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부는 지난달 25일 판결에서 “특검이 주장하는 개별 현안 모두에 대해 이 부회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시적 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특검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등 세부 사안에 대한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신 ‘묵시적 청탁’을 끌고 들어왔다.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라는 중대한 현안이 있었고 이 부회장은 승마 지원이 최순실에 대한 지원이며 그것은 곧 대통령에 대한 금품 제공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 결과 이 부회장의 승마 지원(72억9,000만원)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삼성 측은 이를 두고 “법원이 관심법(觀心法)을 터득하지 않은 이상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법률을 적용했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의 핵심 관계자는 “승계 작업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청탁이 아니라고 해놓고 포괄적으로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보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의 논리대로라면 마치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이심전심으로 묵시적 부정 청탁을 했다는 것이지만 실제 두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반대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응했다’는 논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도 양자 간 독대 일주일 전에 이뤄져 선후관계로도 승마지원의 대가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변호인단은 승마지원과 달리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과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전경련을 통해 결정한 것에 대해 수동적으로 응한 것”이라고 무죄로 판단한 부문도 문제 삼고 있다. ‘묵시적 청탁’이 유죄의 근거가 된다면 미르·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낸 기업 모두도 뇌물죄에 해당될 수 있어 법원의 자가당착적 논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 재계에서는 법원이 다른 기업에게까지 뇌물죄를 묻기 부담스러워 이런 판결을 내린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변호인단은 1심 재판부의 이런 논리적 맹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부회장이 약자의 입장에서 박 전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한편 이 부회장 변호인단의 대표 변호인이 송우철 변호사(55·사법연수원 16기)에서 이인재 대표변호사(62·9기)로 교체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변호사는 지난 1982년 판사로 임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냈다. 이번 결정은 항소심에서 변호인단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의 변론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맡고 있다. /이상훈·한재영·이종혁기자 shl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