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한’ 자도 안 꺼내고 있지 않느냐. 미국의 우선순위는 우리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할 당시 우리 정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트럼프가 취임사에서 대외통상 정책과 관련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재협상 거부 시 폐기’ 방침을 선언했다. 선거 당시 ‘재앙’이라고 불렀던 한미 FTA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재협상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취임 후에도 연일 무역과 관련해 중국 때리기에 나서는 동시에 주요 우방인 우리나라는 더 가까이 두면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번복할 수 없는 수준까지 끌어들였다.
정부와 외교계에서는 “트럼프 정부는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경제적인 이익보다는 안보와 외교적 차원에서 보고 있다”며 “한미 FTA 재협상과 환율조작국 지정 등 경제적 압박 카드를 일찍 꺼내 들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퍼졌다.
하지만 트럼프는 한 달여 만에 곧바로 이빨을 드러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내놓은 ‘대통령의 2017년 무역정책 의제’ 보고서에서 한미 FTA로 대한 무역적자가 두 배 이상 늘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임기를 시작한 후 정부 차원에서 한미 FTA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 가운데 어느 한쪽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착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안보와 경제 모두 이익을 취하겠다는 자세다.
한미 FTA 발효 당시 우리 정부가 예상한 연평균(15년간) 대미 수출 증가액은 13억달러 수준이었지만 실제로는 92억달러(발효 전과 2012~2016년 평균액의 차이)에 달했다. 대미 평균 흑자액도 예상했던 1억4,000만달러의 7배가 넘는 10달러 수준이다. 흑자가 늘어난 만큼 미국은 이를 교정하는 움직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미 FTA가 곧바로 재협상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NAFTA처럼 명확하게 재협상(renegotiations )이라는 명시적 단어는 쓰지 않고 한미 FTA를 면밀히 살펴보자(a major review)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는 한미 FTA 재협상으로 미국에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언급을 통해 한국의 반응을 보고 자국이 취할 수 있는 이익을 가늠해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화살은 한미 FTA의 재협상이 아닌 ‘완전 이행’을 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욱이 자동차는 5년에 걸쳐 개방이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손댈 게 없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은 “미국의 의도는 한미 FTA 때 합의했다가 이행이 잘 안 되는 분야를 더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며 “자국 기업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데 겪는 제약들을 없애겠다는 신호 정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한미 FTA 발효 후 의약품의 가격을 제한하는 ‘실거래가제도’ 등 자국 기업들의 국내 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를 없애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 로펌의 지분을 49%로 제한한 것과 자동차 좌석의 크기를 규제한 것도 불만이다. 여기에 구글의 지도 반출 사례에서 보듯 우리 정부의 데이터 공개에 대한 투명성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우리나라의 개방률이 100%에 달하는 농식품 분야에서는 공세적 이익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FTA 발효 전인 2011년 6억5,300만달러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수입액이 10억3,500만달러로 뛰었다. 한미 양국은 협상 당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되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면 전면 수입도 논의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는 호주산을 제치고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우리 정부가 위생검역(SPS) 등으로 수입을 막고 있는 감귤 등의 수입 규제 철폐를 요구할 수도 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경제학)은 “미국이 정말 재협상을 하려면 좀 더 거친 표현을 썼을 것”이라며 “속내는 한미 FTA 때 합의한 사안을 더 이행하라는 압박일 것”이라고 말했다./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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