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4시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연습실 한가운데 24명의 단원들과 조안무를 맡은 조엘 이프리그가 둘러 앉았다. ‘시간의 나이’ 세 번째 공연 개막일이 엿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70여 분간 이뤄진 리허설을 점검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프리그 조안무가 “이번 무대는 초연(한국), 재연(프랑스) 보다 진화했다”고 평하자 안도의 박수가 쏟아졌다. 단원들도, 작품도 과거를 축적하며 새로운 것을 완성한다는 이른바 ‘시간의 나이’를 먹은 셈이다.
지난해 3월 국내 초연, 6월 프랑스 샤요국립극장 재연을 거치며 국내외 관객의 호응을 얻었던 국립무용단의 대표작 ‘시간의 나이’가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오는 27~2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의 ‘회오리’에 이은 국립무용단의 두 번째 해외 안무가 프로젝트. 국립무용단과 무용 전문극장인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이 공동제작했고 ‘프랑스 국민 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안무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내한이 불발된 몽탈보 감독을 대신해 ‘몽탈보 에르비외 컴퍼니’에서 20년간 동고동락한 이프리그 조안무가 작품을 손질했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주제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1장에서는 전통과 현재, 2장에는 세계 그리고 인류, 3장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데 독무를 추가하고 일부 영상을 교체하며 메시지를 분명하게 했다. 몽탈보 특유의 화려한 색감은 의상과 소품으로 표현하고 무대 위 무용수와 영상 속 무용수가 대화하는 식의 유쾌한 무대도 선보인다.
주목해 볼만한 부분은 2장 ‘여행의 추억’과 3장 ‘포옹’이다. 2장은 ‘하늘에서 본 지구’로 유명한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장편 다큐멘터리 ‘휴먼’의 미공개 영상을 배경으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가난, 무질서 등을 이야기하는데 초연 당시 메시지가 난해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번 무대에서는 인생의 길을 걷는 한 여행자의 여정을 부각하며 김미애 단원이 한 명의 여행자로서 파편적인 기억들을 무대에 흩뿌리는 독무를 펼친다.
한국 무용에 내재된 제의에 대한 욕망을 표현한 3장은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리듬에 맞춰 솔리스트의 독무와 군무가 대비를 이룬다. 특히 장현수 훈련장이 선보이는 무속춤이 돋보인다. 점진적으로 증폭되는 음악에 맞춰 장현수의 표정은 더욱 처연하지만 몸짓은 과감해진다. 서양 음악의 공백을 메우는 ‘얼씨구’ ‘하 좋다’ 같은 추임새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탈춤과 힙합, 아프리카 전통춤이 결합한 군무 역시 관전 포인트. 샤요국립극장 재연 때부터 합류한 아프리카계 프랑스인 안무가 메를랑 니아캄이 아프리카 춤을 접목했는데 무용수들의 몸 안에서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모습이 신선하다. 프랑스 무대에서도 3장에서 가장 큰 발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프리그 조안무는 “국립무용단은 이번 작품을 통해 두 개의 전통이 묶이면 어떤 맛을 내는지 직접 경험했다”며 “두려움 없이 다른 전통춤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간의 나이’는 오는 10월 파리 크레테유 극장 시즌 개막작으로 채택 논의중으로 국립무용단은 프랑스 현지 관객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6월 파리 무대에 섰던 김현주 단원은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든 관객이 발을 구르며 환호를 보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사진제공=국립무용단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