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측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합병 찬성을 요구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평가 지표”라는 취지로 주주를 설득했다는 진술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의 공판에서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의 진술 조서를 제시했다. 조서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윤성근 일성신약 대표이사와 김 전 팀장이 나눈 대화내용이 포함됐다. 합병 당시 일성신약은 삼성물산 주식 330만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윤 대표는 김 전 팀장으로부터 “이 부회장이 상속을 통해 경영권을 넘겨받을 경우 재산의 반이 날아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윤 대표는 김 전 팀장이 “이번 합병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매우 중요하다”며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사실상 그룹 내 지주회사가 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전 팀장은 “제 사고 구조와 맞지 않는 내용이다”며 부인했다.
특검 측은 김 전 팀장이 “합병 재추진은 창피해서 못한다며 이번 합병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능력 시험이다”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말하자 김 전 팀장은 이를 시인했다. 김 전 팀장은 “합병 불발 시 이 부회장의 리더십에 상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김 전 팀장이 합병 찬성에 따른 보상을 약속했다고 증언했다. 특검이 진술을 제시하자 김 전 팀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주주로 남아주면 상생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며 부인했다.
특검이 이 같은 조서를 제시하며 삼성 측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합병을 추진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 부회장 측은 “합병은 경영상 판단에 이뤄진 것으로 승계와 무관하다”고 맞섰다. 김 전 팀장이 일성신약 측에 ‘이재용 리더십’을 언급했다는 부분에 대해 “김 전 팀장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며 “이 부회장은 주주 반대와 사회 논란이 커지자 합병 중단 방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일성신약 대표의 특검 진술 내용에 대해선 “삼성과 민사소송 중이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허위진술한 것”이라며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현재 일성신약 측이 낸 합병 무효 확인소송 2심이 진행 중이다.
/조은지 인턴기자 ej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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