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양궁, 사격, 펜싱 등에서 금빛 릴레이를 이어가며 종합순위 8위에 올랐다. 금맥을 일군 이들 세 종목의 선전에는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 못지않게 진심 어린 애정으로 비인기 종목을 물심양면 지원해온 대기업 CEO의 공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 8월 1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남자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구본찬(현대제철) 선수는 시상식이 끝난 뒤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저만치 뒤편에서 묵묵히 손뼉을 치던 한 남자를 발견한 구 선수는 한달음에 달려가 자신의 메달을 목에 걸어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한 구 선수에게 이 남자는 나지막이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힘껏 그를 부둥켜안았다.
구본찬 선수가 눈시울을 붉히며 안긴 이 남자는 바로 대한양궁협회 회장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었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05년 대한양궁협회 9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무려 11년간 연임하며 대한민국 양궁 발전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열린 양궁협회 12대 회장선거에서도 만장일치로 당선돼 오는 2020년 12월까지 4년간 협회를 더 이끌게 됐다.
양궁에 대한 정 부회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가끔 선수들을 찾아가 식사를 함께하고 기념일에는 소소한 선물을 주기도 한다. 선수들과 끊임없는 소통도 하고 있다. 주요 국제경기가 있을 땐 직접 현지로 날아가 응원을 펼치기도 한다. 이번 올림픽에도 어김없이 리우로 날아간 정 부회장은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박수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여자 단체전 시상식에선 아시아양궁연맹 회장 자격으로 직접 시상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의 양궁 사랑은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으로부터 이어졌다. 현대가(家) 양궁 사랑의 시작은 LA 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 사장이었던 정몽구 회장은 LA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서향순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듬해인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여자양궁단(현대정공)과 남자양궁단(현대제철)을 잇달아 창단하며 선수 육성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대한민국 양궁 선수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꾸준히 메달을 획득해왔다. 올림픽에 참가한 이후 대한민국이 가장 많은 메달(총 39개)을 생산한 종목도 양궁이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실질적인 양궁 실력 향상을 위한 장비 및 기술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부자가 양궁과 인연을 맺은 이후 양궁 장비와 시스템 개량에 투자한 금액은 약 450억 원에 육박한다. 이번 리우올림픽 준비 과정에서도 정 부회장은 올림픽 개막 1년여 전부터 다양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태릉선수촌 내에 리우올림픽 양궁 경기장을 그대로 재연해 적응훈련을 도왔고, 예상치 못한 장비 훼손에 대비해 3D 프린터를 활용한 예비 그립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지원은 리우올림픽 개막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리우로 이동하는 선수단 전체에게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기 티켓을 제공했고 한식조리사를 대동해 언제 어디서나 한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경기장 350m 인근에 호텔 급 휴게시설이 들어간 리무진 버스와 컨테이너를 설치한 것 역시 경기를 앞두고 좀 더 편하게 휴식을 취하며 심신의 안정을 취하라는 정 부회장의 배려였다.
리우올림픽에서 양궁 선수단이 전 종목을 석권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양궁협회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덩달아 꾸준히 양궁을 지원해온 현대차, 정몽구-정의선 부자에 대한 호감도 역시 높아졌다. 누리꾼들은 “이것만큼은 현대차를 비난할 수 없다. 회장님 최고!”, “앞으로도 꾸준히 한국의 주몽을 키우는 데 노력해주세요”, “우리나라 모든 스포츠협회는 양궁협회를 본받아야 한다” 등의 의견을 남기며 양궁 전 종목 석권을 물심양면 지원해온 협회와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양궁 못지않게 주목받은 종목은 바로 사격이다.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의 성과를 올린 대한민국 사격 대표팀에서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진종오(KT사격단)다. 진종오 선수는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 그리고 이번 리우올림픽까지 남자사격 50m 권총 3연패를 달성하며 세계 최고 명사수의 반열에 등극했다.
그런 진 선수의 금메달 획득 장면을 유독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두 명의 기업인이 있다. 바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황창규 KT 회장이다.
김승연 회장의 ‘사격 사랑’은 이미 재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01년 대전 연고의 ‘한화갤러리아 사격단’을 창단해 사격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2년 대한사격연맹 회장사 등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125억 원을 투자하며 사격 선수 양성과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대한민국 사격은 점차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진종오 선수가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은철(남자 소구경복사), 여갑순(여자 공기소총) 선수 이후 16년 만에 사격에서 금메달을 땄다. 당시 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접한 김 회장은 이라크 출장 중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 후 대한민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라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등 김 회장의 든든한 지원 속에 명실공히 사격 강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김 회장은 진종오 선수의 올림픽 3연패가 확정된 이후 리우 현지에 있던 황용득 대한사격연맹 회장(한화갤러리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어려운 환경에서도 도전과 투혼으로 한국 사격의 위상을 높여줘 고맙고, 진종오 선수에게도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달라”며 감사와 축하의 말을 전했다.
진종오 선수가 속해 있는 실업팀 ‘KT사격단’을 운영하는 황창규 회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숨은 공신이라 할 수 있다. 황 회장은 진 선수가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제공하고, 진종오 전담 직원을 배치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집중력과 심리적 안정감이 승패를 좌우하는 종목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지원책이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선 진 선수의 올림픽 3연패가 확정된 직후, 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한 깜짝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양궁과 사격뿐 아니라 이번 올림픽을 통해 최고 인기종목 반열에 오른 펜싱 역시 SK텔레콤의 든든한 지원 속에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지난 2003년부터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기 시작한 SK텔레콤은 이후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이어가며 대한민국이 펜싱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남자 펜싱 에페 개인 결승전에 나선 세계 랭킹 21위 박상영 선수가 세계 랭킹 3위인 헝가리의 제자 임레를 맞아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일궈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의 지원과 투자가 없었다면 한국 펜싱의 침체기는 꽤 길어졌을 것”이라며 “펜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없었을 때부터 묵묵히 지원을 이어온 SK텔레콤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1등 명사수 진종오가 남긴 기록
1. 전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3연패
2.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 사상 최초의 3연패 달성
3. 역대 대한민국 올림픽 최다 메달 보유(금4, 은2)
4. 역대 대한민국 올림픽 최다 금메달 보유 (공동 1위-양궁 김수녕, 쇼트트랙 전이경)
5. 올림픽 신기록 보유(50m 권총 종목, 193.7점)
6. 남자 50m 권총(200.7점), 10m 공기권총(206.0점) 세계기록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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