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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여당 연줄' 앞세워…협회장 독식하려는 '올드보이 관료'

공직 떠난지 오래고 60~70대

급변하는 환경 대응력 떨어져

현정부 혁신 기조에 어긋나고

전리품 챙긴 전 정부보다 더해

'무역협회=전윤철' 교통정리설

손보협회장에 김용덕 단독 추천





한국무역협회와 손해보험협회·은행연합회 등 주요 민간협회 회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김대중 정부(DJ)나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올드보이’ 관료들이 앞다퉈 빈자리를 찾아다니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에 비해 민간협회가 ‘하는 일도 많지 않으면서 책임지는 일도 없다’ 보니 전직 관료들이 앞다퉈 자리 선점에 나선 것이다.

26일 정부와 금융권·산업계 등에 따르면 민간협회의 경우 자리가 나기 무섭게 전직 관료들이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김인호 무역협회장이 최근 정부로부터 ‘물러나라’는 메시지를 전달받고 사퇴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와 참여정부 감사원장까지 지낸 전윤철(78)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이 툭 튀어나왔다. 전 전 감사원장은 지난 대선 때 ‘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데다 무역협회장 인선에는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사실상 차기 회장으로 유력시되고 있다. 등을 밀려 떠나긴 했지만 김인호 전 회장은 “본인의 높은 나이를 감안해 회장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며 사실상 고령에 업무를 보기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보다 세 살이나 위인 전 전 감사원장이 거론되자 무역협회 내부에서는 통례를 벗어난다는 반응이다.

특히 임기가 남은 무역협회장을 억지로 내보내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과거 정부에서 반복됐던 구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코드가 맞는 인사를 회장에 앉히고 싶다는 취지로 민간경제단체인 무역협회에 가해진 퇴진 압력 소식에 전임 정부 시절 임명된 공기업과 공공기관장도 좌불안석하고 있다.

다음달 임기가 만료되는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후임으로는 김영삼 정부 시절 홍재형(79)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캠프 원로그룹인 상임고문단에서 활동했고 더불어민주당 청주상당 지역위원장을 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충청권의 지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차기 은행연합회장에는 신상훈 전 신한은행장과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 등 민간출신이 거론돼왔다. 하지만 은행연합회 이사회가 이날 후임 회장 인선 논의 착수를 앞둔 시점부터 관료 출신인 김창록 전 총재와 홍재형 전 부총리가 급부상했다. 김 전 총재는 모 은행장을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했고 홍 전 부총리 측근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홍 전 부총리가 후임 은행연합회장을 맡아야 한다’고 적극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부총리 측은 고령 논란을 의식해 “매일 헬스장을 찾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며 업무수행력보다 건강을 강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호남 출신 금융권 인맥을 대표하는 신 전 사장은 금융권에서 쌓은 폭넓은 경험과 네트워크로 후임 회장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신 전 사장은 퇴직 관료들이 앞다퉈 회장직에 뛰어들자 ‘(회장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까지 뛰어들어야겠느냐’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장에 뛰어드는 전직 관료들은 나이도 나이지만 단순히 현 정부의 전신에 해당하는 참여정부나 더 이전인 DJ정부에 몸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순수 민간단체인 각종 협회장직 도전에 나서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논란 속에 어렵사리 민간협회장 시대를 열었는데 다시 옛 관료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해버릴 처지에 놓였다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업계와 야권 등에서는 “과거 정부가 이렇게 했으면 ‘코드인사’라고 비판했는데 지금 정부에서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다”며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차지해야 할 단체장이나 협회장은 한정돼 있고 이를 노리는 전직 관료들은 많다 보니 알력과 권력암투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 무역협회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이 유력했는데 홍재형 전 부총리도 뛰어들어 교통 정리결과 ‘전윤철=무역협회장, 홍재형=은행연합회장’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애초 은행연합회장직을 노렸던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갑자기 손해보험협회장으로 급선회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김용덕 전 금융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과 금감위원장을 했고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 정책자문단인 ‘10년의힘 위원회’에서 금융정책을 조언하고 공약개발에 참여했다. 결국 이날 손보협회는 예상했던 대로 김 전 위원장을 후임 회장으로 단독 추천했다.

김 전 위원장은 행시 15회로 최종구 금융위원장(행시 25회)보다 서열기수가 훨씬 높은 까마득한 선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국이 업계의 목소리에 파묻힐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무역협회장 자리를 놓고 경제관료 중에서도 거물급들이 경쟁하면서 밀려난 이들은 다른 협회장에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실제 홍재형 전 부총리는 무역협회장과 은행연합회장 후보에 동시에 오르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에서 검증을 기다리는 인사들이 줄을 섰다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실제 금융공기관 임원 인사를 위해 청와대에 검증요청을 하면 ‘기다려 달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모습은 현 정부가 적폐로 규정한 이전 정부의 ‘관치금융’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온 문재인 정부에서도 주요 협회장들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국정운영을 맡았던 ‘코드인사’로 채우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사와 지난 대선 운동을 주도한 캠프인사, 그리고 부산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A코드에서 B코드로 바뀌는 것일 뿐 나눠 먹기는 다를 게 없다”며 “장관·위원장까지 했던 분들이 민간협회장을 노리는 걸 보니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유력 인사로 거론되는 인물들 대다수가 상당 기간 현직을 떠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혁신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이 강하다. 나이도 80을 바라볼 정도로 고령이어서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아 대응이 가능하냐는 얘기다. 전직 관료 출신 관계자는 이들에게 ‘노욕’이라는 한 글자로 상황을 압축했다. /황정원·한재영·이태규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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