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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주 35시간 근무 돌입한 신세계] 흡연실 폐쇄… 구두 보고… “근로단축, 생산성에 사활 건다”

오전10~11시30분·오후 2~4시

집중근무시간 정해 고강도 업무

한국, 노동생산성 OECD 꼴찌

생산성 높일 다양한 방안 필수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한 직원이 오전 10시 집중근무시간을 맞아 흡연실 문을 잠그고 있다. /사진제공=이마트




# 지난 2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139480) 본사. 뉴미디어팀의 김모 과장은 오전9시에 출근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업무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출근 직후 서면보고서를 한참 작성한 뒤 오전10시께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이날부터 주 35시간 근무(오전9시 출근, 오후5시 퇴근)가 시행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7시간 안에 모든 업무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집중근무시간’으로 정해진 오전10~11시30분, 오후2~4시에는 단 1분도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집중근무시간에는 사내에 마련된 흡연실이 폐쇄돼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며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김 과장은 “근로시간이 줄면서 예전보다 업무 집중도가 더 강해졌다”며 “첫 시행이지만 대체로 직원들이 바뀐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중근무시간땐 잡담도 금지

회의 1일전 사전공지·1시간내 종료·티미팅 자제도

직원들 손놀림 한층 빨라져…“자신감 생긴다” 흡족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 시행에 들어간 신세계(004170)그룹이 노동생산성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임금삭감 없는 단축근무 정착에는 결국 노동생산성 제고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며 “신세계의 실험이 성공적인 사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생산성 제고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시행 이틀째인 신세계는 주 35시간 근무에 맞춰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당장 집중근무시간 도입 등으로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직원들의 생활도 달라졌다. 아직은 적응단계라 사무실과 점포 현장을 막론하고 얼떨떨해하는 직원들이 많았지만 대체로 바뀐 근무환경에 만족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근무시간 단축에 맞춰 업무 강도가 세졌지만 전 부서가 무리 없이 일과를 소화했다.

우선 야근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 업무시간 중에 마무리하라는 의미다. 오후5시 정시퇴근을 위해 5시30분, 5시20분에 각각 PC 셧다운제를 실시했다. 담당 임원의 사전 결재 없이는 PC가 재부팅되지 않아 무분별한 야근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것. 더 나아가 야근이 잦은 부서는 공개하고 임원·부서장 평가·시상에서 감점하기로 했다.

실제로 시행 이틀 동안 이마트 본사와 센트럴시티 신세계백화점 본사, 명동 사무실 직원들은 오후5시가 되자 우르르 퇴근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보통 뉴스와 신문 마감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홍보팀 직원들도 당직자 1명만 남기고 사무실을 깨끗하게 비울 정도였다. 이마트 홍보팀의 한 30대 과장은 “시간이 줄었는데도 업무에 전혀 차질이 없었다”고 말했다.

업무 효율화를 위해 비효율적인 회의 시스템도 전부 뜯어고쳤다. 이마트의 경우 1일 전 사전공지, 1시간 내 종료, 1일 내 회의 결과 공유라는 ‘111’ 제도를 도입했다. 보고 역시 구두·메모로 10분 이내에 처리하는 식으로 개편했다. 부득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경우 1쪽을 넘기지 못하게 했다. 이마트 본사는 집중근무시간에 흡연실 폐쇄 외에 티미팅도 되도록 못하게 했다.

사무실뿐 아니라 점포 현장도 새 시스템에 맞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서울 가든5·가양·구로·마포 등 전국 이마트 73개 점포의 폐점시간을 기존 자정에서 오후11시로 당기면서 점포 직원들의 손놀림도 한층 더 빨라졌다. 이마트 성수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이모(48)씨는 “저녁11시10분이면 퇴근하니까 대학생인 아들 얼굴을 보고 잘 수 있게 됐다”며 “직장 동료들과 취미생활을 같이 해보자는 얘기도 나오고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흡족해했다. 신세계 고위관계자는 “노동시간 단축 태스크포스(TF)를 상시 운영해 노동생산성 제고 등 정시퇴근 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의 이 같은 실험이 주목받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최근 사회 전반에서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붐은 이제 업종 불문하고 퍼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500대 기업 일·가정 양립제도 현황 조사’ 결과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는 기업은 지난해 현재 52.5%가량으로 전년도의 41.4%에서 11.1%포인트 증가했다. 500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워라밸 제도를 시행하는 셈이다.

특히 신세계를 포함한 유통업체들은 워라밸 붐 조성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마트의 경우 최근 출근시간을 늦추기 위해 오전8시30분부터 사무실 개인용 컴퓨터가 켜지는 ‘피시온제도(PC on)’, 30분 단위로 출퇴근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시차출근제를 도입했다. 또 이달 1일부터는 현장근무제도를 강화하기로 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을 제외한 날을 현장근무의 날로 정해 불필요한 회의와 관행적 업무를 줄이는 제도다.

현대백화점그룹과 GS리테일은 ‘2시간 단위 휴가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하루 근무시간 8시간 중 2시간 연차를 네 번 쓰면 1일이 소진되는 방식이다. 올리브영을 운영하는 CJ올리브네트웍스는 최근 ‘워라밸 위드 올리브영’이라는 캠페인을 벌여 정시퇴근을 독려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에는 ‘퇴근독려 카드’까지 지급한다.



“생산성 없는 워라밸은 되레 毒”

“단순 근로시간 줄이기 땐 매출·고용 감소 등 불보듯”



문제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뒤따르지 않으면 근로시간 단축 등 워라밸 제도가 되레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생산성은 근로자 한 명이 창출하는 시간당 부가가치를 말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주요 국가에 비해 매우 뒤떨어진 상태로 OECD 35개국 가운데 꼴찌 수준인 28위에 불과하다. OECD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가 한 시간에 31.8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때 미국 근로자는 2배인 62.9달러, 독일 근로자는 59.8달러어치를 만들어낸다. 생산성이 한국보다 떨어지는 OECD 국가는 폴란드·칠레 등 7개국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노동생산성 증가 속도마저 더디다는 점이다.

노동생산성은 1997년 15.6달러에서 2015년 31.8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순위도 3단계(31위→28위) 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68% 수준에 불과하며 증가율도 1997년(6.3%) 이후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다. 한경연 관계자는 “낮은 생산성을 그대로 둔 채 근로시간만 줄이면 기업 매출이 감소하고 추가 고용 여력도 생길 리 없다”며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동시에 노동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방안을 같이 도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이마트 본사 한 직원 PC 화면에 26분 뒤 PC가 자동 종료된다는 신호가 뜨고 있다. /사진제공=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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