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짠돌이가 각광 받는 시대.”
지난해 ‘한 번뿐인 인생 아낌없이 즐기자’라는 의미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국내서 유행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 정반대되는 개념의 ‘짠테크’가 있었다.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며 절약을 실천하는 ‘짠돌이’와 재테크의 합성어다.
욜로가 자신의 즐거움과 스트레스 해소 등 힐링을 위해서라면 돈을 많이 들이는 것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라면 짠테크의 경우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강제로 저축하고 달마다 새로운 적금을 늘려가며 즐거움을 찾는다. 짠테크는 당장 먹고 싶은 것, 타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등을 포기해야 하기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감수한다는 점도 욜로와 전혀 다르다.
짠돌이는 구두쇠 이미지와도 맞아 떨어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환영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한자 문화권에서 구두쇠는 ‘돈을 사수하는 흉노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의 수전노로 부정적인 이미지다.
어린 시절에 읽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캐럴’에서 주인공인 스크루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모습을 보며 ‘난 커서도 절대 구두쇠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무의식이 생겼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 지갑을 꾹 닫고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세상이 묘하게 변해 이런 짠돌이와 그들의 ‘짠테크’ 사례가 젊은층의 각광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팟캐스트로 시작해 지상파 방송까지 진출한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이 한 달치 영수증을 모아 보내면 짠돌이로 유명한 방송인 김생민이 지출내역을 찬찬히 뜯어본 후 줄여야 할 부분을 과감하게 지적해주는 가운데 “커피 사 마시지 말고 면수(국수 삶은 물)을 마시라” 같은 충격적인 조언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지출을 발견하면 ‘스튜핏(멍청이)!’을, 아끼고 아껴 쓴 사례를 보면 ‘슈퍼그레잇!’을 외친다. 어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 장면을 놓고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온라인상에서는 짠테크를 실천하려는 네티즌들의 움직임이 하루가 다르게 활발해지고 있다. 새로운 식재료를 사지 않고 오래 보관해온 냉장고 안의 식재료를 꺼내 알맞은 요리를 하면서 냉장고를 비워나가는 이른바 ‘냉장고 파먹기(냉파)’ 사례는 이미 고전에 가까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절약일기를 쓰면서 한 푼의 지출도 아끼려는 사례는 물론 ‘커피 안 먹고 하루 4,000원을 절약했다’는 소소한 절약 스토리까지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마치 내가 더 짠돌이로 살았다는 고백과도 같다.
다음카페의 ‘텐인텐(10년 10억 만들기)’은 회원 수가 78만명이고 네이버카페 ‘짠돌이 부자되기’는 10만명이다. 웬만한 커뮤니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북적인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젊은층의 짠테크가 내수위축을 부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저소비가 지속되면 ‘내수위축→기업실적 악화→고용축소→저성장→내수위축’의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20여년간 내수위축으로 불황을 겪어온 일본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몇천원씩 하는 커피값을 아껴 10년 뒤, 20년 뒤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사겠다는 이 시대 짠돌이들이 저성장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인지, 그동안의 과도한 소비를 합리적으로 다운사이징하려는 현명한 선택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