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공룡 기업 ‘넷플릭스(Netflix)’가 지난해 초 한국에 상륙하자, 동종 서비스를 제공해온 국내 업체들은 넷플릭스의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 서비스의 강점이 도드라지면서 성장세가 나타났다. 스타트업 ‘프로그램스’도 그 중 하나다. 한 발 앞선 도전으로 스타트업에선 보기 드문 성장세를 과시한 프로그램스의 박태훈 대표를 만나 비즈니스 이야기를 들어 봤다.
“3년 만에 뵙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지난 2월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프로그램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태훈 대표와 기자는 구면이었다. 포춘코리아는 지난 2015년 1월 ‘스타트업, 생존의 비결’이라는 기획기사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당시 스타트업 관련 대표 CEO 3명과 함께 일종의 ‘좌담회’를 진행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박 대표였다.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3년이 지났지만 박 대표의 얼굴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국내 톱플레이어 수준으로 서비스를 성장시켰다는 자신감까지 배어있었다.
프로그램스는 영화, 드라마 같은 동영상 콘텐츠의 개인화 추천 서비스인 ‘왓챠(Watcha)’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Watcha play)’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프로그램스는 ‘왓챠’ 서비스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부터 수년간 박태훈 대표의 머릿속에 떠돌던 아이디어가 집약된 서비스가 바로 왓챠였다. “2003년 카이스트에 입학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관심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뿐이었죠. 주변 친구, 선배, 지인들이 새로운 제품, 서비스, 기술을 만들려고 하면, 기웃거리면서 제가 참여할 만한 먹잇감이 뭐 있나 찾곤 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보니 수많은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떠다니더군요. 그러다 게임회사 넥슨에서 병역특례로 복무를 마친 2007년,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년간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정리해 보았더니 3개의 키워드로 좁혀지더군요. ‘개인화’, ‘자동화’ 그리고 ‘추천’이 그것이었습니다.”
박 대표 자신도 왜 이러한 키워드가 도출됐는지 의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창업의 중심축이 정해진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3개의 키워드를 활용한 사업 아이템 구상에 돌입했다.
해답은 곧바로 도출되었다. 당시엔 개인화와 자동화, 추천이라는 키워드를 한데 묶은 서비스, 즉 개인화자동추천 서비스로 불리는 ‘큐레이션(Curation)’이 이미 활성화 단계에 있었다. 박 대표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기반으로 이를 적용할 분야를 찾았다. 박 대표는 말한다. “서비스 기획과 시장조사를 하던 도중 우연히 진행한 ‘포커스그룹인터뷰(FGI)’에서 제 눈을 번쩍 뜨이게 한 단어를 발견했어요. 바로 ‘영화’였죠. 인터뷰에 참석한 포커스그룹 참여자들은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기 위해 한시간 동안 영화를 검색하는 건 짜증 나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영화는 주요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별점’과 ‘평점’ 같은 추천 서비스가 활성화된 콘텐츠입니다. 저는 영화를 고르려는 사람들에게 큐레이션 기반의 추천서비스를 제공하면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어요.”
박태훈 대표는 곧 프로그램스(Frograms)를 창업하고, 2013년 영화 콘텐츠 추천 서비스인 ‘왓챠’를 선보였다. 왓챠는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수많은 유저들의 영화 평가 별점을 기반으로 사용자가 선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기자가 왓챠에 접속해 평소 즐겨보던 히어로물 영화인 ‘어벤져스’와 ‘스파이더맨’에 높은 별점을 부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왓챠에서는 기자의 별점을 기반으로 성향을 분석해 또 다른 히어로물인 ‘배트맨 vs 슈퍼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을 추천해 화면에 보여준다. 현재 왓챠에 등록된 영화평가 건수는 3억 개를 넘어섰다. 2,000만 건 수준인 포털 영화 평가 건수와 비교하면 무려 15배 이상 많은 수치다.
왓챠의 성장은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주요 벤처캐피털과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왓챠의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본격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박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희에게 새로운 수익 모델에 도전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은 ‘영화 추천에 머물지 말고 직접 영화 콘텐츠를 제공해보라’는 것이었죠. 사실 저도 예전부터 그런 사업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왓챠 서비스가 안착하면서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죠. 망설임 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1월 프로그램스는 영화, 드라마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왓챠플레이’를 론칭했다. 왓챠플레이는 현재 약 2만 5,000여 개의 영화, 드라마 등 동영상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사용자는 한 달간 무료로 이용 한 뒤, 마음에 들 경우 월 4,900원의 정액제로 왓챠플레이 서비스를 무제한 즐길 수 있다. 무료 이용 고객의 유료 회원 전환 비율은 50% 수준을 보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왓챠플레이가 론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공룡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왓챠플레이 뿐 아니라 국내 주요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은 넷플릭스의 파급력를 예의주시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초기 시장 안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국내 동종 서비스 기업들은 넷플릭스로 인해 높아진 세간의 관심을 등에 업고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중 왓챠플레이는 가장 눈에 띄는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박 대표는 크게 ▲월정액 서비스 ▲다양한 콘텐츠 확보를 성장의 중심 키워드로 꼽고 있다.
“대부분의 경쟁 서비스들은 콘텐츠 당 가격을 책정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싸게는 500원부터 최신 영화 1만 원까지 판매를 하고 있죠. 하지만 왓챠플레이의 월정액 서비스는 단 4,900원입니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한 잔 값이죠. 커피 한 잔 값만 아끼면 수많은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는 겁니다. 콘텐츠의 다양성 역시 저희의 장점 중 하나라 할 수 있어요. 현재 소니, 디즈니를 포함해 국내외 유명 배급사 30여 곳과 콘텐츠 배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우려도 많이 했어요. 작은 스타트업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려는 배급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같은 걱정이었죠. 하지만 실제로 부딪혀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습니다. 왓챠 서비스가 생각보다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죠. ‘왓챠라면 믿고 배급할 수 있다’는 공감대까지 형성돼 있었어요. 그 결과 수월하게 콘텐츠 배급사와의 계약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콘텐츠 수급을 위한 할리우드 유명 배급사와의 논의가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시 1년이 된 왓챠플레이는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왓챠플레이의 지난 1년간 총 누적 시청시간은 902년이다. 한 명의 사용자가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동영상을 시청했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가입자 수는 약 64만 여 명, 가입자 한 명 당 월 평균 왓챠플레이 이용시간은 약 4시간이다.
박태훈 대표는 해외시장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일단 왓챠를 기반으로 현지 사용자의 영화 추천과 별점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 후에 점진적으로 왓챠플레이의 해외 진출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박 대표는 말한다. “지난 2014년 일본 시장에 진출해 지금까지 차곡차곡 현지 사용자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해외 사용자와 국내 사용자의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현지인들의 영화 관람 패턴과 선호도를 파악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일본 외에도 한류 콘텐츠에 관심이 높은 동남아시아 지역 4~5개국 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박 대표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3년 전 만남에서 기자는 박태훈 대표에게 자신의 사업 측면에서 2014년은 어떤 한 해였는지 평가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2014년은 서비스 스타트업에겐 기회의 문이 닫힌 한해’였다고 답했다. 시장에 뿌리 내린 기존 스타트업 외의 신생 스타트업 대부분에겐 어려운 시기였다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박 대표는 2년 여가 흐른 2015~2016년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반적인 생태계는 좀 더 나빠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을 넘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때였습니다. 원활한 서비스 유통과 손익분기점(BEP) 확보라는 거대한 장벽은 일반 스타트업이 넘기엔 너무나 견고했습니다. 다행히도 저희는 숱한 어려움의 파고를 잘 넘고 여기까지 순항을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남모를 고민과 치열한 노력도 있었죠. 지금도 스타트업 생태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고비를 넘고 나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스도 왓챠와 왓챠플레이를 앞세워 꾸준한 성장을 위해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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