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북한을 경유해 우리나라에까지 파이프라인으로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사업이 다시 점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업이 본격화되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조건인 남북관계가 이례적인 속도로 개선되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1일 “한국과 러시아 정부의 실무선에서는 이미 지속적으로 검토해왔던 사안”이라며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가 장기적이고 영속적으로 이뤄질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부터 러시아 PNG 사업에 대한 여러 조건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의 수익성이나 국내외 정치 환경이 우호적으로 개선된다면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을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러시아 PNG 사업은 지난 2004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당시 양국은 천연가스 협력에 합의했고 이후 2006년에는 정부 간 가스협력협정을 체결하는 등 사업 추진 기반을 마련했다. 사업 실무기관으로 한국은 한국가스공사를, 러시아는 가스프롬을 지정했다. 이후 두 회사는 공동연구와 협상 등을 추진했지만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논의가 중단됐다.
남북 정상이 만나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도 PNG 사업 추진에 대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신(新) 북방정책’ 비전을 천명, 이에 대한 액션플랜으로 가스와 철도 등 9개 분야의 동시다발적 협력을 제안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동북아 국가들의 전력 협력을 위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협의도 제안했는데 그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러시아 PNG 사업이다. 또 기존 원자력·화력발전 중심에서 신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 발전 중심으로의 에너지전환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한국의 천연가스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여건은 개선되는 과정이다. 다만 러시아에서 PNG 도입량을 늘리면 전력 종속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고 북한이 급격한 태도 변화로 파이프라인을 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신중히 따져봐야 할 요소로 꼽히고 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