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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법인세 등 증세상황 아냐…비과세·감면제 정비 선행을

복지지출 감안해도 향후 5년간 재정압박 크지 않아

올해 추경 불가피...확장재정 하되 성장잠재력 높일 수 있는 곳에 투입해야

다만 중장기 재정건전성 담보하는 안전장치 병행하는 '투트랙' 재정정책 필요...앞문으로는 호랑이가 들어오고 뒷문으로 들어오는 승냥이도 못 막아 재정 건전성이 급속히 훼손

사회보험 개혁 못하면 조세부담 감당 못할 정도로 올라갈 수 있어

한국은 조선시대부터 세금 저부담 국가...국제비교 더불어 역사도 국민 DNA도 염두해야

대담=김정곤 경제부 차장 mckids@sedaily.com

“정치권에서 법인세율 인상 등 증세를 주장하지만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당장 명목세율을 인상할 때는 아닙니다. 중장기적으로 증세를 추진할 때도 정치논리보다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세금·재정 문제를 분석하는 국책연구기관이다. 박형수 조세연 원장은 증세로 나라 곳간을 보충해야 할 시급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세수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경제 여건이 나빠 오히려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깐깐한 재정학자조차 인정할 정도로 현재 증세 필요성은 낮다는 의미로 조세정책의 정치화를 차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19일 박 원장은 세종시 조세연 본원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등 증세를 당장 시행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세금체계 변화는 완만해야 하는데 최근 몇 년간 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이 축소된 상황에서 법인세 명목세율까지 올라가면 기업의 부담이 과도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빌미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더욱 축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박 원장은 “앞으로 5년간 (복지지출 등에 따른) 재정 압박, 국가부채 증가 속도 등은 세금 부담을 늘려야 할 정도로 크거나 빠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명목세율 인상을 통한 증세 대신 비과세·감면제도를 정비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추진해 성과도 냈지만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조세연 분석 결과 지난 2011년 현재 탈루 세금은 최대 26조8,394억원으로 근로소득세(18조 8,000억원)보다 42.8%나 많다. 탈루율은 15.1%를 기록했다. 국민이 기한 내에 내야 할 세금의 약 15%가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박 원장은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부가세 탈루에서 세수를 확충할 수 있다고 봤다. 조세연은 부가세 탈루 금액이 2011년 5조5,755억원, 탈루율은 19.1%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국민이 상품·서비스값과 이에 붙는 부가세를 내면 자영업자는 부가세만 따로 모아 국세청에 납부한다. 하지만 고의로 폐업하거나 축소 신고해 탈루하는 경우가 많다.

박 원장은 “국민이 낸 세금을 고소득 자영업자가 탈루한 셈”이라며 “조세 정의의 문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보완방법 중 하나로 ‘부가세 신용카드 매입자납부제도’ 실시를 제안했다. 신용카드 회사가 부가세를 국세청에 내고 나머지를 자영업자에게 지급해 탈루를 막자는 것이다. 현재 철, 금, 구리 스크랩 등은 매입자가 부가세를 국가에 직접 내는 매입자납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박 원장은 “시스템 구축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현재 국세청은 제도 시행에 긍정적인 반면 기획재정부는 중립적인 상황이다.

당분간 세수가 잘 들어올 것이라는 점도 명목세율 인상의 필요성이 낮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는 “현행 세제가 유지된다고 해도 당분간 국세수입 증가율이 명목 경제성장률과 비슷하거나 다소 높아 국민들의 조세부담률이 소폭이나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세 및 지방세 규모는 지난해 19.4%로 추정돼 2007년(19.6%) 이후 가장 높다. 최근 3~4년 비과세·감면 조치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입기반 확충 노력과 정부 및 정치권의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및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는 게 근거다.

중장기적으로 명목세율 인상으로 증세를 추진할 때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어느 계층이 세금을 얼마 부담하는지 투명한 정보공개가 있어야 하며 세율 인상은 이런 조치들을 다 한 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치논리를 줄이고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경제주체들이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임기응변식 증세보다 원칙을 세우고 국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근 경기 둔화로 올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박 원장도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든 장치를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려운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올해 추경 편성은 불가피하다”면서도 “국가 부채 총량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등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관리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중장기 재정 건전성 관리) 후 앞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추경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맞아야 한다는 것으로 잘못하다가는 앞문으로는 호랑이가 들어오고 뒷문으로 들어오는 승냥이도 못 막아 재정 건전성이 급속히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장기적 재정 여력을 확보하고 단기·중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과 사회통합에 필요한 재정투자를 선별 유지·강화하는 이른바 ‘이원적 재정정책(Intertemporal Fiscal Policy)’, 투트랙 재정정책이다.

세부적으로 우선 뒷문 단속이다. 수단으로는 ‘재정건전화법’ 제정이 1순위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국가부채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GDP 대비 국가부채가 45%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채무준칙(5년마다 재검토 가능), 매년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를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수지준칙 등을 담은 재정건전화법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돼 있다. 현재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는 40% 내외다.

박 원장은 “장기적인 시계에서 지속 불가능한 사회보험의 개선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적립금이 고갈돼 현재 국민 세금으로 부족분을 메우고 있다. 기재부 추계에 따르면 장기요양보험은 오는 2020년, 건강보험은 2023년에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박 원장은 “사회보험을 일반재정에서 보전한다면 조세부담이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사회보험 스스로 보험 체계 내에서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이 같은 조치가 실행되지 않으면 국가부채가 GDP 대비 240%에 달하는 일본과 비슷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재정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 재정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반감, 급속한 인구 고령화, 저금리에 따른 국채발행 부담 저하 등에서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박 원장은 금리 인하 등 금융정책이 미국의 금리 인상, 효과 저하 등으로 한계에 달했고 구조개혁, 신성장동력, 취약계층 지원 등 시급한 경제현안이 많아 올해 추경 편성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정부 예산은 400조7,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0.6%(지난해 추경 예산 대비)밖에 늘지 않았다. 경제가 팽창하는 속도(약 4%·경상성장률)보다 못해 한은·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보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주문하는 실정이다.

박 원장은 다만 재정을 풀 때는 성장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곳과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뚝뚝 떨어지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풀어야지, 단기적 성과가 나는 곳에만 풀면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일본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박 원장은 한국의 조세부담, 복지 수준에 대해 한국 역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학자들이 북유럽 등 국제비교를 통해 한국도 중부담·중복지 혹은 고부담·고복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DNA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조선시대 때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9%로 분석된다”며 “당시 일본은 10% 후반, 유럽이 20%대였다”고 소개했다. 박 원장은 “한국인들은 세금을 덜 내고 덜 돌려받자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다”며 “현재 조세부담률이 낮고 복지 혜택이 유럽 등에 비해 낮은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리=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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