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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외교계 거물' 브레진스키 잠들다

카터 정부 국가안보 보좌관 역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사태 등

격랑의 1970년대 외교방향 잡아





1970년대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의 외교브레인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사진)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9세.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미국의 3대 외교 거물로 꼽힌다. 1970년대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와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벌어진 격랑의 시기에 외교 방향을 잡아온 대표적인 전략가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에도 기여한 인물이다. 1980년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형 집행을 막은 인물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남편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긴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DJ의 구명을 위해 백악관 수뇌부의 도움을 얻으려고 했다. 이에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1980년 10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이곳(백악관)의 구명문제에 대한 사정을 살피려고 장교를 보냈다. 그에게 ‘김(DJ)’이 사형을 당하면 미국 내 수많은 단체가 항의시위를 분출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북한에만 혜택이 돌아갈 것을 명확하게 밝혔다”고 썼다.



대북 문제에서는 일찍이 1990년대부터 북한의 핵 개발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강력한 제재를 미 행정부에 요구했다.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2003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이란·이라크 가운데 북한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하면서 이라크 전쟁을 우선시하는 부시 행정부를 질타했다.

1928년 폴란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와 독일·캐나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브레진스키 가족이 캐나다에 도착한 뒤 6년 만에 소련이 폴란드를 점령했고 고향을 잃은 이들은 캐나다에 정착했다.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대(對)소련 외교정책에서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브레진스키가 키신저와 함께 “소련을 불신하는 마음을 지닌 외교정책의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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