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위탁운용사들이 유형별로 고유의 특성을 살려야 기금은 안정적인 분산 투자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수익률이 높다는 이유로 특정 종목을 쓸어 담는 쏠림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512조원의 기금을 굴리며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는 강면욱(사진)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CIO·기금이사)은 11일 서울경제신문과 전화통화에서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은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투자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강 본부장의 발언은 최근 국민연금이 주식 위탁운용사에 투자 유형별로 벤치마크(BM)지수를 일정 비중 이상 따를 것을 통보한 뒤, 터져 나오는 운용사들의 불만을 정면으로 맞받아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는 국민연금이 매매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BM지수 복제율을 상향 조정하며 운용사의 자율성을 훼손시켰다고 주장한다. 특히 운용사들은 국민연금의 요구대로 BM지수를 따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중소형주를 팔고 대형주를 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중소형주의 신저가가 속출하는 등 하락세도 이 때문이라는 게 자산운용업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강 본부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위탁 주식 자금은 유형별로 성격을 구분해 벤치마크를 제시하지만 운용사들이 이를 잘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연금은 주식 자금을 위탁운용사에 맡길 때 △순수주식형 △중소형주형 △사회책임투자(SRI)형 △장기투자형 △대형주형 △배당주형 △가치주형 △액티브퀀트 등 총 여덟 가지로 구분하고, 각 스타일별로 BM지수를 따로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순수주식형은 코스피, 코스닥100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등을 감안한 합성지수를, 대형주형은 코스피100지수, 배당주형은 KRX배당지수, SRI형은 자체 SRI지수를 벤치마크로 삼는다. 강 본부장은 “유형별로 전담 분야를 나눠 자금을 맡겨도 몇 개월이 지나면 운용사들이 수익률에 급급한 종목군에 돈을 넣기 때문에 유형 구분이 무색해진다”며 “국민연금으로서는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가 약해지고 미리 짜놓은 자산배분 전략도 어그러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중소형주가 주도하는 장이 펼쳐지자 운용사들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중소형주 비중을 과도하게 높였고 이후 하반기 중소형주가 하락하자 전체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각 유형별로 설정된 BM지수를 따랐다면 성과 악화는 사전에 막을 수 있던 일이었다는 게 강 본부장의 생각이다. 그는 “중소형주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50배에 육박할 정도로 고평가된 종목을 무리하게 담았던 운용사들은 각성해야 한다”며 “위탁운용사들이 각 스타일마다 고유의 성격을 살려 주식을 운용하는 것이 국내 주식시장의 다변화와 성숙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강 본부장은 국민연금의 이번 조치가 위탁운용사의 운용 자율성을 제한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발하며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유형별로 포트폴리오의 50~60%만 벤치마크를 따르고 나머지 부분에 운용사가 자율적으로 종목을 편입할 수 있다”며 “이번 조치가 투자의 쏠림 현상을 막고 중장기적으로 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유주희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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