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 번스타인은 올해 초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 배경으로 올해 말 3차원(3D)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들어가는 칭화유니그룹 자회사 창장메모리(YMTC)를 들었다. 번스타인은 “창장메모리가 업계 리더인 삼성전자와 3~4년의 기술 격차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창장메모리가 구현하려는 32단 3D 낸드 기술은 삼성전자가 지난 2014년 양산에 들어간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64단 낸드를 양산하고 있다.
D램의 경우에도 추젠진화(JHICC) 등이 올해 하반기 양산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30나노급 수준이어서 10나노 2세대 미세공정을 적용하고 있는 삼성전자와는 기술 격차가 있다.
하지만 중국 메모리 반도체 양산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전문가는 없다. 반도체 업계 고위 임원은 “당장은 중국의 메모리 양산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미칠 파장이 크지 않지만 수년 내에 의미 있는 경쟁 상대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면서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칭화유니그룹은 최근 인텔과 3D 낸드 개발을 위해 손을 잡기로 하는 등 기술 격차를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술력 부족을 인정하고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과의 협업을 통해 반도체 시장 주류 플레이어로 올라서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털어 넣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중국은 2015년 ‘국가반도체산업 투자펀드’를 만들어 1조위안(한화 약 17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추가로 30조원도 투입한다.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려 한국에 의존하는 구도를 끊겠다는 게 목표다.
막대한 자금만 쏟아붓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 정부도 실력 행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한국산 반도체 조달이 힘겨워진 자국 세트 업체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간접적으로 요청했다. SK하이닉스가 속한 한미일 컨소시엄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 인수의 최종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중국이다. 인수를 최종 마무리하기 위한 각국 당국의 반독점 심사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모두 마무리됐지만 중국만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이 SK하이닉스가 포함된 컨소시엄의 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곱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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