인 페이스북이나 삼성전자 같은 거대기업들에게 정기적으로 콘텐츠 관련 조언을 해주고 있다.
또 GDC 2016에서는 예년과 달리 소수인종과 여성, 사이버 학대 문제에 관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 한 전문가는 VR 전용 등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으며, 오큘러스는 자사의 리프트 헤드셋에서 VR 포르노가 플레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발언들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신중하게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게 그것이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의 VR 연구자인 제시 폭스 교수는 지금껏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가 동일한 방식의 접근법을 반복해왔다고 말한다. 일단 대중들에게 신기술을 던져주고, 그 여파는 나중에 파악하는 식으로 말이다.
“휴대폰을 예로 들어보죠. 기업들의 보급 확대 경쟁 끝에 이제 휴대폰은 모든 현대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휴대폰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같은 맥락에서 VR은 정말 큰 걱정거리예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걸어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 주목 받는 VR 게임
전투에서 질병의 치유까지 VR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 불릿 트레인 (Bullet Train)
지난해 처음 공개된 에픽 게임스의 FPS 게임. 두려움에 식은땀이 흐를 만큼 실감나는 전투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 이브 발키리 (EVE: Valkyrie)
CCP 게임스가 내놓은 우주전투 슈팅 게임. 여성을 리더로 묘사한 극소수 VR 게임 중 하나다.
▲ 스노 월드 (Snow World)
급성 화상 환자들의 통증 경감을 위해 워싱턴대학 HIT에서 개발한 VR 게임. 눈사람, 펭귄 등의 목표물에 눈뭉치를 던지는 재미있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잠시나마 고통을 잊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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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GDC Game Developers Conference
사이버 불링 (cyber bulling) SNS, 메신저,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 온라인 매체를 이용해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
트롤링 (Trolling) 온라인상에서 상대방이 화가 나도록 의도적·악의적으로 도발하거나 플레이를 방해하는 행위.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By Amy Westerv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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