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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 악동, 벤처투자자, 혁신가에서 암 정복자로 변신하다

숀 파커 Sean Parker는 암까지 ‘해킹(정복)’할 수 있을까? 냅스터 Napster의 공동창업자로 IT업계 주요 혁신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그가 이젠 의약업계 최대 난제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4월 7일 LA 자택 정원에서 포즈를 취한 파커.




그날밤, 그는 계시를 받았다. 냅스터 공동창업자, 페이스북 초대 사장,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인터넷 혁신 예언자, 때론 황색언론의 가십란을 장식했던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 숀 파커가 후대에 남길 자신의 업적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었다.

2010년 11월의 한 토요일 밤이었다. 파커는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트리트 Union Street의 프랑스 풍 카페 드 아미스 Caf? des Amis에서 전설적인 엔젤투자자 론 콘웨이 Ron Conway와 마주하고 있었다. 이 식당의 공동소유주인 두 사람은 긴 의자에 앉아 가족 모임을 갖는 중이었다. 론의 옆에는 아내 게일 Gayle이, 파커 옆에는 (미래의 아내인) 새 여자친구 알렉산드라 레나스 Alexandra Lenas가 앉아 있었다. 식당 안이 너무 시끄러워 대화를 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했다.

“전 암을 치료할 겁니다!” 파커가 외쳤다. 파커다운 행동이었다. 콘웨이는 당시 “둘 다 와인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콘웨이는 버지니아 주 헌든 Herndon 출신인 파커(36)가 무모하고 예민한 19세 청년 해커였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당시 파커가 만든 음악파일 공유사이트 냅스터는 단독으로 음반업계를 굴복시키려고 할만큼 기세가 등등했다. 올해 65세인 콘웨이는 파커가 기업들을 창업하거나 이끄는 동안 줄곧 멘토 역할을 해왔다. 냅스터를 시작으로, ‘입소문 마케팅’을 기분 나쁠 정도로 영리하게 활용한 자동 주소록 플랙소 Plaxo, 대학 기숙사에서 시작해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파커에게 진정한 부를 안겨 준 페이스북(6,600만 주를 보유한 파커는 2012년 5월 기업 상장으로 장부상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와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그의 자산은 20억~30억 달러로 추정된다) 등이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콘웨이는 파커의 눈이 심상찮게 번득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왔다. 그가 “세상을 바꾸겠다”며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손대는 모습도 지켜봐왔다. 하지만 그 날 밤 파커의 태도는 어딘가 달랐다. “파커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남은 인생은 암 정복에 바칠 겁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의 로라는 없을 거에요.‘”

여기에서 ‘로라’는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와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등 수십 편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파커와 함께 ‘스탠드업 투 캔서 Stand Up to Cancer’ 운동을 시작했던 로라 지스킨 Laura Ziskin을 지칭한다. 체구는 작지만 감정 표현이 확실했던 지스킨과 파커는 2009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열린 한 자선 행사에서 처음 만나 급격히 가까워졌다. 오랫동안 예후가 좋던 지스킨의 유방암이 가공할 속도로 갑작스럽게 악화되자, 파커는 최후의 수단으로 시애틀 소재 유명 의료기관인 프레드 허친슨 암 연구센터(Fred Hutchinson Cancer Research Center), 일명 ‘허치 Hutch’에서 면역요법을 받도록 주선을 해주었다. LA와 허치를 왕복하는 전세기 비용도 부담했다.

콘웨이는 “로라의 암과 왜 그녀를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는지가 그 날 저녁식사의 주요 화제였다”고 회고했다. 그 일로 파커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리 주차요원이 콘웨이의 표를 받아 차를 가지러 갔다. 콘웨이는 “‘안 돼요! 숀 파커 차부터 가져다 줘요. 이 사람이 한 시간 전부터 암 정복을 시작했단 말이에요!’라고 외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파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당황하면서, 콘웨이 특유의 과장된 화법이라고 받아쳤다. 하지만 ‘정복’ 대신 더 파커다운 단어인 ‘해킹’을 넣으면 더 이상 이상할 게 없었다. 숀 파커는 암을 해킹할 것이다. 그리고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파커는 해킹을 ’기존 체계를 영리하게 활용하거나 우회해 해당 체계가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것을 해내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대로라면 냅스터와 페이스북부터 현재 진행 중인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 Spotify, 가정 영화 서비스 스크리닝 룸 The Screening Room 까지 파커의 이력은 거의 모두 해킹에 해당된다. 그 어느 업계보다도 복잡하고 관료주의적이며, 진보의 속도가 느리기로 유명한 의료 연구 분야에서도 이제 창의적인 우회로를 찾을 때가 무르익은 것이 아닐까?




왼쪽부터 칼 준, 제드 월초크, 짐 앨리슨. 이 면역요법 연구 선구자들은 현재 PICI와 협력 중이다.


지난 4월 중순, LA의 홀름비 힐스
Holmby Hills에 위치한 파커 자택 내 약 3,060평 규모 정원에 정장 차림의 손님 900여 명이 모였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을 비롯해 유명 연예인들이 가득한 호화로운 행사였다. 이 날 파커는 2억 5,0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지난 3년간 조용하면서도 꾸준하게 진행해 온 자신의 암 연구 해킹에 대해 발표를 했다. 파커 암 면역요법 연구소(Parker Institute for Cancer Immunotherapy)에 관한 것이었다. 소속 과학자들이 PICI(발음은 ‘파이시’)라 부르는 이 기관은 업계 역사상 최초로 MD 앤더슨 암센터(MD Anderson Cancer Center), 슬론 케터링 기념병원(Memorial Sloan Kettering), 펜실베이니아대 의료원(Pen Medicine), 스탠퍼드, UCLA, UC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최고 암 면역요법 연구기관 6곳의 연구를 한데 모아 조직화하고 있다. 면역요법이 일부 환자에겐 기적 같은 효과를 내지만 다른 환자들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이유를 더욱 광범위하게, 그리고 더욱 빨리 밝혀내는 것이 이 기관의 목표다. 펜 의료원 소속으로 PICI에서 활동하는 종양학자 칼 준 Carl June은 “파커가 이런 일을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모든 기관들이 똑같은 서류에 서명하는 날이 올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이 6개 기관의 연간 환자 수는 45만 명(의미 있는 결과 도출이 가능한 수준이다)에 달한다. 병원들은 면역요법의 임상시험을 공동 계획하고 신속히 환자를 모집해 획득한 정보-신약개발의 속도를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를 공유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들은 향후 데이터 공유 및 저장을 위한 공동 플랫폼 및 기준도 구축할 예정이다. 가장 의미 있는 합의는 새로운 학문적 발견이나 약품, 각종 수단, 기술의 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지적재산권을 PICI가 관리하고, 이에 따른 모든 수익을 나눠 갖는다는 것이다.

슬론 케터링 내 PICI 센터장인 종양학자 제드 월초크 Jedd Wolchok는 “지적재산권의 통합 관리는 기존 방식에서 진화한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로열티와 라이선스 관련 수익을 공동 펀드로 귀속시켜 학자 개개인에게 재분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파커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 기관은 영구히 존속할 것이다.”

언뜻 혁명이라기보단 당연한 진보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파커가 알아챘듯이, 암 연구계의 분열은 심각했다. 자금 부족이 주된 문제는 아니었다. 파커는 “학계와 정부, 업계 전반에 걸쳐 암 정복 연구를 방해하는 ‘반기능적(dysfunctional)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이 낳은 비밀주의가 아이디어와 각종 방법, 플랫폼의 신속한 공유를 가로 막고 있다는 얘기다. 훌륭한 과학자들은 보조금 신청과 연구 발표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했다. 의료계 특유의 조심성은 규제 체계, 자체 문화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도 유망한 아이디어의 임상시험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파커는 이 문제도 해결할 ‘해킹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파커의 홀름비 힐스 자택에서 여기저기 책이 흐트러진 밝은 거실에 앉아 거의 두 시간째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숨이 찬 듯 몇 분마다 목을 가다듬었다. 파커는 “환자들에게 (치료법을 더 빨리) 제공하려면 학계, 일명 상아탑 속의 순수 학문과 아주 세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바이오기술 기업 두 세계 간에 가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붉은 수염, 어두운 색 스웨터와 바지 차림 때문에 비트세대 (*역주: 50~60년대 미국의 청년 예술가들) 시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PICI에서 하고 있는 자신의 역할을 설명할 땐 영락없는 벤처투자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여러 치료법의 상업화를 위해 조직을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PICI는 향후 수십 년간 암 연구의 메카가 될 것이다. 그러나 파커는 “성공작이 나와야 가능한 이야기”라며 “음반사 사장이 하는 말 같지만, 히트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과학자들이 PICI에 모이고 있는 이유는 학계 기준으로 볼 때 엄청난 금액의 자금 지원 때문이다. UCSF 소속 학자로 현재 파커 재단의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는 제프 블루스톤 Jeff Bluestone은 모든 병원들이 “각각의 상황에 따라 각각 2,000만~3,500만 달러 정도의 큰 돈을 지원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예산은 PICI의 전략적 로드맵에 부합하고 암 면역치료와 관련만 있다면 어떤 연구에든 쓸 수 있다.




왼쪽부터 파커, PICI CEO 제프 블루스톤, 월초크. 파커는 암 정복 연구에 매진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들이 진행하는 면역요법은 수술(악성 종양을 신체에서 도려내 제거한다), 화학요법, 방사선(암세포 파괴), 좀 더 정확도가 높고 최신 기술인 분자 약물(종양세포의 분열 · 증식을 명령하는 단백질 신호를 교란시킨다)등 기존의 암 치료법과 상당히 다르다. 대부분의 면역요법은 대체로 암세포에 직접 작용하는 대신, 암세포에 맞서는 면역체계를 활성화하거나 암세포 표적 공격의 효율성을 높이는 식으로 진행된다. 혹은 신체가 T세포-면역체계가 원래부터 갖고 있는 ‘킬러 항체(natural-born assassins)’-에게 내리는 ‘활동중지’ 명령을 차단, T세포가 계속 암세포를 제거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방식에는 영화 주인공 제이슨 본의 첩보작전처럼 ‘면역 체크포인트 억제(checkpoint inhibition)’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한 마디로 면역요법은 환자의 몸이 암세포라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에 직접 맞서도록 지원하는 치료법이다. 이 방식이 훨씬 설득력이 있고 전망도 매우 밝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 Bristol-Myers Squibb, 머크 Merck, 화이자 Pfizer와 수십 곳의 생명공학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결과, 현재 80종 이상의 면역관련 암 치료법에 관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샤론 벨빈 Sharon Belvin의 기적 같은 사례는 면역요법 지지자들의 희망임과 동시에 회의론자들에겐 감탄의 대상이었다. 2004년 당시 22세였던 뉴저지 주 대학원생 벨빈은 왼쪽 쇄골 아래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폐에서 시작된 거대 종양이었다. 그녀의 병명은 5년 생존률이 17%(진단 5년 내 환자 6명 중 5명이 사망한다는 의미)에 불과한 암인 흑색종 4기였다.

벨빈은 강력한 화학요법을 여러 차례 받았다. 2004년 당시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첫 정맥주사는 월, 화, 수요일에 잇달아 맞았다. 그리고 토요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1년 반 동안 준비했고, 청첩장도 다 보낸 상태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벨빈은 몸에 붙은 중심정맥 카테터와 고무관을 가리기 위해 직접 고른 웨딩드레스 대신 흰색 정장을 입어야 했다. 그리고 암은 곧 뇌까지 퍼졌다. 가슴에 찬 물만 12리터였다. 몸은 무너지고 있었고,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슬론 케터링에서 벨빈의 담당 종양의를 맡고 있던 월초크가 면역요법 임상시험을 제안하자, 벨빈은 참가를 결심했다.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이 개발한 이필리무맙 ipilimumab(현 제품명 여보이 Yervoy)이라는 이름의 체크포인트 억제제였다. 약의 목표는 T세포를 막는 분자 활동의 억제였다. 벨빈은 3~4주 간격으로 1회 90분씩 총 4회 주사제를 처방 받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암은 재발하지 않았다.

병이 절대 재발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면역요법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기억력이 뛰어나다. 흑색종 치료의 경우, 면역요법을 받은 환자 중 상당수가 증상 악화를 전혀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희망 섞인 사례를 소개하면서 흥분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면역요법에 대한 희망은 100년간이나 지속돼 온 암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함축할 정도로 원대하다. 1980년 타임지는 면역력을 높여 주는 단백질인 인터페론 interferon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포춘도 인터루킨-2 interleukin-2라는 면역 단백질을 1985년 표지 기사로 소개하면서 ‘암 치료의 돌파구’라는 찬사를 보낸 바있다(대부분의 암 발병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환자들에겐 들어맞지 않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최근 암 전문가 사이에서 꼭 풀어야 할 수수께끼만 해결하면, 면역요법 연구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수십만 명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국에서 5년 생존률 20% 이하인 암 4종의 발병 환자는 연평균 33만 3,000명을 넘고 있다. 올 한 해만 암 사망자 수가 6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파커(가운데, 푸른 스웨터)의 주선 덕분에 경쟁 관계인 학자들은 PICI의 여러 휴양시설(사진은 캘리포니아 주 세인트헬레나 소재)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 의학계에선 암과의 전쟁을 놓고 현재 ‘해킹 열풍’ 이 한창이다. 아니, ‘우주 경쟁’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연두교서에서 ‘암 문샷 이니셔티브(National Cancer Moonshot Initiative)’ (*역주: moonshot은 야심 찬 도전을 의미한다) 을 발표한 데 이어, 의사 겸 창업가 패트릭 순-시옹 Patrick Soon-Shiong도 이미 활발한 참여가 이뤄지고 있는 MD 앤더슨의 문샷 프로그램에 동참하기 위해 ‘암 문샷 2020 Cancer MoonShot 2020’을 선언하기도 했다.

PICI가 공식 등장하기 불과 2주 전, 존스 홉킨스도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Michael Bloomberg와 시드니 킴멀 Sidney Kimmel 등으로부터 1억 2,500만 달러를 기부 받아 자체 항암 면역요법 센터를 개설했다. 마이클 밀켄 Michael Milken과 인텔 창업자 고(故) 앤디 그로브 Andy Grove 등의 야심 찬 암 정복 노력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이쯤 되면 과연 파커의 새 계획이 레이디 가가가 초청공연을 벌일 만큼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 것이다. 하지만 PICI의 협업 모델, 그리고 (PICI 안팎에서 활동 중인 업계 최고 저명인사 몇몇이 증언했듯이) 암 정복을 향한 파커의 열정이 다른 자선가들을 압도한다는 사실에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일부 찾을 수 있다.

허치의 명예회장이자 디렉터인 바이러스학자 래리 코리 Larry Corey는 파커에 대해 “‘이 사람, 뭘 좀 아네’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시사점이 있는 매우 좋은 질문을 던진다. 그 후 잠깐 멈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곤 뚝딱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암에 흥미를 갖기 오래 전부터, 파커는 심각한 음식 알레르기 때문에 면역체계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응급 상황용으로 알레르기약인 베나드릴과 에피펜을 늘 휴대했지만, 알레르기로 수 차례 응급실 신세를 져야만 했다. 면역 질환은 가족력이다. 어머니는 면역체계가 갑상선을 공격하는 질병인 하시모토병을 앓고 있다.



그의 가족력은 그가 암 정복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부분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파커는 늦은 시간까지 의학 논문을 정독하고 다양한 학자와 대화하면서 여러 가지 사실을 한데 모아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UCSF의 리처드 피첨 경 Sir Richard Feachem과 말라리아 매개체를 논하고, 휴스턴 소재 MD 앤더슨의 혁신적 면역요법 연구자인 짐 앨리슨 Jim Allison과는 체크포인트 억제제를 논의하고 있다. 앨리슨은 “처음 파커를 만난 날엔 약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후 내가 직접 샌프란시스코 소재 한 호텔로 가서 파커를 만났고, 그 때는 세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파커의 지식이 제대로 공부한 대학원생 못지 않아 깜짝 놀랐다.”

파커의 이런 진지한 모습은 쾌활하고 파티를 즐긴다는 그에 대한 대중적 선입견에 가려져 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파커로 나온 데이비드 핀처 David Fincher 감독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자기중심적이고 차가운 바람둥이로 묘사되면서 그런 이미지가 굳어졌다(파커 본인은 이 묘사를 ‘캐리커처’라 평했다. 이번 기사를 위해 진행된 24건의 인터뷰에서도 파커를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안다고 대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영화가 완전히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고객관리 소프트웨어 업체 세일즈포스 Salesforce의 마크 베니오프 Marc Benioff CEO는 몇 년 전 “파커가 독신일 때” 그를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파커는 다른 잡지와 인터뷰 중이었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오른손에 메이커스 마크 Maker’s Mark 위스키 병을 들고 끝까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베니오프는 “숀의 말에선 비범한 예지력과 예측력, 통찰력, 지성이 묻어난다. 그는 큰 흐름을 미리 내다보는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커는 암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두뇌와 개인적인 열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암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이런 열정은 주변 사람을 끌어 당기는 중력처럼 작용한다. 암 전문의들도 예외는 아니다. MD 앤더슨의 종양학자 캐시언 이 Cassian Yee는 2010년 9월 파커를 만났다. 당시 허치 소속이었던 이는 시애틀을 떠나 오후에 LA에 도착, 호화로운 페닌슐라 호텔 Peninsula Hotel 로비에서 한 시간 동안 파커를 기다렸다. 당시 파커는 무릎 수술을 받은 후 호텔 스위트룸에서 몇 주 째 (누군가가 선물로 준) 되새(finch) 한 쌍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파커와 이는 새 두 마리를 데리고 LA 인근 컬버시티 Culver City에 위치한 소니픽처스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그날 저녁 ‘스탠드업 투 캔서’ 모금 행사가 TV로 중계될 예정이었다.

캐시언 이는 무대 뒤에서 파커의 소개로 트위터 공동창업자 잭 도시 Jack Dorsey와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의 아내 엘리자베스 에드워즈 Elizabeth Edwards를 만났다. 유방암 4기인 에드워즈는 멋진 가발을 쓰고 있었다(그녀는 “새 헤어스타일 어때요?”라는 질문도 던졌다). 그리고 파커가 쇼 제작자인 로라 지스킨을 불렀다. 파커의 친구인 그녀는 유방암이 재발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파커는 이에게 “로라에게 면역요법 치료를 받게 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면역요법의 가능성을 믿고 있던 이는 허치에서 종양학을 연구하면서 몇 년째 면역요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규칙상 치료 계획을 내놓을 때마다 허치의 자체 심의위원회는 물론, 미 FDA의 승인까지 받아야 했다. 그는 파커에게 “지금은 흑색종 환자밖에 치료할 수 없다”며 “승인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파커가 “섬에 가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 영토 밖에서 하자는 제안이었다.

연구 중인 신약 시험에 대한 FDA 규정은 엄격하다. 하지만 얼마간의 설득이 더 이어진 후, 이는 환자 한 명만을 위한 소위 ‘온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의 예외 승인을 FDA에 요청하겠다고 말했다(이후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몇 주 후, 이는 지스킨의 혈액에서 희귀 T세포(세포 10만 개 당 1개에 불과하다)를 추출하는 데 필요한 장비가 자신들에게 없음을 깨달았다. 이 T세포는 그녀의 암세포 표면에서 미세한 펩티드 표지(marker)를 찾아내 암을 공격할 수 있다. 이는 지스킨에게 지연 이유를 서면으로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그의 실험실로 파커가 보낸 수표 두 장이 도착했다. ‘레이저 셀 분류기 구입비’라는 쪽지가 60만 달러와 함께 들어 있었다.

파커의 자금 지원이 있었음에도 결국 의학은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지스킨은 2011년 6월 사망했다. 사후에 진행된 ‘스탠드업 투 캔서’ 행사에서, 파커는 그녀의 조사(弔詞)를 읊었다.

창업가 피터 틸 Peter Thiel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운을 띄웠다. 그는 파커 덕분에 페이스북에 투자한 첫 대형 투자자가 됐으며, 이후 자신의 벤처투자사 파운더스 펀드 Founders Fund에 파커를 끌어들였다. 틸은 과학기술 분야에는 아이디어의 창조자와 전파자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숀은 양쪽 모두에 뛰어나다. 사람들은 하나가 강하면 그만큼 다른 하나는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두 능력은 근본적으로 상호보완적“이라고 강조했다.


틸은 실패로 돌아간 과거의 다른 암 정복 프로젝트와 달리, 파커의 계획이 강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비전과 그것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란다. 친구인 세일즈포스의 베니오프는 파커가 가진 추진력의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하기도 했다. “핵심은 ‘왜’라는 질문에 있다.”

베니오프는 “숀은 보통 사람들과 동기 부여 요인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부자나 유명인,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사랑 받고 싶어서도 아니다.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한다. 숲 속 씨앗 하나에서 나무가 자라나듯, 숀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한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 이미 그 힘이 숀의 온 몸을 감싸고 있다.”




◇ 숀 파커의 길고 굴곡 많은 사업 이력
파커의 창업 역사를 관통하는 특성은 상상력의 발휘, 기존 경영방식의 무시, 그리고 (몇 번쯤) 세상을 바꾼 결과물로 요약할 수 있다.
(괄호 안 숫자는 파커가 각 기업과 인연을 맺은 기간이다.)

냅스터 (1999~2001년)
파커가 19세 때, 친구 숀 패닝 Shawn Fanning이 18세 때 세운 이 회사는 MP3파일 공유 사이트였다. 법원 명령으로 문을 닫았지만, 냅스터는 음반업계가 기술적 변화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지난해 음반업계 매출은 정점을 찍었던 1999년 매출에 비해 44%나 급감했다).

플랙소 (2002~2004년)
이 온라인 자동 연락처관리 서비스업체는 (논란이 거셌던) 입소문 마케팅을 활용해 성장했다. 현재는 컴캐스트 Comcast가 소유하고 있다.

페이스북 (2004~2005년)
파커가 공동창업자들을 만났을 때 회사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였다. 페이스북은 사장 파커의 도움으로 첫 대형 투자자 피터 틸을 유치했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개발할 수 있었다.

스포티파이 (2010년~현재)
파커는 초기 단계부터 이 스웨덴 음악스트리밍 사이트에 투자를 했다. 그는 음반사와의 매출 계약 협상도 도왔다.

에어타임 (2011년~현재)
무료 비디오채팅 서비스인 에어타임은 업계의 비웃음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파커는 이 사업모델을 지금도 믿고 있고, 재출시까지 계획하고 있다.

브리게이드 (2014년~현재)
‘정치를 위한 SNS’를 표방하는 이 앱은 사용자에게 투표 가이드와 독려 메시지를 전송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스크리닝 룸 (2016년~현재)
파커의 새 벤처업체로, 사용자가 150달러 상당의 가정용 셋톱박스를 설치하면 편당 50달러에 최신 영화를 개봉 당일 볼 수 있다. 영화판 냅스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극장주가 많지만, 영화업계의 구원투수라고 환호하는 제작자들도 있다.




◇ 파커의 행동 강령
성공적인 협업을 위한 세 가지 규칙

1. 한 가지에 집중하라
PICI의 CEO 제프 블루스톤은 “대형 고속도로망을 통째로 새로 짓는 게 아니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길 하나를 닦고 있을 뿐이다.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큰 도박을 하겠지만,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아니다.”

2. 신뢰를 구축하라
‘먼저 발표하고 특허를 선점’하는데 익숙한 학계에서 ‘협동 과학’을 꽃피우기란 쉽지 않다. 파커는 PICI 회원 간 친목 행사를 자주 마련해 친밀도를 높이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도록 하고 있다.

3. 지속성을 갖춰라
PICI는 장기적 지속성을 갖추기 위해 파트너 기관들이 창출한 지적재산권의 관리 권한을 맡고 있다(소유하지는 않는다). 모든 수입은 일정 비율로 연구에 재투자된다.






◇ 의료업계 혁신에 나선 비즈니스 리더들
숀 파커 이전에도 수많은 비즈니스 리더들이 신약개발에 투신했다. 가장 큰 성과를 올린 몇몇 사례들을 소개한다. -Sy Mukherjee

캐시 지우스티
G.D. 실 G.D. Searle과 머크에서 임원으로 일했던 캐시 지우스티 Kathy Giusti는 1996년 희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자마자, 분열된 암 연구 학계를 통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다발성 골수종 치료법 10종이 새로 승인을 받았으며, 환자들의 기대수명도 3배로 증가했다.

마이클 밀켄
한때 ‘정크본드 왕’이라 불렸던 마이클 밀켄 Michael Milken은 증권 사기 혐의로 수감 중이던 1993년 전립선 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석방됐다. 자료공유, 기술혁신, 풍부한 자금지원을 강조하는 밀켄의 전립선암 연구재단(Prostate Cancer Foundation)은, 2002년 이후 미 FDA가 승인한 전립선암 관련 신약 9종 가운데 6종의 발견과 개발에 참여했다.

빌 게이츠
IT재벌 빌 게이츠와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좀 더 저렴하고 효과적인 백신 개발법을 완성한 독일 큐어백 CureVac 등 초기 단계 생명공학기업 여러 곳에 투자했다. 작년에는 자체 유전자 교정 기술인 CRISPR을 활용해 안구 질환부터 암 면역요법까지 다양한 질병 치료를 연구하는 에디타스 Editas의 자금 유치를 지원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CLIFTON 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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