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지는 않겠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중국뿐 아니라 유럽과 캐나다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후 각국은 주말 동안 대미 보복조치를 예고하는 ‘말 폭탄’을 쏟아내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을 상징하는 제품들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통상보복’을 공개 선언했으며 동맹국인 일본 내에서도 ‘EU가 미국을 상대로 선봉에 선다면 따라갈 것’이라는 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를 기회로 ‘통상 반미전선’을 구축하려는 의도까지 보이고 있다. 각국의 반발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호혜세 부과’를 시사, 무역전쟁이 일부 품목을 넘어서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트위터에서 “EU가 이미 엄청난 관세와 통상장벽을 높이려 한다면 우리는 간단하게 유럽산 자동차에 세금을 물릴 것”이라며 “미국은 ‘매우 멍청한’ 무역협상과 정책으로 해마다 8,00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무역 상대국이) 우리에게 하는 대로 호혜세 부과를 시작할 것”이라며 “어떤 국가가 미국산 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는데 우리는 0%의 관세를 적용한다면 공평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EU를 타깃으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협박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보복발언’에 대한 대응이다. 융커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1일 수입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미국의 할리데이비슨과 버번 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에 관세를 물릴 것”이라며 “미국과 이성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고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이터통신은 EU가 28억유로(약 3조7,342억원) 상당의 미국산 수입품에 25%의 보복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의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통상제재’ 발언의 수위를 올리자 미 CNBC방송은 폭스바겐·BMW 등 독일산 자동차가 보복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 기간에 미국과 충돌하며 얼굴을 붉혀온 캐나다도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직접 불쾌감을 토로했다. 트뤼도 총리는 “관세 부과를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리는 캐나다 산업을 방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미국 정부의 ‘철강 관세’ 다음 수순이 나프타 탈퇴”라고 전망하는 등 북미 2개국의 분위기도 눈에 띄게 험악해졌다.
트럼프 행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일본도 조심스럽게 대응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이날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과의 전화 회담에서 “동맹국인 일본의 철강과 알루미늄 수출은 미국의 안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일본 철강은 미국 기업에도 필수불가결하게 사용돼 미국의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경제산업성 내에서 미국의 이번 조치에 대한 불만이 퍼지며 EU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나설 경우 일본 역시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타깃인 중국에서는 직접적인 보복발언이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에 대한 비난과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방식은 근거가 없다”며 중국 외에도 각국이 미국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트럼프 정부가 ‘21세기 관세장성(長城)’을 쌓고 있다”면서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공공연히 어기는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일본 언론은 중국이 미국의 관세 부과에 불만을 가진 국가와 공동 대항할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전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미연대’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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