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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_창업을_응원해]외모는 달라도 속옷은 평등하다

박수영 소울부스터 대표

"모델 아니면 아름답고자 하는 욕구도 감춰야 하나요?"

기업 인수합병 검토하던 그녀...'속옷'에 뛰어든 배경

만나는 모두가 '빅데이터'…비범한 평범함

6개월간 방방곡곡 돌아 공장 찾아…"진심이 통한다"

"지반공사 끝나면 건축…겉옷 시장도 잡는다"

박수영 소울부스터 대표




“남자친구가 소울부스터를 입을 때 더 예뻐 보인다며 좋아해요.” “자연스러움을 살려주면서도 몸매 라인을 돋보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소울부스터를 착용해 본 소비자들의 평가다.

미국의 속옷 브랜드 레인 브라이언트는 대형사이즈 옷을 입는 여성만을 위한 제품을 선보이며 틈새 시장 공략에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그간 외면당했던 뚱뚱한 체형의 여성들도 모델 못지않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역발상을 사업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미국에 레인 브라이언트가 있다면, 한국에는 빅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속옷 브랜드 소울부스터가 여성들의 ‘자존감’을 살려주고 있다. 소비자 한 명 한 명의 체형을 꼼꼼히 분석해 과학적으로 속옷을 제작한 덕에 몸매에 자신 없던 여성들도 맵시 있는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모델처럼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꽁꽁 눌러 놓았던 욕구를 속옷으로 충분히 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이 아닌 과학으로 접근하면 착용했을 땐 편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름다운 라인을 만들어주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죠.”

소울부스터를 창업한 박수영(31) 대표는 브랜드 론칭 이후 가장 만족스러웠던 순간을 묻자 망설임 없이 ‘소비자 반응’이라고 답했다. 샘플을 착용해 보자마자 패턴별로 속옷을 구매해가거나 한 번 구매하고 일주일 만에 재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들을 보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한다.

박 대표는 “인터넷이나 잡지 등을 보면 모델이나 연예인처럼 예쁜 몸매에만 제품을 입혀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한정된 재원으로 옷을 잘 입어야 하는 소비자들이 ‘실패한 소비’를 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수합병(M&A)에서 이력을 쌓던 그녀가 ‘속옷’에 꽂힌 이유

박 대표는 졸업 후 2년 반 정도를 회계사로 근무했다. M&A 팀에서 근무하며 특정 기업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사업을 물색하거나, 대기업의 경영권 상속을 위한 매물을 찾는 업무를 맡았다.

미디어 회사에는 웹툰처럼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성장한 신시장 아이템을 추천했고, 엔터테인먼트 회사에는 중국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초 화장품 제조도 제안해봤다.

하지만 회사 내외부 조직을 설득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당장 같은 부서 임원으로부터 ‘이게 되겠냐’는 투의 부정적인 반응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박 대표는 “당시 내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중요하지 않다”며 “나의 생각을 시장에 던져 눈으로 직접 결과를 확인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컸다”고 회상했다.

경영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할 때부터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창업’의 꿈은 이런 호기심 덕분에 현실화될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려면 직접 사업에 뛰어들어야 했고, 자신만의 시스템과 판을 짜야 했다.

“지금까지처럼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면서 인정받고 커리어를 쌓거나 유학을 가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근데 화려한 경력을 갖거나, 경영전문대학원(MBA)까지 마친 선배들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안 풀리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업을 시작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게 더 성공할 확률도 높을 것 같았어요.”

박 대표는 가장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고민하다 ‘패션’을 떠올렸다. 브랜드 의류 매장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누구나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해주면서 장점을 드러내면 소비자의 마음을 끌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하는 ‘기초공사’격인 속옷을 사업 아이템으로 결정했다. 속옷은 겉옷보다 유행을 덜 타기 때문에 리스크도 적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어머니는 체형, 취향, 얼굴색을 보고 물건을 파셨는데 그 때 얻은 노하우가 옷을 입었을 때 ‘예뻐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그 옷을 안 입을 여자는 없다는 것”이라며 “속옷 브랜드를 통해 확보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의 체형에 딱 맞는 옷을 추천하는 본격적인 패션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디 프로파일링 퀴즈


◇“내가 만나는 고객 모두가 빅데이터”

당신의 쇄골 중심과 가슴은 어떤 삼각형 모양인가요?

1) 정삼각형과 비슷한 모양

2) 높이가 긴 이등변 삼각형

3) 높이가 짧은 이등변 삼각형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제품을 구매하기에 앞서 소비자들이 꼭 풀어야 하는 35개 퀴즈는 박 대표가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가족, 지인 등에게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각 몸매에 맞는 최적의 제품 추천 알고리즘을 구축했다.

질문 중에는 ‘당신의 쇄골 중심과 가슴은 어떤 삼각형 모양인가요?’라든가 ‘당신의 가슴 윗부분은 어느 형태에 가까운가요?’ 등 신체에 관한 구체적인 것들이 포함돼 있다. 소울부스터는 이를 통해 여성의 가슴을 1,152가지 패턴으로 분류한 후 크기와 모양, 속옷 취향까지 반영해 속옷을 만들어준다.



박 대표는 “여초 커뮤니티를 보면 특정 연예인들의 몸매를 상세하게 분석한다든지, 골반과 고관절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비율이어야 아름다운지 등을 설명해놓은 게 많다”며 “이런 의견들을 하나하나 참고해 질문들을 만들고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머니나 기존의 업계 전문가들이 ‘아닌 것 같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과감하게 빼기도 했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남에게 벌어지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만 일어나지도 않고, 혼자만 특별한 상황에 놓이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평범함 때문인지 그는 ‘여성 창업자’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 것을 경계했다. 보통의 창업자로서 비즈니스 모델 자체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비즈니스 세계는 성별이나 국경을 넘어 정글과 같다. 여성 창업자라고 사회에 인식되고, 그래서 더 주목받으며 거기에 갇히는 건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상품 상세피이지


◇공장 물색에만 6개월…결국 진심이 통하더라

맞춤형 제조 분야 창업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 중 하나는 생산해줄 공장을 찾는 일이다. 개발은 외주업체에 맡길 수 있지만, 그간 대량 생산에만 집중해온 공장들은 다품종 소량생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며 무시하는 태도는 보통이고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소울부스터 역시 똑같은 어려움을 거쳤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설립됐지만, 실제로 브랜드가 론칭된 건 지난 5월이다. 이중 6개월은 공장을 찾는 데 소요됐다.

“생산이 안 돼 물건을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도 왔었어요. 공장을 찾아가면 홈쇼핑 통해서 판매하라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

박 대표는 공장을 찾아 다니던 과정을 회상하며 “정말 이 잡듯이 뒤졌다”고 표현했다. 그나마 생산을 해준다는 곳도 한 가지 속옷을 만들면 최소 3,000~5,000장 이상의 재고를 떠안아야 했다. 투자받은 자금이 재고에 묶여 회사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박 대표는 선주문 방식에 익숙한 기존 공장들이 라인을 흘리면서도 맞춤형 제품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떠오른 게 모듈형 생산 방식이다. 브래지어 날개, 컵 등을 미리 생산해놨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조립해서 출고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공장들은 여전히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주문 후 납기 기한을 한 달 이상으로 잡는가 하면, 원가를 떠나 복잡해서 일하기 싫다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여성 속옷 디자인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불편하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근데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는 모르겠다고들 합니다. 계산해보면 37만9,200시간이라는 일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입는 옷인데, 왜 멋과 편안함을 디자인적으로만 풀려고 하는 걸까요? 다이어트나 성형수술 말고도 속옷으로 여성들의 아름다운 욕구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심이 담긴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표는 속에 있는 생각을 꺼내 업체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력자들을 만났다. ‘사회에 가치를 주는 일’이라고 판단한 두 업체 사장이 적극 돕겠다고 나섰다. 유통업계의 절대 ‘갑’이라고 불리는 홈쇼핑 플랫폼의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박 대표는 “진심을 담아 설득하던 중 도와주겠다는 개발업체와 생산공장이 나타났다”며 “기술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 사업 방향성에 대해 공감을 하시고, 당장 적은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투자하는 심정으로 같이 해보겠다며 나서 주셨다”고 전했다.

소울부스터 홈페이지 메인


◇축적되는 고객 맞춤형 데이터…“지반공사 끝나면 건축해야죠”

사람이 옷을 입은 모습을 건물에 비유한다면 속옷은 지반공사에 해당한다. 보이지 않는 곳부터 아름답게 보정해 간단한 옷차림만으로도 세련미 넘치는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표는 향후 겉옷 시장에서도 충분히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옷은 결국 핏과 라인의 문제인 만큼, 보유한 고객들의 신체 데이터로 맞춤형 스타일 추천 서비스를 선보이면 다른 기업들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빅데이터를 통해 나랑 비슷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옷을 사는지, 어떤 옷을 입으면 좋을지를 보여주면 패션 감각에 자신이 없는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지금의 서비스는 생각했던 것 중 20%만 구현됐다”며 “빅데이터 기반으로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철학은 회사 이름에도 묻어있다. 소울부스터는 한글과 영어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글로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친다는 뜻의 ‘소울하다’의 의미를 담고, 영어로는 옷을 통해 영혼(soul)까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다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모델 몸매가 아니어서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잊고 살았던 사람들이 소울부스터를 통해 ‘내가 아름다운 사람인 걸 알았다’라는 자존감이 들게끔 하는 게 사업의 목표”라고 말했다.

/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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