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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韓 철강에 '반덤핑 칼날']美 엎친 데 EU 덮쳐...韓 철강 '최악 시나리오' 현실로

보호무역 광풍 유럽으로 확산

고용 핑계 추가 제재 가능성도

한국 수출 다변화 전략에 타격

“다른 나라들은 미국에서 갈길 잃은 철강재가 자기들한테 쏟아지지 않을까 우려하며 방어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붙은 불이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서울에서 철강 업계와 미국의 통상보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개최한 대책회의. 철강 업계 고위관계자는 미국이 초강력 무역제재인 232조를 발동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소식을 듣자 분개했다. 갈수록 좁아지던 대미 수출길이 아예 봉쇄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발동 후 예상되는 글로벌 ‘풍선효과’를 짚는 대목에서는 일순간 정적이 일었다. 그는 “지난해 글로벌 철강회의에 함께 참석했던 유럽연합(EU) 관계자가 미국의 통상제재 수위가 높아지면 자신들도 빗장을 걸 수밖에 없다고 귀띔해왔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EU가 4년 만에 한국산 철강재에 대한 반덤핑조사에 착수한 배경이 예사롭지 않다. EU는 이미 지난 2014년 말 한국산 철강재인 튜브 및 파이프피팅 제품에 대해 최종 관세(44%)를 부과했고 지난해 효력이 끝났다. 하지만 EU 업체들이 이익과 일자리 감소를 운운하자 다시 같은 사안에 대해 조사에 착수해 또 반덤핑을 부과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미 형기가 끝났는데도 다시 벌을 주는 셈이다.

EU는 역내 철강 업계를 잠식하는 수입산 물량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중국산 저가 철강에는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통해 조금씩 물량을 역외로 밀어내던 터였다. 중국을 향한 고강도 통상제재를 쏟아낸 끝에 지난해 한 해에만 중국산 철강제품의 대EU 수출을 40% 넘게 줄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국산 철강재가 떠난 자리를 다른 나라 철강재가 비집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중국이 수출국 1위로 자리를 내주는 사이 인도는 수출량을 거의 100% 늘리며 치고 올라왔다. 터키도 수출을 64% 늘리며 2위로 도약했다. 한국도 중국이 빠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2014년 195만톤에서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 350만톤을 기록하며 수입국 중 4위로 뛰어올랐다. EU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중국을 빼내니 또 다른 가시가 박힌 셈이다.

밀려오는 철강재에 신음하던 차에 미국의 무차별적 통상 공세가 시작되자 유럽 철강 업계의 근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수입산 철강재를 향해 고강도 반덤핑 관세를 물리기 시작했고 대미 수출길이 좁아지면 해당 물량이 유럽으로 우회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1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철강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안보를 이유로 수출 자체를 틀어막을 수 있는 이 조항이 실제 발동돼 갈 곳 잃은 대량의 철강재가 유럽으로 들어와 철강업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여론이 폭발한 것이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해 한국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4년 만에 착수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를 시작으로 다른 철강재에 대해서도 EU의 통상제재가 꼬리를 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새어나온다. EU는 이번 조사를 시작하면서 불어난 수입산 물량으로 역내 생산 규모가 줄면서 고용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EU가 꺼낸 논리는 미국이 처음 무역제재에 나설 때 꺼내 든 논리와 매우 닮았다”며 “미국이 그랬듯 고용을 운운하며 앞으로 더 파급력 있는 제품을 겨냥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우보·구경우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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