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처럼 엉켰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앙금’이 풀린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위협 강도를 더해가는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3국 협력을 훼손할 수 있는 요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사드 갈등 봉합으로 양국 간 경제협력이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외교·안보 측면에서 한국 외교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선 것은 또 다른 과제로 남게 됐다. 결국 이번 한중 협의가 ‘선물’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숙제’가 될지는 이달부터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연쇄 정상회담 내용과 성과에 달리게 됐다.
양국은 지난 31일 오전10시 같은 시각에 관계개선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양국은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회담을 개최한다는 데 합의했다”며 “이는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나가기로 한 합의 이행의 첫 단계”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외교부도 이 같은 기대감을 내놓았다.
일단 사드 갈등으로 쪼그라든 경제협력은 물꼬를 트게 됐다. 하지만 사드 협의는 최종 해결이 아니라 현 수준에서 봉합된 것이어서 갈등 재발의 위험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경제보복에 그 동안 숨죽였던 우리 기업들이 환호성을 지르기보다는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중국 경계령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최근 1~2년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고전했는데 사드와 중국 투자에 대한 구조적 한계라는 두 가지 이유가 겹쳤던 것이 사실”이라며 “관광·한류 사업은 효과가 있겠지만 제조업이나 직접투자의 경우 새로운 전략을 찾지 않으면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반도 안보를 둘러싸고 제2의 사드 사태가 발생할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등 ‘사드 징비록(懲毖錄)’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면서 사전에 중국의 이해를 구하지 않아 불신의 골이 깊게 패였고 중국의 경제보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수조원대의 손실을 감내해야만 했다.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환이 없도록 하는 외교 숙제가 문재인 정부 책상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날 양국 간 사드 협의는 최종 합의가 아니라 그야말로 봉합 수준이다. 청와대도 ‘봉합’이라는 표현을 썼다. 협의문은 “한국이 중국의 사드 문제와 관련된 입장과 우려를 인식하고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는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해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중국은 “사드 체계에 반대한다. 한국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못 박았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 등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며 우려를 천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전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밝힌 ‘3NO’ 원칙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 정부가 사드 해결에 집착해 외교·안보 분야에서 중국에 너무 양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중이 밝힌 3NO 원칙은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일 안보전략과 충돌한다. 한미관계에 잠재적 갈등요인이 될 수 있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7일 국빈 방한해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굳건한 한미일 군사협력을 요청할 가능성이 짙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드를 잡으려다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한국이 한중·한미·한일 등 한반도를 둘러싼 양자외교에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최근 포린폴리시(FP) 기고문에서 한국을 빗대 미중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스윙스테이트(swing state·경합국가)’로 표현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에 물음표를 던진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번 사드 협의를 놓고 미국 조야에서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핵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 도발에 나설지 모른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전략을 굳건히 하면서 사드 후속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한반도 책략(策略)’이 필요한 시점이다./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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