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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기동물센터 이야기⑦] 남겨진 유기견들은 말이 없었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가 되면 제주유기동물센터는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직원들은 고압세척기로 대형견사를 쓸어내리고, 자원봉사자들은 분양동과 고양이동을 맡아 청소하기 시작한다.

처음 센터를 방문한 봉사자들은 지난밤의 화려한 전적(?)에 기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방균복(최근 가슴장화로 변경)이 강아지들의 발자국으로 더러워지기 시작하면 더러움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청소만이라도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물을 걷어내고, 물을 뿌리고, 습식 청소기로 이를 빨아들이는데 보통 한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제주유기동물센터 전경. / 사진=최상진 기자




본격적인 분양 준비는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오늘은 어떤 녀석이 분양 가능성이 높은지 계산한다. 순서에 대한 판단이 서면 목욕을 시킨다. 최대한 많은 아이들을 빨리, 구석구석 씻기고 제대로 말려놔야 사람들이 좋아한다. 간혹 숙련되지 않은 봉사자가 강아지 한 마리를 씼기는데 10분을 넘기는걸 보다보면 갑갑해 발을 동동 구른다. 물론 나만 그랬다.

제주유기동물센터의 분양시간은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다. 강아지들은 분양시간이 다가오는걸 안다. 적어도 봉사자들은 그렇게 믿는다. 강아지들은 점심을 먹고 노곤해질 무렵 씻고 광내고 옷까지 입고나면 흥분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봉사자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입양희망자의 편의를 위해 전시용 케이지 안에 들어가면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조용히 앉아 눈만 꿈뻑거리는 아이도, 말 그대로 개처럼 짖는 아이도, 유리문틈으로 손을 내밀고 매달리는 아이도 있다. 이들은 저마다의 스타일로 새 주인이 될 수도 있는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필한다.

사람들이 분양동에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어떤 개가 가장 안짖어요?’다. 다른건 다 대답할 수 있는데 이 질문만은 ‘모르겠다’고 답한다. 보통 시추를 제외하고 개들은 저마다 성격이 제각각이다. 봉사자들은 해당 강아지의 품종에 따른 성격과 센터 내에서 보여준 행동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언급하기를 꺼린다. 막상 집에 가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3일(일) 주말봉사 인원이 많아 강아지들의 가벼운 산책까지 시켜주게 된 은숙이모(가운데)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 / 사진=최상진 기자


한창 분양전문가로 거듭나고 있을 무렵 고정봉사하시는 이모들과 대립했던 일이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아픈 아이의 안락사 문제로, 다른 하나는 입양자의 능력 여부를 두고 벌어졌다.

특히 입양자를 두고 나는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다’며 최대한 많은 아이를 보내야 한다고 했고, 은숙이모는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야 한다’고 맞섰다. 이모가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집에가서 한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시라’고 조언할 때 옆에서 매번 입을 삐죽거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맞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런 의견다툼이 무색하게 입양희망자 중 실제 동물을 입양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절반가량은 만지고 안아주다 돌아선다. 어쩔 수 없는건 모두 잘 안다. 다만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은 확실하지 않다면 하지 말았으면 한다. 유기동물 분양은 예약제가 아니다. 물론 다시 오는 경우도 소수다.

독특한 입양희망자도 많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며 불쌍하다고 우는 아주머니, 자녀에게 ‘봐봐 니가 얘를 키울 수 있겠어 없겠어’라며 겁주고 돌아가는 어머니, 무조건 새끼 품종견을 달라던 부부, 며칠 전 키우던 개를 잃어버렸다며 다른 개를 입양하겠다는 청년. 7개월간 분양시간만큼은 때때로 서비스업의 현실을 체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입양희망자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 안타까웠던 포인터. / 사진=최상진 기자


가장 안타까운 일은 강아지 한 마리를 놓고 동시에 여러 입양희망자가 나타날 때였다. 센터에서는 이런 경우 제비뽑기를 통해 입양자를 정한다.

여름날 새끼 포인터를 두고 두 가족이 신경전을 벌이던 일은 이따금씩 떠오른다. 첫 번째로 분양동에 들어건 가족이 포인터를 데려가겠다고 말하고는 고양이동을 둘러보겠다며 분양동을 나갔다. 제비뽑기 규정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들도 봉사자들도 또다른 입양희망자가 나타나리라는 생각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상에서 해당 강아지를 보고 왔다는 모녀가 분양동을 찾았다. 첫 번째 가족을 찾느라 쩔쩔 매는 사이 제비뽑기를 할 번호표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첫번째 가족은 제비뽑기를 거부하며 먼저 데려가겠다고 말한 사람이 입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족을 어떻게 제비뽑기로 데려가냐’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지만 규칙은 지켜져여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첫 번째 가족이 포기하고 화를 내며 센터를 떠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억울함 가득한 화가 안타까웠다. 결국 포인터는 말 없고 예쁜 꼬마아가씨네 집으로 갔다.

분양시간이 끝나면 남은 강아지들은 늘 이렇게 앉아 한동안 밖을 내다보고는 한다. / 사진=최상진 기자


분양동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열기가 식으면 아이들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각자 자리를 찾아 누워 오늘을 마감할 준비를 한다. 고작 오후 3시에 모든 일과가 끝나는 셈이다. 봉사자들도 늦으면 4시쯤 센터를 떠난다. 기다림은 길고 반가움은 짧다. 늘 그렇다.

오늘도 두시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제주유기동물센터의 동물들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것이다. 눈빛이 맑거나, 애교가 많거나, 털이 하얗거나, 짖지 않거나, 몸이 작거나, 희귀 품종이거나….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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