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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스페셜 리포트 ¦ 페이팔의 따라잡기 생존법





페이팔 Paypal은 한때 온라인 결제 세상을 지배했다. 하지만 수년간 경쟁자들이 성장하면서 기술적으로 뒤처졌다. 과연 독립한 페이팔은 다시 한번 정상에 설 수 있을까?

암울했던 2009년 봄, 거대 온라인 경매업체 이베이보다 전망이 어두운 기업은 거의 없었다. 1990년대 혁신적인 인터넷 사업 중 하나였던 이베이의 온라인 거래시장이 매출 부진을 겪고 있었다. 아마존 같은 경쟁업체들이 이베이의 시장 점유율을 갉아먹고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인 결과 이베이 주가가 2007년 최고가 대비 80% 이상 폭락하고 있었다.

2008년 멕 휘트먼 Meg Whitman으로부터 CEO직을 넘겨 받은 베인 Bain의 전직 수장 존 도나호 John Donahoe에게 난감한 문제가 한상 가득 차려진 셈이었다. 하지만 도나호와 이베이 이사회는 상황을 타개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동안 이베이 자체 핵심사업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잠재력은 뛰어난 자회사 두 곳이 돌파구였다. 바로 인터넷 전화 서비스 스카이프 Skype와 온라인 결제 서비스 선구자 페이팔이었다. 두 자회사를 분사하면 환영할 만한 현금도 확보하고, 이베이 자체의 경매 및 소매사업에도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2009년 초 이사회는 표결을 통해 두 자회사를 팔기로 결정했다. 도나호는 최근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거의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거의’라는 단어였다.

4월 14일 이베이는 스카이프 분사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소식이 퍼지는 동안 도나호는 페이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애플이 자사 앱스토어의 10억 다운로드를 돌파를 막 공개한 시점이었다. 아이폰의 치솟는 인기 때문에 IT 업계 대표들은 휴대폰의 상거래 도구 잠재력을 긴급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페이팔은 세계 유일의 주요 디지털 결제 브랜드였다. 사용자 7,000만 명을 보유한 페이팔은 결제 금액이 매년 20%씩 증가하고 있었다.

도나호가 고민을 계속할수록, 분사 결정은 바보 같은 일처럼 비춰졌다. 그는 “모바일 분야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었고, 이베이와 페이팔 사이에는 분명한 시너지가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사들의 의견을 청취한 그는 이사진도 자신만큼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사진은 7월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 Menlo Park에 위치한 리조트 로즈우드 샌드 힐 Rosewood Sand Hill-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코브 샐러드 Cobb salad를 먹으면서 가십거리를 나누는 곳-에 모여 페이팔에 대한 결정을 철회했다. 단기 처방이 아닌 장기적 잠재력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잠재력은 꽃피지 못했다. 철회된 분사 계획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로 인해 페이팔은 6년 동안 자유롭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디지털 결제업계의 역사도 바뀌었다. 내부 관계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페이팔이 ‘선구자(first mover)’ 위치에 있었음에도, 이베이가 확장이나 혁신을 통해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히려 경쟁자들이 기반을 다지는 사이 소중한 시간만 허비했다고 지적한다.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 분야를, 구글은 검색 분야를 정복했다. 그러나 페이팔은 행동이 굼떴고 앞서 말한 기업들과 같은 길을 가지 못했다. 9,000억 달러 규모의 결제처리 업계에서 디지털 분야를 정복할 기회를 잃은 것이었다. 초창기 페이팔 직원이었으며 지금은 벤처 투자자로 활동하는 키스 라보이스 Keith Rabois는 이베이와 함께한 시절이 페이팔에겐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었다고 분명하게 표현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베이는 결국 페이팔을 분사시켰다. 페이팔은 지난해 7월 독립했고, 올해 포춘 500대 기업에 진입했다. 오해하지 말라: 페이팔은 대기업이다. 페이팔의 ‘가상 지갑(virtual wallet)’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직불카드나 신용카드로 연결해 온라인 결제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서비스의 실제 사용자는 1억 8,400만 명에 이르며 1,400만 상인에게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지난해 처리한 결제 금액은 2,780억 달러, 매출은 92억 달러였다.

하지만 매출의 대부분은 웹사이트 상거래, 즉 우리에게 익숙한 결제완료 버튼 인터페이스에서 나오고 있다(모바일 시대에는 진기한 것으로 느껴지는 시스템이다). 포레스터 리서치 Forrester Research의 전자상거래 애널리스트 슈카리타 멀푸루 Sucharita Mulpuru는 페이팔이 다른 분야에선 뒤처졌다고 말했다. 스퀘어 Square는 소상공인을 위한 매장 내 결제 시장을 장악했다. 기반이 견고한 신용카드 대기업들도 디지털 결제 텃밭 싸움에 뛰어들고 있다. 휴대폰을 계산대에 갖다 대는 것만으로 물건 값을 계산하고 싶다면? 미국에선 애플 페이 Apple Pay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페이 Android Pay로 손쉽게 결제할 수 있다. 하지만 페이팔은 유럽에 한정된 실험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멀푸루는 “페이팔에선 아마존이나 구글의 혁신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팀 구성의 달인: 페이팔 분사 후 첫 CEO를 맡은 댄 슐먼은 기업 인수에 적극적이지만 새로운 자회사에게 상당한 자치권도 부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바꿔야 하는 사명이 페이팔 분사 이후 첫 CEO를 맡은 댄 슐먼 Dan Schulman에게 부여됐다. 활기 넘치는 뉴저지 출신 인물로 카우보이 부츠와 청바지를 선호하는 슐먼은 리처드 브랜슨 Richard Branson *역주: 괴짜 CEO로 유명한 영국 버진그룹 회장 의 멘티이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American Express 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한 달에 두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 페이팔을 사용했으면 한다”며 “그렇게 시작해 나중에는 매일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현실화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년도 채 안돼 가치 있는 신기술을 인수했고, 한편으론 이베이 시절부터 탄탄했던 사업을 한층 더 강화했다. 그 중 하나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기가 좋은 사용자 간 결제 앱 벤모 Venmo다.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페이팔이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 점점 더 치열해지는 디지털 결제 업계 경쟁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인터넷 1.0 세대로 취급되는 AOL이나 야후 같은 기업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포레스터 리서치의 애널리스트 브렌던 밀러 Brendan Miller는 “과거를 떨쳐내는 것이 페이팔의 가장 큰 당면 과제”라고 주장했다.

페이팔은 테슬라 Tesla와 스페이스엑스 SpaceX, 링크트인 LinkedIn보다 먼저 탄생했다. 일론 머스크 Elon Musk, 피터 시엘 Peter Thiel, 리드 호프먼 Reid Hoffman 등이 설립자 혹은 초기 직원으로 활동했던 페이팔은 사람들이 서로 안정적인 디지털 송금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최초로 개발한 기업이다. 닷컴 기업들이 몰락하던 시기에 살아남아 1,6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2002년에는 상장까지 했다. 그러나 몇 개월 지나지 않아 15억 달러에 이베이로 매각됐다.

페이팔에는 괴짜 수학자와 컴퓨터 공학자들을 선호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들은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아침 몇 시간 만에 코드를 작성하곤 했다. 하지만 그 시절 베테랑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당시 이베이의 방식은 관료주의에 가까웠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승인 받는 데 수 세기가 걸릴 것 같았다고 한다. 결국 ‘페이팔 마피아 PayPal mafia’ 로 알려진 혁신의 리더들은 대부분 회사를 떠났다. 라보이스는 “적합한 인수자가 좋은 문화를 유지했다면, 그들은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베이가 페이팔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건 이해할 만한 일이다. 페이팔 서비스를 소유했다는 것 자체로 이베이는 모든 경매에서 두 번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판매 자체에 대한 이베이 몫으로 한 번, 페이팔 거래 수수료로 한 번 받는 식이었다. 2002년 이베이의 경매 결제 수단 중 40%를 차지했던 페이팔은 2005년까지 90%의 점유율을 달성했으며, 매우 탄탄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 결제가 탄력을 받기 시작한 초창기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스퀘어, 스트라이프 Stripe, 브레인트리 Braintree 같은 신생기업들이 영감을 얻었던 그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2009년 들어 이베이 경영진은 모바일 분야에서 페이팔이 뒤처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분사 취소 결정을 만회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2011년 이베이가 모바일 결제 중심의 신생기업 종 Zong을 2억 4,0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페이팔은 중요한 ‘인재영입 목적의 기업인수(acqui-hire)’를 하게 됐다. 종의 설립자로 모바일에 특화된 기업 여럿을 만든 바 있는 데이비드 마커스 David Marcus가 페이팔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스퀘어를 견제할 목적으로 곧바로 페이팔 히어 PayPal Here를 출시했고, 휴대폰과 아이패드에 부착된 신용카드 리더기를 소규모 사업체들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페이팔 웹사이트를 전면 개편하기도 했다. 그가 이룬 성과는 2013년 브레인트리 인수로 정점을 찍었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이 업체는 에어비엔비와 우버 같은 급성장 신생기업들의 온라인 및 모바일 결제를 처리하던 곳이었다. 금상첨화로 브레인트리는 개인 간 송금 앱 벤모도 보유하고 있었다.

모바일 상거래 분야에서 사실상 존재감이 없었던 페이팔은 브레인트리를 인수하면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업계 브랜드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모네스 크레스피 하트 Monness Crespi Hardt의 인터넷 자산 연구 애널리스트 제임스 칵막 James Cakmak은 “이것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2014년 브레인트리가 처리한 결제 금액은 230억 달러에 달했고, 그 이듬해에는 그 규모가 두 배 이상 증가해 500억 달러까지 이르렀다.

이 같은 결과는 또 다른 트렌드를 가속화시켰다. 페이팔이 모기업 이베이보다 눈에 띄게 빠르게 성장한 것이었다. 2013년 페이팔 매출은 19% 증가해 66억 달러에 도달한 반면, 이베이의 거래시장 서비스 매출은 12% 성장하는 데 그쳐 83억 달러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2014년 1월에는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 Carl Icahn이 페이팔의 분사를 요구하며 5년 전 이사회가 벌였던 논쟁에 다시 한번 불을 붙였다. 페이팔은 독자적으로 더 잘 운영될 수 있으며, 이베이는 분사를 통한 현금 확보로 스스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6월 이베이는 2009년에 내릴 수도 있었던 결정을 마무리했다. 이사회는 표결을 통해 두 기업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도나호의 다음 임무는 독립하는 페이팔에 적합한 CEO를 찾는 일이었다. 마커스가 물망에 올랐으나, 그는 2014년 8월 페이스북 메신저 Facebook Messenger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때 헤드헌터가 댄 슐먼의 이름을 도나호에게 제시했고, 슐먼은 버크셔 주에 위치한 자신의 별장으로 도나호를 초대했다. 도나호는 8월 어느 날 오후 매사추세츠 주 피츠필드 Pittsfield에 위치한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슐먼과 함께 그날 하루를 보냈다. 녹지 사이를 걸으며 분사 후에 페이팔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공항으로 돌아오던 도나호는 이사회에 전화를 걸어 차기 CEO를 찾아냈다고 전했다.

슐먼은 워싱턴에 위치한 햇빛 가득한 페이팔 사무실에서 회사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설명했다. 이날 그는 카우보이 부츠 대신 캐주얼 슈즈 페니 로퍼를 신었다(물론 청바지는 입고 있었다). 슐먼은 미 국무장관 존 케리 John Kerry, 세계은행 총재 김용(Jim Yong Kim)과의 미팅을 막 끝낸 상태였다. 그는 두 사람에게 개발도상국에 결제 기술을 보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슐먼은 페이팔이 모든 형태의 모바일 거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녁 식사 후 자기 몫을 친구에게 송금하는 일,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고 값을 치르는 일, 온라인으로 화장지를 구입하는 일도 그런 서비스에 포함되어 있었다. 페이팔은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를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다(매일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제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 슐먼은 이를 “복잡한 체스판”이라고 표현했다.

페이팔은 ‘졸(pawn)’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왕(queen)’도 아니다. 페이팔의 지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애플과 구글을 비롯한 수많은 경쟁업체들이 고객이나 매출에 대한 결제 서비스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억 8,400만 명이라는 페이팔 이용자 규모에 대적할 경쟁업체는 하나도 없지만, 이중 모바일 서비스 사용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최대 약점이었다. 트랜스패런시 마켓 리서치 Transparency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세계 모바일 결제 규모는 2018년 1조 2,000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애널리스트 칵막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페이팔에 연 매출 100억 달러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총매출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페이팔이 이런 규모의 매출을 달성하려면 거친 경쟁자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애플은 2014년 애플 페이를 출시했다. 현재 200만 개 이상의 소매업체에서 사용 가능하며, 다른 기업 앱의 내부 결제 서비스로도 쓰이고 있다. 연구조사 기관 크론 컨설팅 Crone Consulting에 따르면, 애플 페이의 현재 월간 사용자 수는 1,200만 명이다. 애플은 이 수치를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매달 수백만 명의 사용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페이 역시 급성장하고 있다. 아이티지 인베스트먼트 리서치 ITG Investment Research의 애널리스트 스티브 와인스타인 Steve Weinstein은 애플과 구글이 페이팔에 비해 매우 유리한 장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기업 모두 운영체제(각각 iOS와 안드로이드)를 통제해 휴대폰에 결제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페이팔은 브레인트리 덕분에 소상공인 결제 처리 서비스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장 부문에선 뒤처지고 있다. 스퀘어는 2015년 매장 내 결제 서비스로 12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페이팔의 매장 내 서비스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비자 임원을 역임한 후 앤드리슨 호로비츠 Andreessen Horowitz에서 벤처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 알렉스 람펠 Alex Rampell은 “페이팔은 앞서간 기업들을 따라잡기에 너무 늦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페이팔이 막강한 적을 마주하는 곳은 실리콘밸리 뿐만이 아니다. 비자, 마스터카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같은 거대 신용카드 업체들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전략적 동맹을 맺은 경쟁자(Frenemies)에 가깝다. 페이팔 사업의 상당 부분은 소비자가 카드를 통해 제품을 구입할 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금융 기관들은 모두 상당한 규모의 매출을 거둔 후 이를 디지털 분야 개발에 투자했고, 이미 페이팔 주요 사업과 경쟁하는 서비스도 출시했다(비자 체크아웃 Visa Checkout, 마스터패스 MasterPass, 아멕스 익스프레스 체크아웃 AmEx Express Checkout이 그것들이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서비스는 비자 체크아웃으로, 25만 명의 상인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슐먼의 비전은 이 모든 전선에서 동시에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가 CEO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은 페이팔 기술을 이베이 기술로부터 분리하는 것이었다. 최고기술책임자(CTO) 스리 시바난드 Sri Shivananda가 페이팔의 결제 인프라를 재구축했고, 현재는 스타 트렉 Star Trek 세트의 브릿지와 유사한 새로운 중앙통제실에서 ‘페이팔 제국’을 관리하고 있다. 100개의 통화로 이뤄지는 하루 약 1,500만 건의 결제 과정을 15m 크기의 벽에 설치된 수십 개의 스크린을 통해 총괄하고 있다.

슐먼은 소규모 상점의 계산대에서 페이팔의 존재를 확대해 관리대상 거래 건수를 늘리고 싶어한다. 2015년 3월 페이팔은 2억 8,000만 달러에 결제 서비스 신생기업 페이디언트 Paydiant를 인수했다. 페이디언트의 기술은 ‘화이트 라벨 white label’ (*역주: 다른 업체가 구입해 자체적인 제품이나 서비스인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 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브랜드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 소매업체와 은행들은 이 기술을 통해 결제 기능, 로열티 프로그램, 디지털 쿠폰을 자체 앱에 탑재하고 있다. 예컨대 서브웨이 고객들은 페이디언트의 기술을 통해 앱 내에서 샌드위치 주문과 결제를 완료한 후, 줄 설 필요 없이 제품을 받아갈 수 있다.

페이디언트와 브레인트리 같은 자회사들은 페이팔 소속이긴 하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체 사무실과 회사명, 경영진도 가지고 있다. 슐먼은 이를 통해 더 빠른 혁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베이와 함께 하던 시절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슐먼이 예로 든 브레인트리는 회사 합병 당시 CEO였던 빌 레디 Bill Ready가 여전히 사업을 이끌고 있다. 레디는 지난해 원 터치 One Touch를 출시한 바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페이팔 사용자들은 동일한 기기에 여러 번 로그인을 할 필요가 없다. 올해 4월까지 원 터치는 사용자 수 2,200만 명 이상을 확보하며 사용자 유입 측면에서 페이팔 사업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원 터치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하는 앱이 벤모다. 사용자들이 서로에게 즉시 송금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2015년 처리 금액은 75억 달러였으며, 지난 1월 처음으로 월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벤모와 같은 앱들(스퀘어 캐시 Square Cash와 구글 월릿 Google Wallet 등등)은 큰 매출을 올리진 못한다. 하지만 벤모가 그 같은 추세를 깰지도 모른다. 페이팔 이사들은 벤모 고객들의 충성도가 특별히 높으며(일주일에 3~4번 서비스를 이용한다), 사회 관계도 활발하다(사용자들은 벤모의 인기 기능을 통해 친구들과 결제 내역을 공유한다)고 주장했다. 슐먼은 이렇게 적극적인 대중에 접근하고자 하는 상인이라면, 결제 옵션의 하나로 벤모를 제공하는 권리를 얻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 믿고 있다. 아이티지의 와인스타인은 이런 가정이 현실화 할 경우 벤모가 페이팔에게 부족한 것, 즉 매장 내 엄청난 인기 앱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이팔은 소비자들이 은행과 신용카드 발급업체 모두에 싫증을 느낄 때를 대비해 블록체인 암호화 화폐(Blockchain Cryptocurrency) 기술 도입의 첫 걸음도 떼기 시작했다. 서비스 이용 상인들이 비트코인 결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브레인트리 기술을 업데이트한 것이다. 지난 1월에는 비트코인 지갑 자포 Xapo를 개발한 창업가 웬스 카사레스 Wences Casares를 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디스트릭트 Mission District를 걷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경제 생태계를 마주할 수 있다. 바로 송금의 세계다. 주요 도로 한 곳을 지나가면서 세 블록마다 세 개의 송금 처리소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그 중 한 곳 밖으로 길게 줄이 늘어섰다. 처리소 내부 계산대 방탄 창문 주변에선 주로 스페인어가 오고 가고 있었다. 급여가 나오는 날이라 처리소는 본국 가족에게 송금하는 근로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작년 7월 페이팔은 8억 9,000만 달러에 송금 서비스업체 줌 Xoom을 인수했다. 이 업체는 물리적인 처리소에서 벗어나 모바일 스크린을 통해 송금할 수 있도록 해준다. 줌이 제공하는 앱을 통해 53개 국가에 송금을 할 수 있고, 수신인도 지정할 수 있다. 금액이 은행 계좌로 들어가야 하는지 혹은 현금 수령이나 배송을 통해야 하는지 선택할 수도 있다. 송금인이 은행을 이용하지 않으면 이 앱을 사용할 수 없지만-사용자는 은행이나 신용카드 계좌에 원하는 거래를 연결해야 한다-송금 처리소를 이용하는 것보단 훨씬 더 안전하고 저렴하다. 또 수신인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송금인은 전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줌 덕분에 페이팔이 금융 세계의 또 다른 영역에 깃발을 꽂게 됐다는 점이다. 페이팔이 슐먼이 세운 비전대로만 돼준다면, 잃어버린 10년 동안 결핍됐던 혁신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슐먼은 “전세계 돈의 흐름을 재구축하는 일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거 웹사이트에서 (결제처리) 버튼 정도에 불과했지만, 훨씬 더 거대한 존재가 되길 열망하고 있다.”


■ 새로운 페이팔의 기둥들
페이팔은 여전히 웹사이트 기반 전자상거래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의 미래는 아래 서비스들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 결제 처리
페이팔은 2013년 브레인트리를 인수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에어비앤비와 우버, 스텁허브 StubHub 등의 모바일 및 디지털 결제 500억 달러를 처리했다.
경쟁업체: 스트라이프, 에이든 AYDEN, 체이스 페이먼텍 CHASE PAYMENTECH

▶ 송금
송금 앱 줌은 2015년 페이팔이 인수한 업체다. 미국 내 사람들은 줌을 통해 53개 국가에 있는 가족이나 타인에게 손쉽게 돈을 보낼 수 있다.
경쟁업체: 웨스턴 유니언 WESTERN UNION, 리아 파이낸셜 RIA FINANCIAL

▶ 개인간 거래
밀레니얼 세대 젊은이가 벤모를 통해 송금하라고 요구했다면, 그건 페이팔 제국과 거래하는 것이다. 페이팔이 브레인트리를 인수하면서 얻은 벤모는 사용자들이 서로 신속하게 송금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페이팔은 이 서비스를 소비자 대 상인 결제로 확장하고 있다.
경쟁업체: 스퀘어 캐시, 페이스북 메신저, 구글 월릿

▶ 신용 거래
쇼핑할 때 페이팔 크레디트 PayPal Credit를 이용하면 무이자로 결제를 이월할 수 있다. 그러나 6개월 후에는 이자율 19% 적용이 시작된다.
경쟁업체: 마스터카드, 비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어펌 AFFIRM


■ 결제 전쟁의 발화점
기술 및 소비자 행동의 변화로 디지털 결제 분야는 은행과 실리콘밸리가 시장 점유율과 고객 충성도를 놓고 경쟁하는 싸움터가 되었다. 현재의 전황 속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부분들을 살펴본다.

모바일 지갑
페이팔은 최초의 디지털 지갑을 개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데이터를 업로드한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결제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서비스가 이동하면서 디지털 지갑의 휴대가 가능해졌고, 휴대폰과 자체 운영체제를 만드는 경쟁업체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애플 페이, 안드로이드 페이, 삼성 페이를 생각해보라). 이제 IT 기업과 은행들은 이런 결제 방식을 ’핸즈프리‘로 만들어 고객들이 스마트폰(혹은 스마트워치)을 계산대 무선 리더기 앞에서 흔드는 것만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개인 간 거래
돈뭉치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보모에게 급료를 지불하고 싶은가? 점원 각자가 8개의 신용카드를 모두 긁지 않아도 저녁 식사 비용을 나눠 낼 수 있기를 바라는가? P2P 시스템은 은행이나 카드 계정에 연결된 앱을 이용,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통해 서로 송금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재 페이팔의 벤모가 선두주자지만, 스퀘어 캐시와 구글 월릿이 막강한 도전자로 나서고 있다. 애플도 이 경쟁에 뛰어들지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도 지켜볼 필요가 있는데,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자체 SNS 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디지털에 선택사항이 생기면서 몇몇 소비자들은 은행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블록체인 기술은 사용자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안전하게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은행과 같은 중앙 관리 체제도 필요하지 않다.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가장 잘 알려진 암호화 화폐다. 현재 이를 사용하는 상인의 수는 적지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주요 관련 업체로는 비트코인 환전소 코인베이스 Coinbase, 비트코인 지갑 자포(설립자가 현재 페이팔의 이사다), 결제 앱 서클 Circle등이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Leena R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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