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 소국인 에스토니아에서 세계를 주름잡는 헤비급 스타트업들이 꾸준히 배출되는 데는 정부의 창업 활성화 정책에 더해 스스로를 ‘에스토니안 마피아’라고 부르며 기술과 자원을 고국의 후배들과 공유하는 창업 선배들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한몫하고 있다.
에스토니안 마피아의 시작은 지난 2003년 무료 음성·영상 통화 서비스를 선보여 파란을 일으킨 ‘스카이프’다. 4명의 에스토니아 엔지니어들이 만든 이 회사는 2005년 미국 이베이에 26억달러(약 3조원)에 팔리면서 당시 에스토니아 국내총생산(GDP) 140억달러의 18%에 달하는 자금을 획득했다. 회사는 해외로 넘어갔지만 스카이프의 유산은 에스토니아 창업 환경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었다. 지분을 판 스카이프 창업자들은 벤처투자가로 변신해 자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새로운 성공 사례를 만들어나갔고 또 다른 창업 멤버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스카이프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업체는 해외 송금 서비스를 하는 핀테크 업체 ‘트랜스퍼와이즈’다. 스카이프 창업 멤버인 타베트 힌리스가 2011년 설립한 이 회사는 지난해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해외 송금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트랜스퍼와이즈의 가장 혁신적인 특징은 해외 송금을 국내 송금처럼 바꿔 환전 수수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에서 미국으로 송금하려는 A와 미국에서 한국으로 송금하려는 B를 회사의 P2P(개인 간 거래) 플랫폼으로 연결시켜 한국 또는 미국 한 나라 안에서의 거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트랜스퍼와이즈는 이를 통해 은행의 고유 업무였던 환전과 해외 송금을 핀테크의 영역으로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돈이 국경을 넘지 않으니 환전 수수료가 안 들고 송금 시간도 대폭 줄어든다. 회사 측에 따르면 이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이 절약하는 수수료는 한 달에 약 400억원 정도다.
지난해 세계적인 피자 업체 도미노피자와 유통 업체 테스코가 시범서비스에 돌입한 로봇 배달원을 제작한 회사 ‘스타십 테크놀로지’도 스카이프 창업 멤버가 설립한 곳이다. 스타십의 로봇은 6개의 바퀴가 달려 시간당 6.5㎞를 달리며 차와 보행자를 자동 감지하는 기능을 갖췄다. 고객은 스마트폰을 통해 로봇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이 혁신 서비스로 지난해에만 1,720만유로(약 22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제2의 우버’로 불리는 차량 공유 업체 ‘택시파이’는 스카이프 출신들이 조달한 자금을 투자 받아 급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2013년 19세의 에스토니아 청년이 설립한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20개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며 올해 매출을 10억달러로 잡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차량 호출 서비스 업체인 디디추싱으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고 9월 런던으로 영업 기반을 확대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민준·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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