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15일 기획실을 시작으로 태평로 사옥에서 서초 사옥으로 이전을 시작한다. 대형 이사 작업을 거쳐 다음달 12일 이전을 완료하면 삼성생명은 ‘태평로 시대’를 마감하고 ‘서초 시대’를 시작하게 된다. 태평로에서 32년, 성장의 역사를 마감하는 삼성생명은 서초 사옥 이전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과 경영 전략상의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관측된다. 생명보험 업계의 경영 환경이 무서운 속도로 급변하고 있는 탓이다.
13일 건축·도시연구정보센터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 동전을 제조하던 ‘주조청’에 세워진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 태평로 사옥은 지하5층·지상25층, 연면적 8만7,646㎡ 규모로 1984년 준공됐다. 무채색 직사각형 빌딩이 주류를 이뤘던 1980년대에 타원형에 붉은색 화강암으로 외벽을 마감한 태평로 사옥은 국내 고층 오피스 설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관뿐 아니라 사무자동화를 고려한 건축 설계, 컴퓨터로 운용되는 방재 설비 등은 한국 인텔리전트 빌딩의 시초가 됐다.
건물 외관만큼이나 삼성생명의 고속 성장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태평로사옥 입주 이듬해인 1985년 자산 2조원을 달성했고 1989년 동방생명에서 삼성생명으로 간판을 바꿔 단 후에는 더 가파르게 성장, 1995년 자산 20조원, 2000년 자산 50조원 등 기록을 잇따라 갈아치웠다. 2005년에는 국내 생명보험사 중 처음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2006년에는 제2금융권 최초로 자산 100조원을 쌓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2010년에는 기업공개(IPO)를 거쳐 거래소에도 입성했다.
삼성생명의 이 같은 성장세는 인근 삼성그룹 본관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고속 성장과 맞물리면서 태평로 일대가 ‘삼성타운’으로 불리는 데도 일조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태평로 삼성타운은 ‘돈이 붙는 명당’으로 불렸다”며 “아마도 삼성생명과 삼성전자가 나란히 ‘잘 나간’ 덕분에 그런 말이 생긴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평로 삼성타운의 위상은 삼성전자가 2009년 서초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낮아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떠나간 자리에 삼성카드·삼성증권·삼성자산운용이 잇따라 입주하면서 ‘삼성 금융타운’이라는 새 별칭이 생기기도 했지만 결국 삼성생명마저 서초행을 결정하면서 삼성그룹의 양대 주축인 금융업과 제조업이 이끌었던 삼성 태평로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서초 시대를 앞두고 있는 삼성생명의 고민거리는 다른 생보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보험 시장의 성장세 둔화,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4 2단계 도입, 저금리 리스크, 핀테크, 금융업권 간 칸막이 완화에 따른 경쟁 심화 등이 대표적인 당면 과제다. 하지만 총자산 230조7,300억원의 국내 1위 생명보험사라는 왕관의 무게가 남다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손해보험업에 비해 생명보험업은 1위 보험사의 존재감이 더 크고 손해보험업에 비해 회계기준 변경이나 인구·사회학적 변화에 따른 영향도 생명보험업이 더 많이 받는다”며 “1위 보험사인 삼성생명의 경영 전략이나 움직임에 동종 업계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