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상소기구는 7일(한국시간) 2013년 한국산 세탁기를 대상으로 미국이 부과한 9∼13%의 반덤핑 관세가 제로잉 적용을 금지한 반덤핑협정 위반이라고 판단한 패널 판정을 그대로 인용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WTO 상소기구가 미국의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 조치와 관련한 상소심 최종 보고서를 확정해 회람했다”고 밝혔다.
제로잉은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낮을 때(덤핑)만 합산하고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높을 때(마이너스 덤핑)는 ‘0’으로 처리해 전체 덤핑마진을 부풀리는 계산방식이다. 미국이 덤핑 분쟁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써온 이 계산방식이 WTO에서 계속 협정 위반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WTO 반덤핑협정 2.4.2는 덤핑마진을 계산할 때 가중평균 정상가격과 모든 수출거래가격을 참고하도록 돼 있다.
제로잉이 문제가 되자 미국은 한국산 세탁기에 관세를 매길 때 전체 물량이 아닌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수입 판매된 물량만 대상으로 덤핑마진을 선정하는 표적덤핑 방식을 적용해 제로잉과 결합했다.
2012년 블랙프라이데이에 판매된 한국산 세탁기를 문제 삼았다.
WTO 상소기구는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판매된 물량에 제로잉을 적용하는 것도 일반적인 거래에 적용될 수 없으므로 반덤핑협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 표적덤핑과 제로잉을 결합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2013년 8월 WTO에 제소했다.
반덤핑 분쟁에서 1차 심리를 하는 WTO 패널(소위원회)은 올해 3월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의 상소로 2차 심리를 맡은 WTO 상소기구는 1차 패널보고서를 대부분 인용하면서 미국의 관세 부과를 협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미국은 합리적인 기간 안에 WTO 분쟁해결기구(DSB)의 권고·결정에 대한 이행 계획을 보고하거나 완전 이행 때까지 보상에 대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
보상 협상이 실패하게 되면 분쟁해결기구는 추가 보복절차를 밟는다.
산업부는 “WTO는 9월말 DSB 정례회의에서 이번 상소기구 보고서를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WTO 협정은 분쟁 당사국이 달리 합의하지 않는한 이행기간을 최대 15개월로 제한하고 있어 미국은 늦어도 2017년말까지 판정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WTO 상소기구는 세탁기 보조금 관련 쟁점에서도 추가로 한국 측 손을 들어줬다.
WTO는 삼성전자의 전체 연구개발(R&D) 지출에 대한 세액공제를 세탁기에 대한 보조금율 계산에 반영한 미국 상무부의 조치에 대해 WTO 보조금 위반으로 판정했다.
보조금 계산 때 삼성전자의 해외매출을 고려하지 않은 미국 상무부의 조치도 WTO 보조금 협정 위반으로 봤다.
다만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이외 지역에 투자할 경우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 측 보조금 계산 방식 주장을 받아들였다.
WTO 상소기구의 이번 판정에 따라 한국산 수출의 대미 여건이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가정용 세탁기 시장은 연 900만대(2015년 기준) 규모로 월풀이 20.7%를 차지하고 있고 삼성과 LG의 점유율은 각각 12.8%, 12.0%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대미 세탁기 수출액 규모는 1억3,800만달러로 전년보다 28.6% 감소했다.
산업부는 “미국은 판정 이행차원에서 기존 반덤핑 조사기법을 전면 수정해야하므로 앞으로 철강 등 우리 주력 산업의 보호무역주의 대응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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