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 ‘장르 열풍’이 불고 있다. 극장 영화에서 인기를 끌던 추리, 누아르 등 장르물이 TV 드라마에서도 시청자들의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그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의 식상함 탓이다. 지난 십수년간 변한 게 없는 그저그런 설정과 전개의 ‘로코’ 드라마 대신 복제인간, 사이비 종교 등 다양한 소재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장르물이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주고 있다.
방송계에서는 처음으로 금토 드라마를 시작한 tvN이 최근 편성 요일을 바꿔 첫 토일 드라마로 선보인 장르물 ‘비밀의 숲’은 첫 방송이 나간 지난 10일부터 화제가 됐다. ‘믿고 보는’ 배우 조승우의 출연과 배두나의 6년 만의 드라마 컴백 작품이라는 게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신인 작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탄탄한 스토리 텔링을 선보이는 이수연 작가의 필력에 시청자들이 감탄을 쏟아내고 있다. 감정을 느끼기는 하지만 희미하고 어렴풋하게 느끼는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이 검찰의 윗선으로 추정되는 거물이 벌여놓은 사건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매회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시청자들과 두뇌 게임을 벌이는 한편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물질만능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냉정하게 꼬집는다.
드라마에서 장르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지난해 방송된 ‘시그널’(tvN)과 ‘38 사기동대’(OCN)부터다. 케이블이라는 플랫폼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청률 5%를 넘기는 등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 케이블 시청률 5~8%의 영향력은 지상파의 20~30% 수준이다. 이후 채널 OCN은 ‘보이스’, ‘터널’, ‘듀얼’ 등을 잇달아 성공시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출연 배우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듀얼’의 베테랑 배우 정재영(형사 장득천 역)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살인범이 된 복제인간 이성준 역의 신인 양세종은 이 작품을 통해 차세대 남자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보했다는 평가다. ‘터널’에서 강력계 형사 박광호로 맹활약한 배우 최진혁도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낮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남자 주인공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장르 채널을 표방한 OCN뿐만 아니라 지상파에서도 장르물이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SBS의 ‘귓속말’은 지상파에서도 드라마가 시청률 20%를 넘기기 힘은 요즘 이를 돌파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 이 작품을 통해 데뷔 10년 차이지만 배우로서는 존재감이 없고 배우 최명길의 조카라는 수식어만 따라붙던 권율은 강정일 변호사 역을 맡아 제대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장르 열풍을 로코의 퇴조에 따른 결과로 보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반복된 신데렐라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지친 반면 장르물의 경우 복제인간, 사이비 종교 등 다양한 소재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엔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로코는 정말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배우들도 로코에 나가야 인기를 얻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장르물에 독특한 캐릭터로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각인을 시키는 편이 인지도를 쌓는 데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웰메이드 ‘미국 드라마’에 대한 니즈를 한국 드라마가 해소해주고 있다는 점이 장르 열풍을 자극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존 드라마에서 추리 등 장르물이 영화에 비해 어색하고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최근 장르물은 영화를 능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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