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이냐, 비혼이냐’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만큼이나 결혼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미혼으로 살고 있는 30대 남자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지난해 통계청에서 밝힌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2.6세. 한국 사회에서 80년대 중반에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가고 서른 즈음에 취업해 이제 평균적으로 결혼할 시기에 와있는 이들을 만났다. 결혼할 의사도 크게 없고 그렇다고 적극적 비혼도 아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본에서는 이미 2010년 일본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서 ‘평생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답한 적극적인 비혼주의 남성이 10.4%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대한민국 평균 남성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미혼과 비혼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들의 공통의 고민을 찾아보기로 했다. 실명 대신 닉네임 이태원프리덤, 화려한싱글25시, 비오면술먹자, 와꾸는정용진 네 명의 취중진담을 옮겨본다.
#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은 ?
비오면술먹자(술먹) : 있나? (긴 침묵) 사실 주변에 결혼한 형들 얘기 들어보면 다 “너는 하지 마라”다. 할 거면 “아주아주 늦게 하라”는 거고.
이태원프리덤(태원) : 취업 준비할 때 맨날 술 사주던 불알친구가 있는데 이제 내가 취업해서 술도 많이 사주려고 했는데 그때 딱 결혼하더라. 뺏기는 느낌이 이건가 싶었다. 이제는 술 사줄 수 있는데 만나질 못하니…….
술먹 : 형들이 그러더라 “더 이상은 못 논다고 생각할 때 더 놀라”고… 할 생각 있으면 최대한 늦게 하라고. 친한 형의 와이프가 의심이 너무 심해서 남자들끼리만 술 먹는 거 확인시켜주려고 술자리 내내 스마트폰 영상통화 켜놓은 적도 있다. 학교 다닐 때 되게 멋있는 형이었는데…
화려한싱글25시(25시) 지금은 친구들 하나둘씩 다 유부남 돼서 애기 낳고 그렇지 않냐. 이제 놀 수 있는 사람들이 없으니 외로워질 거 같다. 근데 딱 20년? 아니 30년만 지나면 사별을 하든 이혼을 하든 애를 대학 보냈든 다 돌아온다더라. 동호회를 하든 바를 가든 그만큼만 딱 버티면 친구들은 돌아오게 돼 있다!!
30년은 혼자 화려한 싱글을 즐길 것처럼 자신있게 말하던 25시가 잠시 멈칫했다.
25시 : 얼마 전에 위가 쥐어짜듯 아파서 119로 전화했다가 목 밖으로 소리가 안 나와서 결국 부르지도 못하고 혼자 거실에 머리 박고 밤새 앓았다.
‘이렇게 혼자 살다가 아프면 나 아무도 모른 채로 죽는 건가…’ 싶더라. 오싹했다.
늙고 병들었을 때 그래도 옆에 누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결혼해야 하나 싶었다
태원 :아니. 아파도 딱히 결혼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나도 주말에 술 먹고 체했는지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화장실에다가 계속 비우면서 그냥 죽는 줄 알았지.
#지금 사는 게 편하다
네 남자는 지금 삶에 크게 만족하고 있는 걸까. 사실 그렇게 만족하는 것도 아니란다. 대신 지금이 편하다는 게 중요하단다.
술 마시고 싶을 때 불러낼 수 있는 친구들, 동생들 있고 끼니는 대충 때워도 가끔 기분 좋으면 거하게 술도 쏜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다. 주말에는 책도 읽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다. 주말에 밥 먹을 때 가끔 외로울 때가 있지만 ‘불금’ 보내고 나면 외로움이고 뭐고 잠자기 바쁘다.
태원 : 회사 들어오고 3년 넘게 자취하다 보니까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하다. 평일에는 일하고 금요일에 진탕 술 마시고 나면 토요일에는 자느라 다 간다. 일요일에는 근무 없으면 책 보고 영화본다. 이제 누가 있으면 어색할 것 같다.
25시 : 얼마 전에 자다가 여자 목소리가 들려서 깼는데 ‘시리(Siri)’였다. 공포였다. 결혼했는데 내 옆에 누가 있으면 그런 느낌은 아니겠지?
술먹 : 무조건 휴일 전날은 술 먹는 날이다. 여자친구랑도 절대 안 만난다. 여자친구는 내 귀가 시간을 모른다. 결혼하면 그럴 수는 없을거다……·.
술먹이 소주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25시 : 결혼하면 심리적 안정감 얘기하는데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더라도 하나도 채워질 수 없다. 주변 보면 결혼해도 더 외롭다.
와이프 때문에 외로워지고 아이 생기면 아내가 사랑의 대상으로 보일까 싶기도 하다.
와꾸는정용진(와꾸) : 친구들 보면 결혼하는 순간 와이프 눈치 보느라 나오지도 못 한다. 다 잡혀 살더라. 가끔 여자들 앞에서 결혼 추천한다는 남자들 있으면 이미지 관리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말 안 나온다.
# 집은 남자가 다 해와야 하는데 왜 집안일은 반반이야
최근에 결혼 준비하다가 돈 문제로 크게 싸워 결혼이 파토위기라는 친구 얘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태원 : 내가 혼자 살면 코딱지만한 방에 반지하에 살든 월세를 내든 살면 된다. 같이 살면 더 좋은 데로 가야 하고 그런 것 자체가 부담이다. 지금 서울 평균 전세값이 4억이다. 왜 꼭 아파트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와꾸 : 나도 사실 집 욕심이 없다. 나중에 강남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저 깨끗한 집에만 살고 싶다. 근데 왜 집 값은 남자가 부담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집안일은 반반하는 시대인데 왜 집 값은 남자가 전부를 부담해야 하나. 그렇다고 반지하 빌라 전세 구해놓으면 여자가 만족할까.
태원 : 솔직히 결혼 준비를 한다면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 싫은데 우리 부모님 원망하게 될 것 같다. 이런 형태의 결혼식 자체가 싫다.
와꾸 : 솔직히 몇억씩 장가갈 때 도와줄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형제라도 있으면 더 큰 일이다. 결혼하려면 빚을 내도 부모님 도움은 받을 수 없다.
고등학교 때 사교육 많이 받을 땐 월 200까지도 들어간 적이 있다. 부모님이 교육비 때문에 노후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집값이라니……. 이렇게까지 하면서 결혼해야 하나 싶다
태원 :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부담스러운 게 두 집안이 깊게 엮이는 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혼 보다 결혼이 나은 게 뭐가 있나
남자가 집을 마련한다는 기존의 공식이 결국 내가 마련한 집으로 나의 능력과 가치가 정해지는 것 같아 불편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간혹 여자친구가 ‘결혼을 잘했다’는 친구 사례를 들며 남자가 집을 구해온 이야기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다면 내가 특별한 수저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자식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우리 세대 이상으로 힘들게 살아야 할 게 불 보듯 눈에 보인다.
25시 : 우리 친구들만 봐도 다들 혼자사는 게 익숙하다. 자취를 하거나 혼자 살아본 경험이 많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혼자서도 재밌게 놀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실제로 그의 집에 가면 전자드럼부터 녹음 기기, 장난감 드론, 직접 담근 술까지 없는 게 없다. 최근에는 위닝에 빠져서 동네에 위닝하는 친구만 있으면 더 바랄 낙이 없을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주7일 술친구가 있다)
태원 : 결혼하면 오히려 내 돈이 없어지는 느낌이지 않냐. 혼자 있으면 내가 번 돈 내가 다 쓰는데 결혼하면 집값 모으고 양육비 마련하고 현재가 사라진다.
와꾸 : 결혼한 남자들 보면 연봉 높은 대기업 다녀도 용돈은 30만원씩 받아서 빠듯하게 생활하는 것도 봤다.
25시 : 예전에는 혼자 살면 홀애비라고 했는데 요즘은 티 하나도 안 난다. 혼자 사는 사람이 관리도 잘하는 것 같다. 혼자 살아야 하는 건가
술자리가 무르익자 네 남자의 대화도 살짝(?) 대담해진다.
술먹 : 근데 솔직히 그것도 중요하지 않냐? 속. 궁. 합 막상 결혼했는데 안 맞으면 어떡해.
평생 한 사람이랑 해야 하는데...이게 진짜 중요한 거다.
25시 : 그렇긴하지. 근데 과연 평생 한 사람이랑만...이라. 음...
네 남자는 말 없이 소주잔을 거푸 들이켰다. /잠재적비혼주의기자 sednew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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