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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전 좌초위기] 원전 수출후 50년 AS 해야하는데...2년내 부품생태계 붕괴 우려

■체코 "신고리 5·6호기 중단땐 부품수급 차질" 파장

정부 "기존 원전 남아 있어 10년간 문제없다"지만

부품산업 급속한 퇴조로 협력사들 생존 장담 못해

체코, 여전히 입찰독려 속 한국 들러리 전락 가능성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이 지난 8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위치한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를 방문해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27일 체코 프라하의 힐튼호텔. 체코에 원전 수출을 추진 중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이곳에서 원전 산업 기자재 포럼을 열었다. 체코 정부는 해외사업자를 고를 때 자국 기업과의 협업 가능성을 따진다. 이 때문에 한수원이 양국 기업이 참가하는 포럼을 개최한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얀 피셰르 전 체코 총리를 비롯해 체코 전력산업계연합(CPIA)과 체코 기계산업체연합(CMC) 소속 회원사 등 양국 기업 100여개사가 참가했다. 자국 기업의 기술전수와 협력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한수원은 지난달에도 체코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노동조합도 나서 체코전력공사를 방문해 원전 수주에 대한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잘 풀리는 것 같던 체코 원전 수주는 신고리 5·6호기 문제로 암초를 만났다. 신규 원전 건설 중단 가능성이 신규 원전 입찰을 앞둔 체코 정부의 고민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원전은 가격경쟁력이 높다. 원전 건설단가는 ㎾당 1,556달러로 중국(1,763달러)이나 러시아(2,993달러), 일본(3,009달러), 프랑스(3,869달러)에 비해 낮다.

문제는 운행기간이다. 최근 지어지는 원전은 60년가량 운행한다. 원전의 특성상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국내 원전 부품 업체들의 경영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 경우 적기 조달이 어려워지거나 가격이 뛸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국내 원자력 부품 업계의 밸류체인이 붕괴하게 된다. 실제 업계에서는 2~3년이면 업계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례도 있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이후 2008년까지 30년 가까이 사실상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미국은 원전 업계 생태계가 무너졌다. 현재 한수원의 1·2·3차 협력업체는 1,700여개에 달한다. 이 같은 국내 부품 업체의 퇴조는 한국산 원전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원전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도 미군 무기를 살 때 부품 수급 문제를 걱정하는데 체코도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며 “신고리 5·6호기를 짓지 않게 되면 그 이후부터 국내 부품 업체들은 먹고살 거리가 줄어들어 경쟁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해 추가 원전 건설 중단에도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내에만 기존 24기 원전의 유지·보수 물량이 있기 때문에 국내 부품 업체들도 10년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국내 원전 협력사들이 대부분 다른 데도 납품을 같이해 사업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 짜여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10년 뒤다. 산업부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체코 입장에서는 최소 50년, 비율로는 약 83%의 기간 동안 부품 문제를 떠안아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 기간이 2~3년으로 짧아질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의 원전 산업 퇴조 시 대체처를 찾기도 쉽지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체코 입장에서는 굳이 한국에 원전을 맡길 필요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와 청와대의 오판 가능성이다. 체코가 이런 속내에도 겉으로는 한국 원전을 높이 평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원전 수주전에서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전 수출사업에 정통한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체코는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해 한국의 탈원전 정책에 부품 조달 등의 어려움이 생길 것을 크게 우려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입찰지원을 독려하는 모습”이라며 “우리나라를 빼면 중국과 러시아밖에 남지 않는데 이 경우 경쟁이 제대로 안 이뤄질 가능성 탓”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체코를 비롯해 원전 발주국가들이 우리나라 국내 상황을 꿰뚫고 있다”며 “공식적 언사만 보고 판단을 잘못하면 수주는커녕 들러리만 서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탈원전 정책에 따른 해외 발주국가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앞으로의 수주활동도 장담하기 힘들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한수원은 체코 외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폴란드 등에서 원전 수주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특히 다음달 나올 사우디아라비아의 22조원짜리 원전 2기도 수주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원전 수출은 범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해야 하는 국가적 사업”이라며 “산업부 장관이 원전 수출에 반대하지는 않는다지만 청와대 차원에서 원전 수출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영필기자 박형윤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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