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의 극약 처방은 지난달 말 노조가 제기했던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한 데 따른 자구책 측면이 강하다. 상여금과 중식비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됨에 따라 회사 측의 부담은 1조원 이상 늘어나고 3·4분기 영업이익 적자도 불가피해졌다. 여기다 잔업·특근수당이 덩달아 뛰어올라 가뜩이나 판매부진을 겪던 회사로서는 더 이상 배겨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의 불합리한 임금구조에서는 특근·잔업시간을 늘리면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어 경쟁력 하락을 막자면 결국 인건비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통상임금 확대로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통상임금의 역설이 현실화한 셈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통상임금 소송이냐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오랜 노사 관행을 무시하고 소송전을 벌였던 노조는 임금이 줄어들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잔업중단은 생산체계 재편의 시작일 뿐이다. 당장은 연봉 몇백만원 감소에 그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인력 재조정과 채용방식 변경 등 구조재편의 회오리가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기아차가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국내 일감을 해외 공장으로 돌리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게다가 수천 곳의 협력사들은 당장 일감이 줄어들어 공장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신의성실의 원칙’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됐던 소송이 승자 없이 패자만 있는 최악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산업계는 통상임금뿐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어느 일방의 이익만 고집한다면 미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사 모두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합리적 결단을 내리는 노동계의 각성과 변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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