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포춘 글로벌 500 ¦ 거대한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가?





존슨 앤드 존슨 Johnson & Johnson은 ‘대기업’이 부정적인 단어가 된 시대에 ‘무게(영향력)’와 ‘너비(사업 영역)’가 미덕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설립 130년을 맞은 초거대기업이 어떻게 중력을 거스르는 방법을 습득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뉴저지 주 뉴 브런즈윅 New Brunswick 에 위치한하얏트 리젠시 Hyatt Regency 로비가 진기한 의료 장비로 가득한 바자회 장소로 탈바꿈했다. 한 부스는 24분 만에 수술 도구를 소독하는 커다란 기계를 선보였다(일반적인 소독 절차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다). 바로 근처에선 식사 시간에 사용되는 매끈한 모양의 인슐린 공급기가, 머지않은 곳에선 슬래셔 영화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에 나올 법한 모양의 여드름 치료용 광마스크가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청중을 가장 흥분시킨 존재는 한 인체모형-정확히 말해 인체모형 가슴 부분에 위치한 열린 구멍-이었다. 한 구경꾼이 레이저건과 가축몰이용 막대 사이로 수술도구 하나를 잡고는 인체모형 안쪽으로 깊이 집어 넣었다. 조작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이 직접 빙고 카드에 만족스럽게 붙여 놓았던 스티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예행연습: 존슨 앤드 존슨 CEO 앨릭스 고스키가 애널리스트들을 위한 프레젠테이션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가장 진기한 대상에 흥분했다. 앨릭스 고스키 Alex Gorsky도 흥분했지만, 빙고 카드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올해 56세인 존슨 앤드 존슨 CEO 고스키은 5월의 이슬비 내리는 이날 아침-‘애널리스트 데이’였다-기회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연간 매출 700억 달러 규모의 보건의료 대기업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지난 4년 동안 꾸준히 주장해왔던 이야기를 뒷받침할 무언가를 보여줄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존슨 앤드 존슨이 덩치만 큰 게 아니라 기반도 넓은 기업이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메시지가 거기에 담겨 있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국가에 250개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존슨 앤드 존슨은 130년 역사의 깃발 아래 세계 최대 의료장비 사업, 훨씬 더 큰 제약 사업, 그리고 뉴트로지나 Neutrogena부터 타이레놀 Tylenol에 이르기까지 10여 개의 초거대 소비자 제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회사는 밴드에이드 Band-Aids부터 로게인 Rogaine, 콘택트렌즈, 결핵 치료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생산하고 있다.

지구 상에 진정한 보건의료 대기업이 하나 있다면 바로 전세계 기업 매출 순위 103위인 대기업 존슨 앤드 존슨일 것이다. 하지만 투자업계의 많은 이들에게 ‘거대 기업’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단어에 다름 아니었다.

CEO들이 월가에 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면 그건 “우리는 확장 중이다. 서로 상관 없어 보이는 다양한 사업을 소유하고 있다” 같은 것이었다. 기업 리더가 이런 주장을 대담하게 펼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런 식의 자랑은 행동주의 투자자들-가장 처음 확장의 냄새를 맡고, 코끼리 물범을 포착한 백상어보다 더 빠르게 이를 추격한다-의 먹잇감일 뿐이었다(듀폰트 DuPont, 다우 Dow, 휼렛-패커드 Hewlett-Packard, GE 등을 떠올려보라). 실제로 제약업계의 몇몇 ‘물범’이 이미 희생된 바 있다. 애보트 랩스 Abbott Labs와 박스터 Baxter는 모두 둘로 쪼개졌다. 화이자 Pfizer 또한 축소돼 동물 의료 부문과 유아 영양 부문 사업을 잃어버렸다.

이날 아침 북적이는 하얏트 볼룸 무대에 올라선 고스키는 이런 연유로 일종의 선제공격에 나섰다. 진심을 다해 대기업 자체, 혹은 스스로 ‘넓은 기반의 장점’이라 부르는 요소들을 옹호했다. CEO 직속의 경영팀도 유사한 발언을 통해 회사의 다변화 모델을 칭송했다. 안정적인 재정 경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소비자부터 병원, 정부까지 아우르는 고객 기반을 내세웠다.

그러나 자미 루빈 Jami Rubin은 이런 주장에 넘어가지 않았다. 영향력 있는 골드만삭스 Goldman Sachs 애널리스트인 그녀는 연단에서 몇 줄밖에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회사측 홍보를 듣고는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모기업 구조 하에 소비자 사업부문을 유지하는 것이 어떤 전략적 장점을 갖는지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녀는 곧이어 “죄송하지만, 참을 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바로 ‘거대기업 킬러’의 등장이었다. 루빈은 1990년대부터 제약업계를 다뤄온 인물로 수년간 기업들을 압박해 몸집을 줄이도록 종용해왔다. 화이자, 애보트, 박스터를 상대로 한 그녀의 활동 하나 하나는 강력한 내부 저항에 부딪혔지만, 결국 기업들은 그 활동에 굴복했다. 그리고 루빈이 ‘풀려난 가치(unlocked value)’라 부르는 효과 덕분에 투자자들은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지난 3월 나온 골드만삭스 연구조사 문서에 따르면, 애보트의 제약 사업부분 분사로 920억 달러가 족쇄에서 풀려나 주주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고, 비교적 작은 금액이지만 박스터에서도 40억 달러가 같은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2011년 루빈은 세간의 관심을 끈 ‘이별은 하기 쉬운 일(Breaking Up Is Easy to Do)’이라는 제목의 연구조사 보고서를 통해, 사실상 주요 제약업체 모두에게 자산 분리를 요구했다. 1년 후 고스키가 존슨 앤드 존슨 CEO에 올랐을 때, 비대한 제약업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이 뉴 브런즈윅 기반의 대기업은 루빈의 표적 리스트 가장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그렇게 1월이 되자 그녀의 오랜 활동에도 응원군이 생겼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투자업체 아티잔 파트너스 Artisan Partners가 회사의 분사를 주장한 것이었다. 이 업체는 사업부문 3개 중 2개의 형편없는 실적을 존슨 앤드 존슨의 여러 잘못 중 하나로 지적했다. 바로 소비자 제품 부문과 의료기기 부문으로,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업들이다(제약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아티잔의 매니징 디렉터로 회사의 글로벌 밸류 펀드 Global Value Fund-당시 존슨 앤드 존슨의 극히 일부 지분(0.2%)을 보유하고 있었다-의 포트폴리오 운용을 총괄하는 대니얼 오키프 Daniel O’Keefe는 “해당 사업부문들에선 함께 모여 있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증거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독립적으로 운영됐다면 가능했을 실적보다 못하다는 증거가 압도적이었다” 고 지적했다(골드만삭스의 루빈은 3월 중순 이 가설을 숫자로 보완했다. 존슨 앤드 존슨 개별 사업부의 가치를 모두 합하면 회사 전체 가치보다 400억 달러나 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고스키, 존슨 앤드 존슨 그룹 세계 의장 샌드라(샌디) 피터슨, CFO 도미니크 카루소.


그러나 오해는 금물이다. 가까운 미래에 존슨 앤드 존슨이 분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고스키는 확장을 거듭해온 회사의 발자취에 대해 오랜 동안 깊이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를 유산이라는 측면에서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략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겉보기에 거추장스러울 만큼 거대한 존슨 앤드 존슨의 규모는 오늘날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기업들 사이에서 뭔가 희귀한 것을 얻고자 하는 고스키의 공식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성장하는 안전지대’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이 공식의 첫 번째 요소인 안정성은 지난 수십 년간 존슨 앤드 존슨을 상징해왔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54년 연속 배당금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S&P로부터 신용등급 트리플A(AAA)를 받은 단 2개의 미국 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했다(다른 한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다).

회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환율 탓에-지난 호 ‘강력한 달러를 경계하라(Beware the Almighty Dollar)’ 기사를 참조하라-존슨 앤드 존슨의 2015년 매출은 전년 대비 5.7%(43억 달러) 하락했지만, 고스키가 CEO에 오른 이후엔 매출이 조금씩 상승 추세였다. 지난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2.4%에 이르는 등 수익성 측면에선 더욱 긍정적이었다. 최근 불거진 전 세계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지난 7월 19일 탄탄한 매출 및 수익 실적을 발표했고, 올해 매출 추정치도 3억 달러나 더 높게 잡았다. 고스키의 임기 동안 S&P 500은 수익률 69%를 기록한 데 비해, 회사 주식(배당금 포함)은 주주들에게 120%의 수익을 안겨주었다.

도이체 방크 Deutsche Bank의 애널리스트 크리스틴 스튜어트 Kristen Stewart는 “그들은 훌륭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사업부문에 걸쳐 다양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시간과 역량이 풍부하다. 다변화 사업 플랫폼 덕분이다. 존슨 앤드 존슨이 스스로의 운명을 정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존슨 앤드 존슨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면, 고스키야말로 그 운명을 결정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각진 어깨와

단단한 체격을 가진 고스키는 마치 회사의 휴먼 퍼포먼스 인스티튜트 Human Performance Institute(회사 소속 운동선수를 육성하는 사업부)에서 훈련을 받은 듯 탄탄한 몸매를 갖추고있다.

이 CEO는 보통 새벽 4시 30분부터 하루에 60~90분씩 운동을 한다. 자신의 사무실과 인접한 개인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매우 뛰어난 기억력과 ‘갈라진 팔뚝’(그의 미디어 책임자가 쓰는 표현이다)을 지녔고, 시트콤에 나오는 전형적인 미남형 아버지의 외모도 갖추고 있다. 그는 버릇처럼 이런 말들을 자주 하곤 한다. “마음에 들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거나 “역사는 자부심의 근거가 돼야 하지만, 그것이 닻이 될 수는 없다” 같은 말을 계산된 톤과 매너를 통해 의도한 수준으로 전달한다. 직원들은 그가 인간적이라고 증언한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직원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상사라고 이야기한다.

중서부 지방에서 위아래 형제를 두고 자란 고스키는 웨스트포인트 West Point에 입학, 공병으로 훈련을 받은 후 6년간 군복무를 했다. 몇 년 간은 유럽에서 육군 중위로 근무했고, 그 후엔 캘리포니아에서 존슨 앤드 존슨 약품 판매직에 도전했다. 입사 후 그는 빠르게 승진가도를 달렸다. 존슨 앤드 존슨을 떠나 2004년 노바티스 파마수티컬 Novartis Pharmaceuticals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올랐다가 4년 후 다시 돌아왔다. 한 명의 라이벌과 선의의 경쟁을 벌인 끝에, 2012년 2월 CEO자리에 올랐다.

고스키의 CEO 발탁은 회사의 오랜 역사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시기에 이뤄졌다. 그가 회사의 7번째 CEO로 임명되기 5일 전, 회사는 약병 디자인 결함 때문에 포도향 타이레놀 57만 4,000병을 리콜했다. 그 전 30개월간 존슨 앤드 존슨이 진행했던 20여 건의 리콜이 없었다면, 이 타이레놀 사태는 뉴스거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명성과 품질관리에서 초래된 거듭된 위기가 베나드릴 Benadryl, 아비노 Aveeno, 존슨즈 베이비 샴푸 Johnson’s Baby Shampoo 같은 좋은 이미지의 브랜드가 속해 있는 소비자 사업부문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혁신가: 벨기에에 위치한 존슨 앤드 존슨 비어스 Beerse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고과학책임자 폴 스토펠스 박사. 그는 회사 전체의 연구개발을 이끌면서 ‘혁신 어젠다’를 설정하고 있다.


이 사안들은 2010년 정부 청문회의 주제가 되기도 했지만, 회사 문제는 그 후에도 멈출 줄을 몰랐다. 거의 매달 새롭고 지독한 문제들이 불거졌다. 롤레이즈 Rolaids에서 나무와 금속 조각이 발견됐고, 베이비 로션에선 과도한 양의 박테리아가 검출됐다. 선적용 팰릿 문제로 인한 악취 때문에 제품을 리콜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모트린 Motrin 제품에 대한 ‘유령 리콜(phantom recall)’을 진행한 것이 발각되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고, 업체 한 곳과의 계약을 통해 기준 미달 제품을 매장으로부터 모두 구입하도록 한 것이었다. 2011년 미 식약청은 존슨 앤드 존슨의 생산 시설 중 3곳을 양자 합의 하에 사실상 정부가 감시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회사는 과오를 인정했다).

고스키가 CEO에 임명됐을 때, 많은 이들은 그가 이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되 변화를 크지 일으키진 것이라 생각했다. 고스키는 완벽한 내부인사였다. 이 회사에서 20여 년을 보내며 3개 사업부 중 가장 큰 두 곳을 이끄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는 임기 초기부터 자신이 물려 받은 기업의 본질적인 요소들에 반기를 들었다. 한때 성스러운 원칙으로 여겼던 분산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분산화는 이 대기업에 속한 250개 가량의 자회사들이 완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회사는 설립 이후 오랫동안 대부분 합병을 통해 성장해왔다. 경영을 잘하던 기업들을 인수해 유지시킨 것이었다. 존슨 앤드 존슨 경영진은 굳이 통합이나 표준화 같은 것들을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스키는 분산화가 꼭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광범위한 기반을 갖춘 보건의료 기업의 요체는 다양한 사업부문들이 ▲시너지 효과 ▲상호 성장의 아이디어 ▲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는 비용절감 실현을 위해 함께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스키는 이것이 가치를 실현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큰 변화 없이 지키기로 한 부분-감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은 ‘기업 신조’의 중심 역할을 했다. 존슨 앤드 존슨의 밖에서 보면, 이건 정말 독특한 아이디어-기업 인사부서가 ‘신입사원의 날’ 언급하고는 다시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은 아이디어-로 들릴 만하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기업 신조는 헌법만큼이나 신성한 것이었다.



존슨이란 이름을 가진 삼형제가 1886년 뉴 브런즈윅에 설립한 존슨 앤드 존슨은 한 세대 동안 천천히 성장을 했다. 그리고 로버트 우드 존슨 Robert Wood Johnson 2세가 가업의 공개기업 전환을 마지못해 결정했다. 그는 시장의 압박이 회사 가치에 미칠 영향을 걱정해 일종의 안전장치로 307개 단어로 구성된 기업 원칙 성명서를 직접 작성했다. 존슨 앤드 존슨의 책임이 누구를 향하는지 밝히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는 환자와 의사, 두 번째는 직원, 세 번째는 공동체였다. 주주들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73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기업 신조-임직원은 대개 이 신조(credo)를 영국 사람들처럼 ‘크레이-도우’라고 발음한다-는 회사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다. 본사 정문 입구에 위치한 돌에 새겨져 있고, 모든 회의 공간에도 걸려 있다. 고스키의 책상 맞은 편 벽에도 거대한 크기로 걸려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입사원들에게 기업 신조 2본을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하나는 직장에, 다른 하나는 자택 액자에 걸도록 했다.

지금 이 회사엔 ‘기업 신조 도전(credo challenges)’이라는 것도 있다. 기업 위기 대비 훈련과 유사한 것으로, 사업적 결정을 분석할 때 기업 신조를 면밀히 검토한 후 진행하는 것이다. 2년에 한 번씩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사업의 신조 표준 준수 정도도 평가하고 있다. 회사에 대한 장기 비전을 처음으로 이사회에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고스키는 그 중심에 신조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회사의 규모 또한 그 비전의 일부였다. 보건의료 업계의 대규모 변화들과 이와 관련된 다수의 정부 및 기관 고객, 파트너들을 고려하면, 거대한 규모는 거래 협상에 있어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기업이 각 부분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만 있다면, 영향력(무게)과 사업 영역(너비)은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연결’이 바로 샌디 피터슨 Sandi Peterson의 임무였다.

고스키는 바이엘 Bayer 중역 출신인 그녀를 한 산업 의료기기 위원회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CEO에 오르자 지체없이 그녀를 존슨 앤드 존슨으로 불러 들였다. 2012년 말 피터슨은 신설된 ‘그룹 세계 의장(group worldwide chairman)’직에 임명됐다. 그녀의 역할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소비자 그룹과 기술에 관해 포괄적인 책임을 지고 감독하는 것이었다.

새 직함보다 더 낯선 부분은 그녀가 외부인이란 사실이었다. 그녀는 존슨 앤드 존슨에서 한 계단씩 올라오지도, 합병을 통해 합류하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회사의 고위급 임원 대부분은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피터슨이 맡은 임무 자체는 외부인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피터슨이 합류했을 때, 존슨 앤드 존슨의 250개 자회사들에는 각기 다른 자체 인사 정책과 재정 시스템, 조달 절차가 있었다. 각 대표들이 이 모든 결정-잔디를 다듬을 직원에서부터 사용할 회계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을 관리 감독했다. 직원들이 다른 자회사 직책을 맡게 되면, 업무의 연속성도 실종됐다. 완전히 다른 기업에 합류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현상은 특히 IT 부문에서 심했다. 자회사 하나하나의 방식이 모두 달랐다. 고스키는 버거울 만큼 거대한 이 ‘기계’에 규칙을 최우선적으로 도입하고자 했다. 그는 “때때로 고객들은 250개의 존슨 앤드 존슨을 상대하기 싫어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련미를 갖춘 매킨지 출신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에서도 활동 중인 피터슨은 짧게 자른 금발 머리를 하고 있다. 책상 아래 사이클링 페달도 설치해 두고 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다. 피터슨을 만나면 몇 초 안에 그녀가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있는 사람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미 바이엘에서 비슷한 효율성 제고 업무를 이끌었던 적이 있으며, 그 전에는 월풀 Whirlpool, 나비스코 Nabisco에서도 같은 일을 수행했다. 그녀는 마치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익숙해져 무뎌진 사람처럼 말하곤 한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피터슨은 현재 250개 자회사의 재무예측부터 직원 차량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열정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표준화 절차-그녀는 현재 절반 이상이 완료됐으며, 회사가 1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것이라고 말했다-의 열쇠는 회사의 데이터 대부분을 클라우드로 옮기는 것이다. 그녀는 클라우드가 건강정보 관련 법률을 준수하는 민간부문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까지 존슨 앤드 존슨의 데이터 중 85%는 클라우드 기반의 정보가 될 것이다.

아마존 웹 서비스 Amazon Web Services CEO 앤디 제시 Andy Jassy는 존슨 앤드 존슨의 노력에 대해 “매우 진보적이고,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제시는 많은 기업들이 ’우선 지켜보자‘는 식의 보수적 접근법으로 기술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존슨 앤드 존슨은 클라우드상에서의 보건의료 준수가 어떤 모습인지를 정의하고 있으며, 심지어 아마존이 더 빨리 움직이도록 만들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이 압박한 덕분에, 우리는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는 업계에서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구글, 애플, IBM과의 여러 기술 프로젝트 파트너십도 중개한 바 있는 피터슨은 여러 통계수치를 대화 중에 아무렇지 않게 읊어댔다. 존슨 앤드 존슨은 매년 450개의 앱-7분 운동(7 Minute Workout)부터 유아를 위한 취침 앱까지-을 출시했고, 12만 명이 넘는 직원들 모두를 워크데이 Workday의 단일 인사 데이터베이스로 이전하기도 했다. 또 이베이와 동등한 양의 데이터를 매일 처리하면서 500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다. 그녀는 보관 중인 데이터의 양에 대해 “미 국세청(IRS) 데이터의 2.5배” 라고 애널리스트들에게 밝히기도 했다.




몸매 관리 : 운동광으로 철인 3종경기도 참가하고 있는 고스키가 존슨 앤드 존슨에서 스핀 수업을 듣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회사의 기업문화 전환 대부분은 고스키가 CEO에 오르기 전 폴 스토펠스 Paul Stoffels와 함께 시작됐다. 스토펠스

가 회사의 제약 부문 연구개발 글로벌 책임자에 발탁된 2009년, 그가 물려 받은 사업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특허 만료 때문에 관련 사업부문 매출 수십억 달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는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완전히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어느 정도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기 위해 싸우는 것이 전부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사업부문에 살려낼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약 부문은 다른 부문만큼이나 ‘콩가루 조직’이었다. 약품 개발에 대한 존슨 앤드 존슨의 자가처방식 접근법은 ‘수 많은 시도(many bets)’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닥치는 대로 하는 식이었다. 서로 다른 7개의 연구개발 조직은 각각이 완전한 고립 속에 운영되고 있었다. 여러 조직이 동일한 약품을 목표로 각자가 개발을 추진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임상 및 규제 절차를 관리하는 데 각각의 자체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들에겐 공통의 사명감도 없었다. 직원들이 자기가 속한 자회사와 자신을 자랑스럽게 동일시 할 뿐이었다. ‘센토코 맨(Centocor person)’이나 ‘얀센 맨(Janssen person)’은 있었지만 ‘존슨 앤드 존슨 맨’은 없었다.

스토펠스의 첫 번째 행보는 자신이 관리하는 부서들을 얀센 연구개발(Janssen Research and Development)로 단일화하는 일이었다. 이 새로운 총괄 조직은 11개의 질병 상태를 표적으로 하는 5개의 치료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후 뼈아픈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존슨 앤드 존슨 글로벌 인력의 거의 7%가 일자리를 잃었다. 해당 사업부문 25개 시설 중 12개가 문을 닫았고, 거의 200개에 달하는 프로젝트들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사업의 뚜렷한 목표와 단일한 운영 모델이 생길 수 있었다.

이 새 조직은 공조화가 매우 잘 이뤄진 시스템과 최적화된 개발절차를 갖추고 있었다. 음악가이기도 한 스토펠스는 이를 아첼레란도 Accelerando라고 부르고 있다. 이 모델 하에선 개발 노력이 절대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 각국의 팀들-중국의 통계직원, 인도의 데이터 관리직원, 유럽의 규제 관련 직원 등-이 밤낮없이 일하며 약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량생산 방식(assembly-line approach) 덕분에 개발 소요 기간이 몇 개월, 어떤 경우엔 몇 년이나 줄어들기도 했다. 스토펠스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회사의 미 식약청 신청서 제출 방식에 초점을 맞춰-그는 “우리는 단지 자원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 시간을 컨트롤했다”고 설명했다-한 달 동안 팀 하나를 호텔에 모아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고 2개월의 기간을 더 단축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존슨 앤드 존슨의 혁신적인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다자렉스 Darzalex가 39개월 만에-약품 개발 연구를 진행하는 터프츠 센터(Tufts Center for the Study of Drug Development)에 따르면, 일반적인 종양 약품 개발에 비해 몇 년이나 기간이 단축됐다-1단계에서 임상단계까지 거쳤고, 승인 하루 만에 시장에 출시될 수 있었다.

골칫거리였던 존슨 앤드 존슨의 제약 사업부문은 2009년 이후 ‘효자’가 되었다. 그 해 바닥을 쳤던 매출은 40% 성장해 2015년 310억 달러를 기록했고, 사내에서 가장 거대한 사업부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얀센도 월등히 앞선 실적을 달성해 IDEA 파마 IDEA Pharma의 생산성 혁신 지수(Productive Innovation Index)에서 4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제약 혁신 컨설턴트 버나드 무노스 Bernard Munos는 “얀센은 10년간 17개의 약품 승인을 따내며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며 “그 어떤 기업도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업계 평균은 1년에 0.8개다.

그럼에도 스토펠스는 계획보다 훨씬 더 나아갔다. 그는 회사의 약품 개발 절차를 혁신했다. 연구개발과 탐색개발(search and development), 초청개발(invitation and development)을 통합했다. 존슨 앤드 존슨은 현재 신약 후보가 회사 내부에서 발견되든, 자사 얀센 연구자들에 의해 발견되든, 외부 기업가 및 과학자에 의해 발견되든 개의치 않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생체기술 클러스터-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Cambridge, 캘리포니아 주 멘로파크 Menlo Park, 런던, 상하이-에 4개의 혁신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곳은 과학 분야 기업가들이 존슨 앤드 존슨의 자체 약품 및 기술 스카우트들과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이 센터들은 전문가들과 신생기업 선구자들이 참여하는 정기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거나 방문을 하는 식으로 모든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규제 전문가나 가능성 있는 투자 파트너를 소개하는 등 존슨 앤드 존슨을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하고, 피드백도 제공하고 있다.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 기술 창업가 제프 칼카그노 Jeff Calcagno는 현재 멘로 파크에 위치한 존슨 앤드 존슨의 혁신 센터에서 뉴 벤처스 New Ventures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노드스톰 백화점 수준의 고객 서비스를 원한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그런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다”며 “그들은 대기업이 자신들을 날려 버리는 일에 익숙하다”고 지적했다.

존슨 앤드 존슨의 세심한 특별 서비스(white-glove touch)는 계약협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회사의 최고과학책임자를 맡고 있는 스토펠스는 생체기술기업(3개의 주요 에이즈 약품을 개발했다)을 설립한 이력이 있다. 제약업체들이 계약협상을 할 때 미리 정해진 융통성 없는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개별 협력사들이 다양한 형태의 맞춤형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컨대 존슨 앤드 존슨이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특정 실험에 자금을 투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융통성을 발휘하면 존슨 앤드 존슨은 기업들과 더 이른 시기에 좀 더 편리하게 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리스크는 줄이고 관계는 더욱 탄탄하게 구축하는 전략이다. 존슨 앤드 존슨은 2013~2015년 자사 센터들을 통해 3,400개 이상의 기회를 검토했고, 그 중 약 200건에 대해선 계약까지 체결했다.

그러나 더욱 급진적인 움직임은 존슨 앤드 존슨이 제이랩스 JLABS라 불리는 미국과 캐나다 내 생체기술 인큐베이터 6곳에서 진행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회사 대표들은 이곳에서 생명과학 신생업체들이 성공하도록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 업체들에게 존슨 앤드 존슨 과학자를 소개해주거나, 자사의 복합도서관을 개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업 모델’에서 회사가 되돌려 받는 건 아무 것도 없다(명목상 임대료를 받을 뿐이다). 신생업체들은 이곳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그냥 떠날 수 있다. 이들은 존슨 앤드 존슨의 경쟁업체들까지 포함한 투자업체들을 초대해 협의를 진행할 수도 있다. 함정에 빠질 만한 조건도 달려있지 않다.

겉보기에 자선사업처럼 보이는 행보 때문에 초기에는 지켜보는 이들 중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도, 무시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스토펠스의 비전에는 회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관계 속에-그리고 혁신가들의 공동체 안에-존재한다. 결국 거기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제이랩스는 현재 140개 이상의 회사를 위해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입주를 기다리는 사업들이 있다. 제이랩스가 만든 신데렐라 스토리 중 하나는 아르크투르스 Arcturus다. 설립 3년을 맞은 이 생체기술 업체는 2013년 직장을 그만둔 2명의 제약분야 거물들이 5만 달러의 자금을 출연해 시작한 기업이다. 희귀 질병 치료를 위한 RNA 기반 치료법 개발이 그들의 목표였다. 자산도 기술도 개발 중인 약품도 없던 이 업체는 2년 반 후 거의 2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하나는 존슨 앤드 존슨을 위해 B형 간염 약품을 개발하는 2,400억 달러 가치의 사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른 기업과의 사업이었다). 제이랩스 대표 멀린다 릭터 Melinda Richter는 “생명 과학 분야에 기술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그게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아르크투르스의 공동설립자 조지프 페인 Joseph Payne은 제이랩스가 과학의 진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존슨 앤드 존슨에 득이 되는 전략인지에 대해선 아직 확신이 없다. 그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들 덕분에 회사들은 자금을 유치하고, 과학 연구를 놀라운 수준까지 끌어 올리고, 제이랩스 기업들과 계약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은 결국 수익을 내고 모든 혁신을 상업화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의 경쟁사가 성과를 낚아채고는 기술을 검증해줘 고맙다고 말하게 될까? 그것이 정말 중대한 문제다.”

물론 맞는 말이다. 불확실한 사업 모델을 지닌 급진적인 전략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덩치가 커지고 있는 과거 스타일의 대기업에서 그 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ERIKA FRY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