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2000년대 초부터 정부가 선정하는 미래 먹거리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분야다. 참여정부는 지난 2003년 로봇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선정했고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지능형 로봇 분야에 5년간 1조원이 넘는 정부 연구개발(R&D) 투자를 단행해 세계 3대 로봇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 역시 2014년 제2차 지능형 로봇 기본 계획을 발표하며 로봇 수출액을 오는 2018년까지 2조5,000억원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현실은 초라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로봇 수출은 6억2,000만달러에 그쳤다. 전년 대비 10% 가까이 감소했다. 로봇 수출액이 5조원이 넘는 일본은 물론 중국(2조원)과도 격차가 크다. 정부마다 로봇을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지원에 나섰음에도 경쟁국에 비해 성장이 더딘 것은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해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다 민간 기업과의 협업도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공만 많을 뿐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적 투자 전략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같은 미래 신산업 육성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한국 경제는 반도체 등 기존 주력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구조가 지속되고 산업계 전반에 걸쳐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십수년 지원에도 로봇 수출 1조원도 안돼…찔끔 투자에 전략도 부재=AI 기술 발달에 따라 로봇 산업은 향후 높은 성장성이 기대되는 분야다.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2009년 68억달러 규모에서 2014년 167억달러 규모로 5년 새 2.5배가량 커졌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14년 세계 로봇 시장 규모가 오는 2025년 670억달러(약 76조원)까지 늘 것으로 전망했으나 올해 그 전망치를 870억달러(약 100조원)로 상향 조정했다.
제조·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저출산·고령화로 대화·간병 로봇 등 개인서비스용 로봇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각국 정부는 로봇 분야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붓고 있다. 일례로 중국 정부는 로봇을 10대 핵심산업 분야로 선정하고 로봇 자동화 생산기지 구축에만 115억위안(약 2조원)을 쏟아붓기로 하는 등 ‘로봇 굴기’에 나선 상태다. 반면 한국이 오는 2020년까지 로봇산업에 투자하는 금액은 약 5,000억원에 불과하다.
로봇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로봇 관련 정부 예산 대부분이 R&D와 인프라 구축에 투입되면서 기술·제품 사업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내 로봇 기업의 90%가량이 중소기업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세계 로봇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려면 기술연구에서 제품개발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민간과 협력해 해외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과 함께 대표적인 미래산업으로 지목되는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역대 정부마다 생명공학기술(BT) 분야에 꾸준히 투자를 늘리면서 지난해 우리나라 의약품 수출액은 4조원대까지 늘었으나 1,26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의약품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신약 개발에 투입된 R&D 비용 1조8,834억원 중 정부 지원 예산은 13.6%인 2,354억원에 불과했다”면서 “제약 분야에 대한 정부 R&D 예산 지원을 대폭 늘리는 한편 각 부처로 나뉘어 있는 제약산업 정책을 통할할 컨트롤타워 설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미래산업 육성 ‘민관 협력’ 필수…규제 혁신 없인 민간 투자도 없다=AI·로봇을 비롯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와 바이오 헬스케어 등 미래형 신산업을 육성해 주력산업의 바통을 잇게 하려면 정부가 선제적이고도 과감한 지원에 나서는 한편 파격적인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뜩이나 과거 정부에 비해 산업 진흥 정책이 부재하다는 비판을 받는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과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지능형 로봇과 제약·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첨단기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으나 출범 넉 달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촉진하는 데 필수적인 규제 개혁이 미진한 상황에서 최저임금·법인세 인상 등으로 민간의 투자 의욕도 꺾인 상태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ICT 산업을 육성하겠다면서도 AI 관련 제품·서비스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정보기술(IT) 기업에 낡은 규제 잣대를 들이대는 ‘모순(矛盾)’도 빚어지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전 이사회 의장에 대해 대기업 총수로 지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 전 의장은 스티브 잡스처럼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폄훼하자 “정부 도움 없이 맨몸으로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하다. 동료 기업가로서 화가 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 포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국내 IT 기업들은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외국계 기업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임지훈 카카오 대표는 “인터넷·모바일 기업은 시간 점유율과의 싸움인데 우리보다 백배나 큰 글로벌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버겁다”며 “국내 기업만 강한 규제를 받는데 외국계 기업과 같은 운동장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래형 신산업을 키우려면 정부 지원만으로 불가능하고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기존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하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강력한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투자 의욕을 고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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