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27일 “북한은 오는 2017년 말까지 핵 개발을 완성, 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 새 행정부와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고위급 탈북자가 기자회견을 한 것은 지난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이후 19년 만이다.
태 전 공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은 한국의 대선과 미국 새 행정부 출범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해 이런 목표를 세웠다”며 “지금까지 한미 정부가 유지한 ‘선(先)비핵화 후(後)대화’의 틀을 깨고 새로 집권하는 한미 정부와 북한이 핵 동결을 전제로 제재 해제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등 북한의 요구사항과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파란색 셔츠와 푸른색 계열 넥타이 차림의 태 전 공사는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등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사전신청한 기자들에 한해 일일이 확인작업을 거친 뒤 입장이 가능했다. 다소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질문과 답이 오갔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의 핵 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의 문제는 인센티브의 양이나 질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김정은이 있는 한 절대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1조달러, 10조달러를 줘도 북한은 핵 포기를 절대로 안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김정은 정권이 상당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며 “(대북제재가) 김정은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놨다”고 진단했다. 평양 려명거리 완성과 개성공단·나선지대 같은 경제특구 개발 등 김정은이 목표했던 주요 정책들이 대북제재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대북제재 효과는 숫자보다 사람들의 심리와 정책을 놓고 평가해야 한다”며 “북한 사람은 대북제재가 심화되면서 상당한 동요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영국 근무 당시 느꼈던 제재 효과에 대해 “북한의 가장 큰 외화벌이는 보험업과 해운업인데 대북제재로 관련 자금줄이 완전히 막혔다”며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각된 것과 관련해 “북한 외교 전반을 가장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게 바로 인권 문제”라고 털어놓았다.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를 논의할수록 북한이 수세에 몰린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집권 5년 차에 들어선 현재까지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이 집권하게 된 명분과 정체성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은 오늘까지도 생모의 이름조차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주민들에게 자기 정체성과 명분을 공개하지 못하는 김정은 백두혈통의 허구성”이라고 꼬집었다. 또 인터넷을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보고 북한은 정보 유입을 막기 위해 인터넷 접근 자체를 막으려 하지만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과 중국 관계에 대해서는 “중국은 북한을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한 완충지대로 간주한다”면서도 “만약 중국이 결심만 하면 북한 정권을 끝내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의 중국 방문과 전격 북미 대화 성사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김정은 정권이 끝날 경우 북한 체제도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며 “고위 엘리트들도 이제는 김씨 일가에 대한 운명공동체 인식이 없어졌고 북한의 세습 통치에 미래가 없다는 데 공감한다”고 강조했다.
태 전 공사는 한국에 와서 탈북민 생활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면서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하는 탈북민 여성을 다룬 드라마를 언급하기도 했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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