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 9일 서울시 강남구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이하 SRT·Super Rapid Train)가 정식으로 개통한다. KTX와 함께 SRT가 운영되면 우리나라 철도 117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쟁 체제’가 도입되는 것이다. SRT와 KTX가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용객들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됐다.
2014년 KTX가 개통된 뒤 12년 만에 또 하나의 고속열차가 등장한다. 12월 9일 정식 개통하는 SRT가 주인공이다. 최고 시속 300km(설계상 최고 속도는 시속 330km)로 달리는 SRT는 서울 강남 수서역을 출발해 부산과 목포를 잇는다. 수서역은 서울 지하철 3호선·분당선 수서역과 지하로 연결된다. 지하철에서 내려 SRT 승강장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SRT는 수서역을 출발해 경기도 화성 동탄역과 평택 지제역을 잇는 수도권고속철도 위를 달린 뒤 평택부터는 기존 KTX 노선(경부선, 호남선)을 함께 쓴다. 수도권고속철도는 SRT를 위해 새로 만들었다. 61.1km 구간 가운데 82%가 지하에 뚫은 율현터널(수서∼동탄)을 관통한다.
SRT는 그동안 KTX가 책임져 온 고속철도 수송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SRT를 운영하는 ㈜SR은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의 출자회사다. 전체 지분의 41%를 코레일이 보유하고 있고, IBK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이 각각 15%와 12.5%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31.5%는 연기금인 사학연금이 보유하고 있다.
SRT는 ‘형님’인 KTX를 뛰어넘으려 한다.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노선이 겹치기 때문이다. ㈜SR 관계자는 “경부선 40회, 호남선 20회 등 편도 기준 하루 60회씩 운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은 고객 이탈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코레일은 SRT가 개통하는 12월부터 ‘용산역 출발·도착 경부선 KTX’와 ‘서울역 출발·도착 호남선 KTX’를 각각 24회씩 운행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경부선 KTX는 서울역에서만, 호남선 KTX는 용산역에서만 이용이 가능했다.
SRT가 KTX에 큰 위협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접근성에 있다. SRT 출발점인 수서역은 서울 지하철 3호선·분당선의 수서역과 지하통로로 연결돼 있다. 서울 강남·강동 지역과 경기 동남부 주민들의 경우 지금처럼 서울역이나 용산역으로 올라가는 번거로움 없이 부산, 목포로 갈 수 있다. SRT는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에 비해 부산행은 6분, 목포행은 14분 단축된다. 거주지에서 역까지 닿는 시내 이동 거리를 감안하면 서울 강남과 강동, 경기 동남부 주민의 실제 소요 시간은 더 줄어든다. SRT가 기존 KTX 이용자들을 대거 뺏어올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코레일도 맞불을 놨다. 코레일 관계자는 “서울 사당역과 KTX 광명역을 오가는 셔틀버스(요금 2,400원 수준)를 향후 2~3개월 안에 운영할 계획”이라며 “이 버스를 타면 광명역까지 15~20분 만에 도착해 서울 강남권 지역 주민들이 광명역에서 KTX를 이용하기에 편리해진다”고 말했다.
SRT와 KTX는 요금 경쟁에도 돌입했다. SRT는 고객 선점을 위해 KTX보다 평균 10% 정도 저렴하게 요금을 책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평일 수서∼부산 간 요금은 5만2,600원, 수서~목포 간은 4만6,500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인터넷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앱으로 승차권을 구입할 경우 1% 추가 할인(주말·공휴일 제외)을 받을 수 있고 중간 정차역이 늘어날 때마다 할인을 해주는 ‘정차역 할인제’ 등도 시행할 계획이다.
이에 맞선 코레일은 최근 3년 만에 마일리지 제도를 재도입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KTX는 지난 11월 11일부터 KTX 운임의 5%를 적립해주는 마일리지 제도를 시행했다. 평소 승차율이 50% 미만인 열차에 탑승할 경우 마일리지를 10%까지 적립하고 코레일의 선불형 교통카드인 ‘레일플러스 카드’로 결제하면 1% 추가 적립도 가능하다. 코레일은 인터넷 특가 할인폭도 10~30%로 대폭 확대한다고도 밝혔다. 승차율에 따라 할인율이 달리 적용되는 상품인 인터넷 특가의 기존 할인율은 5~20%였다.
넓은 좌석 간격을 비롯한 편리한 열차 내 환경은 SRT가 앞선다. SRT는 좌석 무릎 공간이 KTX-산천보다 57mm, KTX보다 75mm 길다. 또 인체공학 설계를 적용한 ‘슬림핏 시트’를 전 좌석에 적용하고 전원 콘센트와 시력 보호를 위한 미색 LED 조명을 설치했다. 특실에는 국산 철도차량 최초로 덮개가 있는 항공기식 밀폐형 선반을 장착하고 100MB(메가바이트) 용량의 무선인터넷(일반실 50MB)을 제공한다. 아울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휴대전화로 승무원을 호출하고, 열차 출발·도착 알림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열과 연기를 동시에 감지하는 화재경보장치를 도입하는 등 안전설비도 대폭 보강됐다.
지난 2013년 철도노조는 “수서발 고속철 별도 회사 설립은 철도 민영화의 시작”이라고 반발하며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SRT와 KTX가 경쟁을 벌이면서 이용객들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됐다. 이것이 바로 경쟁의 긍정적인 효과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