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복(94·사진) 샘표식품 회장이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박 회장은 1922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샘표식품 창업주인 선친 박규회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흥공립상업고를 졸업하고 한국식산은행(현 한국산업은행 전신)에서 25년간 근무했고 1965년부터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주민등록번호 제도 도입, 소양강댐 준공, 세종문화회관 설립, 한국민속촌 민자유치 건립승인 등 1960∼70년대 정부의 주요 업무를 추진했다.
1976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선친의 뒤를 이어 55세에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했다. ‘내 식구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만들지도 말라’는 선친의 철학에 따라 식품업 본연의 가치인 ‘품질’을 최우선 경영을 펼쳤다.
박 회장은 세계 최고 품질의 간장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1987년 당시 단일 품목 설비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간장 공장을 건립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간장하면 샘표를 떠올릴 정도로 샘표식품을 장수기업 반열로 올려놓았다.
고인의 원리 원칙 경영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1985년 한 방송국에서 불법으로 간장을 만들어 파는 현장을 방영한 뒤 소비자들이 샘표가 그런 것으로 오해하는 위기 상황이 닥치자 박 회장이 직접 TV 광고에 출연해 “샘표는 안전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환영합니다”라고 밝히며 정면 돌파한 일화는 유명하다.
박 회장은 온화한 성품이면서도 근검절약을 실천했던 경영인이다. 직원 경조사를 직접 챙기고 아픈 직원을 병문안하는 등 직원에 대한 사랑도 각별했다는 게 내부 직원들의 평가다. 달력 뒷면과 이면지를 메모지로 활용하고 자신이 타던 10년 된 자동차를 장남에게 물려줘 40만㎞를 타고서야 바꿨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노조설립을 먼저 권유한 것도 그다.
박 회장의 별명은 ‘식초 전도사’다. 하루 세 번 식후에 식초를 마시는 특별한 습관 때문이다. 그는 누구나 일상에서 손쉽게 식초를 활용할 수 있도록 흑초음료 ‘백년동안’을 개발하기도 했다.
40여년을 경영 일선에 있었던 박 회장은 한국상장회사 협의회 회장,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국내 중견기업 및 식품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박 회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목련장,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한국의 경영자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유족은 아들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등 2남 3녀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7시.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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