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정부가 여론에 민감한 정책 결정은 뒤로 미루는 반면 선심성 정책들은 속도를 내고 있다. 정책 결정 지연에 따른 업계와 시장·국민들의 혼란은 뒤로 한 채 정부가 일정 조정을 통해 여당 밀어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16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코레일과 에스알(SR) 통합,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 암호화폐 과세 여부,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소 정비 등 굵직굵직한 정책 결정이 연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코레일과 수서고속철 운영사인 SR의 통합 논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벌써 두 번째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철도 공공성 확보를 위한 양 기관의 통합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학계·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곧바로 통합 논의가 이뤄질 것처럼 했지만 국토부는 지난해 말로 논의를 미뤘다. 2016년 12월부터 본격 영업을 시작한 SR의 상황을 감안해 1년간의 평가를 한 뒤 결정하겠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3개월이 지났지만 국토부는 논의를 또 미뤘다. 당초 계획했던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평가위원회 구성조차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최근 2018년도 철도 서비스 품질 평가 용역을 발주했다. 철도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 산업 구조 평가 용역은 조만간 발주할 계획이다. 결국 일정상 통합 논의가 연말에나 가능한 셈이다. 철도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합하면 철도 산업의 경쟁체제가 다시 독점체제로 변해 국민들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반발할 테고, 안 하면 강성인 철도노조가 반발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며 “정책 결정 지연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업계도 사업 추진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상반기 내에 마련하겠다던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 방안 역시 하세월이다. 기획재정부는 추가 용역을 실행한다며 오는 6월 이후로 미뤘다. 추가 용역 결과는 올 하반기에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기관 노조가 기본 호봉제를 대신할 직무급제에 반발하고 있어 지방선거 이후로 늦추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2030세대들의 불만이 컸던 암호화폐 과세 방안도 슬그머니 서랍 속으로 들어간 분위기다. 7월로 예정된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암호화폐 관련 글로벌 공동 규제안이 마련되면 한국 정부도 이에 맞출 것이라는 관측만 나오는 상황이다. 암호화폐 과세안이 나오려면 먼저 국무조정실 중심의 각 부처별 차관급 인사들로 구성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가 개념화·제도화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결정이 차일피일 밀리면서 과세안 발표도 늦춰지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가상통화 TF’가 암호화폐를 제도화할 것인지, 거래소를 합법으로 인정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면 과세방안은 하룻저녁에도 만들 수 있다”면서도 “아직 TF가 전체적인 일정을 확정하지 않아 과세방안 발표도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 비중은 줄이고 지방세 비중은 늘려 지자체 자주 재원을 확충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됐던 재정분권 종합대책도 올 2월까지 마련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교육부도 올해 1월까지 마련하겠다던 학교생활기록부 신뢰 제고 방안에 대해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적용, 6월에 결론을 내기로 입장을 바꿨다. 숙려제는 국민의 관심이 높거나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예상되는 정책을 국민 의견수렴을 통해 결론짓는 절차다. 하지만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학생부 개선안을 지방선거 전에 발표하기가 부담스러워지자 교육부가 이를 면피하기 위해 숙려제를 선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지연은 이뿐만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개물림 사고를 막기 위해 목줄 착용 등 준수사항을 위반한 반려견 소유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개파라치’ 제도를 도입하려다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시행 하루를 앞두고 돌연 연기하기도 했다. 지역 민심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부 부처 이전과 관련해서도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세종시 이전은 추진한다면서도 이전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반면 청년일자리, 카드 수수료 인하, 지역경제 활성화 등 선심성 정책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속도를 내고 있다. 청년일자리 대책은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가 앞으로 3~4년간 고용시장에 나오면 고용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추가경정예산 통과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예측이 최근에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야당은 “선심성 정책이자 예산낭비”라며 반대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정책은 경제원칙에 맞게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하는데 여론만 보고 정책이 결정되거나 지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6월 이후에는 또 다른 선거가 있는데 정무적인 의사결정만 하다 보면 현장의 혼란이 커지기 때문에 정부 부처가 더 자율성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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